11 Madison Ave, New York, NY 10010, US
Exceptional cuisine, worthy of a special journey.
요리가 매우 훌륭하여 맛을 보기 위해 특별한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는 식당,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의 정의다. 이 의미에 가장 적합한 레스토랑을 한 곳만 고르라면 주저 없이 뉴욕의 Eleven Madison Park(이하 EMP)를 선택한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레스토랑이 어디냐 묻는 질문의 답이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꼭 같이 가고 싶은 장소 중 하나다.
EMP를 경험한 모든 순간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방문 전부터 식사를 마치고 문을 나서는 모든 순간이 그러했다. 오래된 기억인 만큼 미화되어 각색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입구 앞에서 사진을 찍고 들어가 매니저와 악수를 하고, 수제 그래놀라와 초콜릿, 틴케이스, 연필이 든 종이백을 들고 환한 미소를 띤 채 따듯한 배웅을 받으며 레스토랑을 나서던 그날의 경험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EMP를 방문한 건 2016년 가을이었다. 그 해 생에 첫 미국 여행을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도시를 선별하고, 각 도시별로 테마를 정하고, 방문할 장소들을 선별하고, 예산도 넉넉하게 준비했다. 여행지는 시애틀, 포틀랜드, 뉴욕으로 정했다. 가장 사랑하는 공간과 경험을 가장 만끽할 수 있는 도시들이었다. 시애틀과 포틀랜드는 스타벅스와 에이스 호텔을 온전히 경험하고 즐기기 위해. 뉴욕은 세상에서 제일 가보고 싶은 도시였기에 수년 전부터 이미 정해져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리고 6개월이라는 시간을 투자한 만큼 완벽해야만 하는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해 줄 계획이 뉴욕의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 방문이었다.
여행의 화룡정점을 찍기 위해 뉴욕의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들을 전부 리스트업 했다. 미슐랭 가이드 외에도 다양한 레퍼런스들을 들여다보며 레스토랑을 추려갔다. 그 당시 EMP는 The World's Best Restaurants 리스트에서 Top 5 중 하나였고, the Best Restaurant in NYC 1위 레스토랑이었다. 레스토랑을 방문할 예정이었던 토요일에는 런치 타임에도 영업을 했고, 런치 타임과 디너 타임의 코스 구성이 동일했다. 또한 코스 가격에 팁도 포함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경제적으로 합리적이기까지 했다. 게다가 마침 에이스 호텔 뉴욕과도 도보 거리로 가까웠기에 조사를 하면 할수록 EMP가 1순위여야만 했다.(현재는 Worlds' Best Restaurant 명예의 전당에 리스트업 되어 있다.)
EMP를 방문하기로 결심했지만 아직 예약이라는 산이 남아 있었다. 당시만 해도 온라인 예약을 받지 않았던 터라, 전화로 예약을 잡아야 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3주 전인가 한 달 전 오전 9시(미 동부 표준시 기준)에 해당 주, 혹은 해당월의 모든 예약이 오픈되는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방문 예정일의 예약이 개시되는 일시에 알람을 맞춰 두고 전화를 걸어 예약을 잡았다.
당시 워크숍에 참석하고 있었는데, 예약 일정 5분 전부터 아무도 없는 방에 들어가 준비를 시작했다. 만반의 준비에도 불구하고 전화를 걸었을 때 이미 모든 라인이 통화 중이라 통화 대기로 넘어갔다. 혹시라도 전화를 끊었다 다시 걸면 대기 번호가 뒤로 밀릴까 싶어 고장 난 테이프처럼 반복되어 나오는 대기 안내를 한참 동안이나 기다렸다. 그렇게 45분이 지나서야 담당자와 통화할 수 있었다. 다행히 내가 원하는 일정은 아직 예약이 가능했고, 통화를 시작한 지 5분 만에 예약을 완료했다. 통화가 종료되고 잠시 후, 방문일시가 적혀 있는 예약 확정 메일이 왔다. 그걸 확인하고 나서야 방을 나섰고 같이 워크숍 중이었던 사람들이 도대체 거기서 1시간 동안 무얼 했냐는 물음에 뉴욕에 있는 미슐랭 레스토랑 예약 하고 왔다고 답하며 tmi를 마구 쏟아냈던 것 같다. 그만큼 너무 신이 났다.
시간이 흘러 9월 추석 연휴가 왔고, 미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여행 내내 매순간순간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중 EMP에서 메일이 하나 왔다. 내일 서비스를 담당하는 매니저였다. 그저 일정을 리마인드 하고 No-Show를 최소화하기 위한 안내 메일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케어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별거 아니지만 어떤 것이라도 이벤트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편하게 얘기해 달라는 문구도 참 좋았다.
그리고 마. 침. 내. 방문 당일. 가져간 옷 중에 제일 좋은 옷과 구두를 차려입고 호텔을 나서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메일을 보냈던 매니저가 환한 미소로 인사를 전했다. 악수를 나누고 바에서 잠시 기다려 달라는 안내를 받아 바에 앉아 잠시 멍을 때리다 예약된 자리로 안내를 받았다. 웰컴 디시가 놓여 있었고, 잠시 후 간단한 코스 안내와 함께 메뉴 선택이 이어졌다. 랍스터 비프 스테이크를 골랐다. 그리고 소믈리에에게 메인 디시 이전까지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화이트 와인 한 잔과 메인 디시에 어울리는 레드 와인을 한 잔씩 추천받았다.
그 이후 펼쳐진 EMP의 모든 것이 아름답고 완벽했다. 테이블 간격이나 가구, 데코와 같은 공간적인 측면과 서버들의 서비스 템포와 태도, 매너도 최상위였다. 레스토랑의 핵심인 음식은 말할 것도 없었다. 미슐랭 3 스타 안에서도 슈퍼스타들은 따로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중에서도 더욱 기억에 남는 포인트들이 있었다.
첫 번째는 키친투어였다. 애피타이저 식사를 마친 후, 매니저가 테이블로 찾아와 간단한 스몰 토크를 건넨 후 레스토랑의 키친을 구경할 의사가 있는지 물었다. 일말의 주저도 없이 곧장 매니저를 따라 키친으로 들어갔다. 홀만큼이나 거대한 키친은 애피타이저들을 준비하는 곳, 파티세리를 위한 공간, 메인 디시들이 준비되는 공간, 그리고 서버들이 마지막 점검을 하고 나서는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완벽하게 구성된 그 공간에서 오롯이 나만을 위해 준비된 테이블로 갔다. 매니저와 간단한 스몰토크를 마친 후, 키친 멤버 한 명이 테이블 앞에 놓인 빙수기계를 이용해 나만을 위한 샤베트를 만들어 줬다. 진을 얼린 얼음을 갈아줬던 것 같다. 샤베트를 먹으며 레스토랑과 관련된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있으니, 당시 키친을 리딩하고 있던 셰프 Dmitri Magi가 인사를 건네어 왔다. 감사 인사도 주고받고, 잘 찍지도 않는 사진도 찍고, EMP 출신 한국인 셰프가 방송에 자주 나온다는 얘기와 지금도 키친에 두 명의 한국인 셰프가 있다는 등등의 이야기를 나눈 후 키친을 나왔다. 처음 해본 경험에 신이 잔뜩 난 채로 매니저를 따라 자리에 돌아와 보니, 내 자리에 피크닉 박스가 하나 놓여 있었다. 이 박스가 두 번째 포인트였다.
피크닉 박스를 보자 레스토랑 이름이 왜 Eleven Madison "Park"인지 알 것 같았다. 레스토랑 이름 따라, 잠시나마 공원으로 피크닉을 떠나는 콘셉트의 디시를 구성했구나 라는 생각에 무릎을 탁 쳤다. 아마 이 순간이었던 것 같다. EMP와 사랑에 빠진 건. 게다가 다른 테이블들은 앉아 있다 받았을 뿐이지만, 난 키친투어를 다녀온 이후에 이 디시를 경험했던 덕분인지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피크닉 박스 안에는 캐비어와 비스킷, 연어알을 메인으로 한 새비체와 피클, 토마토로 만든 와인이 있었다. 캐비어 숟가락 가득 캐비어만 담아 듬뿍 먹기도 하고, 비스킷 위에 캐비어와 사이드 디시들을 얹어 먹기도 했는데, 이렇게 캐비어를 내 마음대로 먹어보기도 처음이라 더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식사를 다 마친 후, 캐비어 틴케이스에 오늘 선택한 디시들을 서빙 순서대로 차례로 적어 선물로 준다. 이 역시 매우 매력적인 구성이라 감동했던 포인트 중 하나다.
음식도 하나하나 모두 특별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선택 코스였던 랍스터 요리와 비프 스테이크다,
뉴욕이니 당연히 버터에 구워진 랍스터를 생각했는데, Owner chef인 Daniel Humm 셰프가 할머니댁에서 자주 먹었던 방식의 스튜 형태의 랍스터 요리라 더욱 특별했다. 주방에서 요리를 준비한 셰프들이 테이블마다 한 명씩 직접 이 메뉴와 관련된 스토리 텔링을 하며 직접 접시에 덜어내주는 부분이 좋았다. 게다가 무엇보다 모든 식재료가 매우 적절하게 조리되어 있는 게 매우 기억에 남는다. 야채와 해산물이 모두 고유의 식감과 맛을 모두 즐길 수 있게 익어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그래서일까 곁들여 먹으라고 같이 나왔던 메뉴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만큼 랍스터가 강력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그리고 메인 디시였던 비프 스테이크. 180일 드라이 에이징한 송아지 고기였는데, 오랜 시간 에이징을 한 덕분에 매우 특이한 식감을 보여줬다. 그 식감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츄잉 하다는 표현이 세상 잘 어울리는 그런 식감이라 몇 번을 오롯이 식감을 즐기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같이 나왔던 사이드들도 훌륭했는데, 옥수수가 진짜 말도 안 되게 맛있었다...... 마치 설탕이라도 뿌린 듯 달달한데, 한 알 한 알 탱글탱글... 모든 게 '메인'에 걸맞은 완벽한 디시였다. 소믈리에가 페어링 해준 와인과의 마리아쥬도 기대 이상이었고.
초콜릿 이야기도 빼먹으면 안 될 것 같다. 네 종류의 초콜릿과 카드 한 장, 그리고 연필을 줬다. 네 종류의 우유로 만든 밀크 초콜릿이고, 각 초콜릿마다 다른 나뭇잎 포장지로 싸여 있었다. 하나씩 맛을 보며 어떤 우유가 사용됐을지 맞춰 보는 체험 요소가 가미된 디저트 메뉴였다. 어느 정도 시간을 준 이후에 답안을 갖다 주는데, 하나 골라 먹은 초콜렛이 버펄로유로 만들어졌다는 걸, 매우 우연히, 마치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은 꼴로 우연히 맞춰 칭찬도 듣고 신났던 기억이 난다.
아! 한 가지 더 있다. 테이블 앞에서 뉴욕 지역에서 재배한 벌꿀을 듬뿍 발라가며 구워준 멜론도 천상의 맛이었다. 꿀을 계속 발라달라고 티키타카를 주고받았던 순간도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렇게 3시간가량의 식사가 끝나고, 선물이 가득 들어 있는 종이가방을 들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거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중에도 그때 느꼈던 감동과 행복한 감정들이 지금도 여전히 생생히 떠오르고 그대로 남아 있는 걸 보면 그 당시에는 진짜 얼굴에 미소가 만연했을 거다. 그 행복을 다른 사람들도 경험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같이 공감하며 대화를 나누고 싶어 뉴욕 여행을 떠나는 친구들에게 항상 1순위로 추천하고 있다. 거의 홍보대사처럼 말이다.
이미 7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 EMP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처음에 잠깐 언급했던 처럼 내부 인테리어와 스토어 프런트 외관도 조금씩 변경됐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는 메뉴가 모두 채식 코스 요리로 변경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요즘 들어 더더욱 다시 방문하고 싶어 진다. 첫 방문 때에도 해바라기를 활용한 메뉴나 토마토 와인 같은 부분이 경험의 폭을 확장해 줬던 것처럼 한 번 더 경험의 양과 질을 넓혀 줄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이 있다.
그러니 부디, 지난해 10년 만에 생에 첫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에 재방문했던 것처럼, 2025년 어느 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다시 한번 Eleven Madison Park를 방문할 수 있길 바라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