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들이 고생해가며 쓴 논픽션들
『나무의 말』, 레이첼 서스만
이 책의 한국어판이 처음 나왔을 때쯤 책을 처음 읽었다.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부분에서 나도 놀랐다. 오래된 생물. 생존과 운명. 의외로 오래 산 것처럼 보이지 않는 식물의 생김새까지. 장수에 집중하려면 겉모습에는 별로 연연하지 말아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의 영어 원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산 것들' 이다. 이런 주제를 떠올리는 일 자체는 별로 어렵지 않다. 주말 커피숍에서 친구들끼리 이야기하다가 ‘어?’ 하면서 나올 수도 있는 주제다.
문제는 실행할 때다. 어느 식물이 몇 년 살았는지 어떻게 알지? 나는 글만 할 줄 아는데 이미지는 어떻게 하지? 어디까지가 이 프로젝트에 해당하는 생물일까? 이런 토론을 하다가 사라지는 환상적인 프로젝트가 지금 서울에도 100개씩은 있을 것이다. 레이첼 서스만 씨는 고민하는 대신 갔다. 사진을 공부하고 (아마)자기 돈을 써가며 세계를 돌아 이 책을 만들었다. 그게 정말 대단한 일이다.
나도 생각만 하다가 종이에 적어둔 걸 세 번 접어 입에 삼켜버린 기획들이 50개는 있다. 버려진 기획이 51개가 되기 전에 이 책을 떠올리곤 한다. 이쪽 일의 격언 비슷한 게 있다. 기자가 고생할수록 독자가 편안하다. 이 책이야말로 이 명제의 산 증인 아닐까. 작가가 고생하고 우리는 편안히 앉아서 감동한다.
저널리즘이나 글쓰기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다. 대안도 많다. 기술, 공간, 소통, 또 뭐더라, 뭐든. 원인은 간단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고생을 무릅쓰고 뭔가를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고생은 아주 중요하다. 이 책을 읽고 한번 더 생각했다. 읽는다면 당신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이 책은 지금 나무의 말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어판이 나와 있다. 나무의 말은 개정판이다. 몇 년 전 『위대한 생존』이라는 이름으로 책이 먼저 나왔다. 기왕 사서 볼 거면 『위대한 생존』쪽이 훨씬 가치 있다. 이 책은 글도 글이지만 사진이 백미인데 『위대한 생존』의 판형이 더 크다. 절판되긴 했는데 인터넷에 중고 책이 싼 값에 나와 있다. 커피 테이블 북으로 쓸 거라면 이런 책이 정말 멋있는 거라 생각한다.
*그밖의 저자 고생 논픽션들
『깊은 바다, 프리다이버』, 제임스 네스트
저자는 우연히 프리다이버를 취재한 후 하도 신기해서 진짜 다이빙을 해본다. 코피를 줄줄 흘리고 세계를 떠돌며 이 책을 썼다. 코피를 흘렸다는데서 오는 압도적인 체험의 힘이 있다.
『스팅, 자연의 따끔한 맛』, 저스틴 슈미트
저자는 벌 러버라서 자기가 직접 벌에 쏘여 가며 통증 지수를 개발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해. 저자의 고생 틈틈이 생물학자 특유의 아주 놀라운 통찰이 들어 있다. 교양과학+통찰+남이 벌레에 쏘인 이야기=재미 아니겠습니까.
『요통탐험가』, 다카노 히데유키
다카노 히데유키 님 굉장히 좋아한다. 저자는 세계의 오지를 신나게 탐험하다 어느날 요통이 세게 와서 탐험을 할 수 없는 몸이 된다. 오지 대신 토쿄의 곳곳을 오가며 요통 치료 전문가들을 탐험한다. 꼭 멀리 가야 고생인가, 요통의 고통을 안다면 이쪽 체험의 무게도 만만치 않음을 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