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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Aug 11. 2021

노작가의 볼레로

무라카미 류, 올드 테러리스트 독후감


볼레로라는 노래가 있다. 프랑스의 작곡가 모리스 라벨 씨가 만든 클래식 곡이다. 클래식 음악에 큰 관심이 없으셔도 이국적인 느낌의 멜로디를 들어보면 '아 이 노래'라고 떠올리기 쉬운 노래다. 나도 클래식에 문외한이지만 이 노래를 알 정도니까.


이 노래는 조금 신기한 모양으로 구성되어 있다. 메인 멜로디는 하나뿐이다. 하나의 멜로디가 돌림노래처럼 돌아간다. 그 멜로디를 지탱하는 비트도 길게는 16분 내내 똑같다. 그런데 한번 멜로디가 반환점을 돌 때마다 악기가 하나씩 붙는다. 그 결과 멍하니 듣고 있다 보면 어느새 아주 큰 규모의 절정에 이른다. 작곡가가 좀 괴짜가 아닐까 싶은 노래다.


모든 노래에는 끝이 필요하다. 볼레로같은 노래를 어떻게 끝내야 할까? 모리스 라벨 씨는 한 번에 이 노래를 무너뜨려버리는 방법을 쓴다. 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끌어들여 노래의 기세를 천장까지 올린 후 큰 충격을 주면서 떨어뜨린다. 올드 테러리스트에서는 마지막 장면이 그 역할을 한다. 자세히 묘사하면 스포일러가 될 테니 여기서는 적지 않지만, 강렬한 결말이다.


<올드 테러리스트>의 구성도 볼레로와 비슷하다. 메인 멜로디라고 할 만한 사건과 문제의식은 똑같다. 그 문제의식이란 이거다. 


희망이 없고 긴장이 사라진 세계에는 충격이 필요하다. 


이 메시지가 각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을 통해 돌림노래처럼 반복된다. 여기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거의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말로든 행동으로든, 살아서든 죽어서든. 만약 이 책이 잘 안 읽힌다면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대신 이 흐름 자체를 즐길 수 있었다면 페이지가 잘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메시지의 성격이 똑같은 대신 사건의 규모가 점점 커지니까. 시간이 갈수록 오케스트라의 악기가 점점 더 많이 참가해서 거대한 파도같은 절정에 이르는 볼레로처럼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장편소설이 딱 하나의 챕터로 이루어진 것도 이해가 간다. 이 소설은 그냥 아주 긴 노래 한 곡인 것이다. 늙은 남성 작가가 떠올릴 수 있는 장편 소설의 구성 치고는 굉장히 신선하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의 노인들이 하는 말은 큰 가치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지난 시대의 긴장 속에서 심신을 단련한 초인이라도 현대를 넘어설 수는 없다. 작가 무라카미 류 씨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하필 만주국 이야기를 꺼내는 걸 보면. 만주국과 태평양전쟁은 일본제국의 엘리트주의가 결과적으로 얼마나 허무하게 실패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다. 일본군은 미국군의 압도적 물량을 자신들의 정신력으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과는? 올드 테러리스트의 마지막 장면과 비슷했다. 류 씨가 정말 지난 세대에 도취된 할아버지라면 이 소설의 결말도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이 이전 시대에 비해 희망이 없고 긴장이 사라진 세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세계에 필요한 게 테러라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일 리는 없다. 그럼 무엇이 필요한가. 그거야말로 우리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주제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 책은 놀라울 정도로 팔리지 않았다. 역시 지금은 진지한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때일까. 


볼레로는 인터넷에 여러 버전이 있다. 나는 발레리 게르기예프 버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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