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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Jul 12. 2021

유로 2020 결승전: 감독 양복 더비

서유럽의 양복 강국들이 유로 결승에서 맞붙는다

이탈리아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 로베르토 만치니.



2021년에 열린 유로 2020 결승은 오랜만의 정장 감독 더비. 요즘은 추리닝 차림으로 경기를 지휘하는 감독도 많은데 이번 결승의 감독들은 모두 그럴싸한 정장을 입었다.


이탈리아 팀 감독 로베르토 만치니는 그림같이 재단된 세퍼레이트 수트를 입고 나온다.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디자인했다고 한다. 말이 핥은 듯 몸 라인에 챡 달라붙는 이탈리아 양복 특유의 라인이 살아 있다. 이탈리아인 아니면 좀 느끼해 보일 차림이다. 


아무튼 본격적인 정장이다. 본격 정장을 잘 안 입는 미국과 미국의 영향을 받은 한국과는 좀 다르다. 역시 서유럽의 어떤 부분은 여전히 첨단화한 중세다. 축구라는 스포츠 자체가 첨단화한 중세 지역전이기도 하니까. 


만치니는 타이도 했다. 별 넷은 이탈리아의 대회 우승 횟수일 것이다. 사선 줄무늬가 눈에 띈다. 타이의 사선 줄무늬는 영국의 문화다. 사선 줄무늬를 넣은 타이를 레지멘탈 타이라고 부른다. 레지멘트는 군대의 연대라는 뜻이다. 영국은 연대별로 다른 무늬 타이를 했고, 이는  영국 특유의 (중세적ㅋ)학교 문화와도 이어져 학교별로 타이 색이 달랐다고 한다. 


남이 보면 만시니의 타이 줄무늬는 오른쪽에서 시작해 왼쪽으로 내려간다. 이게 영국풍 레지멘탈 스트라이프다. 맨 사람 입장에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건데, 이건 영국군의 ‘심장에서 검으로 heart to sword’라는 규칙에 따른 거라고 한다. 미국은 반대다. 남이 보는 방향에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간다. 이게 다 뭐냐 싶을 수 있는데 원래 남자란 근본적으로 쪼잔한 것이다. 아무튼 만치니의 타이 줄무늬는 영국풍 스트라이프다. 


잉글랜드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그러면 영국 감독은 뭘 입고 뭘 찼을까. 영국의 가레스 사우스게이트는 막스 앤 스펜서의 남색 양복을 입었다. 위아래 같은 색이라 한층 격식이 있다. 어깨도 한층 각져서 얼추 봐도 영국 옷이다 싶다. 벨트를 안 매도 사이즈가 잘 맞는 걸 보니 맞췄겠지만 어딜 봐도 말이 핥은 듯 챡 달라붙지는 않는다. 영국과 이탈리아의 차이다. 


타이는? 레지멘탈? 노노. 잔잔한 물방울 무늬가 들어간 실크 타이를 맸다. 원래 여름에 많이 맨다. 계절에 맞는 타이라고 볼 수 있다. 팔찌도 한 걸 보니 평소에 옷차림에 관심이 많거나 별도 스타일리스트가 있는 것 같다. 


속물적인 규칙에 입각한 정장 차림엔 손목시계도 포함된다. 원래는 드레스 워치라는 정장용 시계가 있고 그 시계에도 너절하고 엄격한 규칙이 있으나 강호의 도가 땅에 떨어지고 다들 코스프레만 하는 21세기에 그런 게 어딨어. 둘 다 21세기의 고급 시계를 찼다. 


만치니가 차고 있는 건 리샤르 밀이다. 리샤르 밀은 리샤르 밀 씨가 만든 신흥 초고가품 시계다. 광기가 느껴지는 완성도와 콘셉트로 신흥 초고가품이 됐다. 만치니의 시계는 리샤르 밀 중에서도 무려 로베르토 만치니 에디션. 리샤르 밀은 특정 인물 에디션을 만들면 설계부터 다시 한다. 시계 뒤에 사인이나 새기고 ‘에디션’ 이라고 하는 브랜드와는 급이 다른 광기다. 아무튼 만치니는 저 시계를 차고 의기양양하게 준결승전 인터뷰를 했다. 이탈리아 축구는 어떻게 해도 기묘하고 우아한 광기가 있는데, 만치니의 옷차림을 보면 그럴 만 하다 싶다. 


사우스게이트는 위블로를 찼다. 위블로는 스위스 시계 업계 역사상 최고의 마케터인 장 클로드 비버의 작품같은 브랜드다. 어떤 면에서 작품같은지 여기서 말하기는 너무 기니까 중략. 사우스게이트의 시계는 위블로 스마트워치다. 안드로이드 기반의 귀금속이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는 글로벌 단위의 대자본을 받아들이며 제국의 자존심을 내준 대신 아주 현대적인 리그로 변했고, 그 리그에서 몇 년 뛴 선수들도 이제 상당히 세련된 축구를 한다. 사우스게이트의 미묘한 깔롱과 위블로 스마트워치를 보면 그도 그럴 법하다. 


그리하여 굉장히 흥미로운 코비드-19 시대의 유럽 축구 국가대항 결승전이 열리게 됐다. 아르마니-리샤르 밀-한물 간 듯 우아한 광기의 이탈리아냐. 막스 앤 스펜서-위블로(스마트워치)-멋 부린 듯 안 부린 듯 실용적인 깔롱의 잉글랜드냐. 


개인적으로는 합리적 근거 없이 이탈리아의 우세를 예상한다. 서유럽은 사실 중세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았고, 축구는 첨단화한 중세인 21세기 유럽의 상징물 중 하나이며, 적어도 그런 종목에서의 이탈리아는 결코 쉽게 지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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