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찬용 Apr 26. 2022

잡지에 대한 브런치북을 내리며+다시는 안 쓸 것 같습니

다. 제목 수 제한이 있어서 이렇게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안녕하세요. 박찬용의 브런치를 운영하는 박찬용이라고 합니다. 운영이라기에 딱히 한 건 없으나 저만 접속할 수 있는 웹페이지에서 저만 뭔가를 올렸으니 운영이란 말이 틀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는 2016년부터 브런치라는 서비스를 쓰기 시작해 아직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몇 년 지나고 나니 구독자가 이렇게 많이 생겼네요. 자주 올리지도 않는데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각종 정지 화면 페이지를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원고 작성은 제 업무의 일부이며, 브런치에는 그 중 일부의 원고가 올라갑니다. 브런치에 올라가는 원고의 기준은...딱히 없습니다. 처음에는 브런치 측과 최소한의 약속도 있었습니다만, 브런치가 이제 유명 서비스가 되어 많은 분들이 이용하시게 되니 제가 굳이 나서서 할 일이 사라졌습니다.


브런치에게는 늘 축하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어떤 계기로 브런치가 생기기 직전부터 이 서비스가 어떤 의도로 누구에 의해 만들어지는지 듣고 일종의 베타테스터처럼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서비스나 제품을 출시하는 건 늘 설레면서도 고된 일입니다. 그 과정의 작은 일부가 되어 기뻤고, 지금은 계시지 않지만 그 과정을 만들어나가시는 분들과 작업하는 일도 무척 즐거웠습니다.


저의 초기 저작물 중 일부가 브런치 게시물을 토대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단행본을 낸 사람을 '작가'라 부른다면, 저는 일정 부분 브런치 덕에 그 '작가'가 된 거라 볼 수도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조금 전까지 저의 브런치에 올라와 있었던 '어느 잡지 에디터의 생활' 입니다. 이 책은 <잡지의 사생활>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이 책은 제게 아주 소중합니다. 첫째로는 저의 직업에 대한 제 자신의 경험과 의견이기 때문입니다. 나름의 고민이 활자 형태로 담겨 있으니 남 보기엔 유치해도 소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이유이자 결정적인 이유는 이 책이 정보나 가이드북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라이프스타일 잡지 에디터라는 직업이 있습니다. 그 직업을 가진 사람이 수십 명은 될 테고, 전직 에디터를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날 테니 이 일을 일종의 직군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반면 이 직군에 대해 누가 봐도 그렇구나 싶도록 정리하고 설명한 책은 제가 아는 바로는 없었습니다. 그것이 브런치에 '어느 잡지 에디터의 생활'을 연재한 결정적 이유였습니다. 이른바 '콘텐츠'의 흥행을 떠나 가치 있는 정보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가치 있는 정보를 만들기 위해 저도 나름 노력했습니다만 저자의 노력은 당연한 일이므로 저의 노력에 큰 가치를 둘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 게시물 시리즈가 책으로 나올 때 출판사 대표님께 한 가지 조건을 말씀드렸습니다. 책이 나와도 인터넷 게시물은 내리지 않겠다고요. 만에 하나 저의 게시물에 쓸모 있는 내용이 있고, 잡지 에디터라는 직군을 지망하는 젊은이가 계신데, 그 내용을 유료 책으로만 볼 수 있는 상황을 제가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정보 접근성에 따른 상품성을 생각하면 책이 나왔을 때 게시물을 다 내리는 게 맞습니다. 출판사 대표님은 내심 그게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이 면에서 완고했고, 대표님도 제 뜻을 헤아려주시고 저의 게시물 공개 여부를 이해해 주셨습니다. 책이 나온 게 2019년 1월이고 작업을 그 전부터 했으니 약 4년 전 일이네요. 제 뜻을 이해해주시고 사업에 도움 안 되는 결정 내려주신 출판사 세이지의 이한나 대표님께는 내내 감사한 마음 갖고 있습니다.


시리즈를 시작한지 4년, 책이 나온 지 3년쯤 된 지금 '어느 잡지 에디터의 생활' 게시물을 내렸습니다. 이 게시물에 나온 이야기들이 시대를 반영하지 못한다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종이 잡지 시대의 (거의 마지막) 에디터입니다. 종이 잡지사 기준으로 회사에 들어갔고, 종이 잡지사 기준으로 일을 배웠습니다. 약 십수년 전만 해도 에디터가 블로그를 여는 걸 좀 신기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십수년이라면 얼마 안 된 것 같지만 지금의 '네카라쿠배당토'중 상당 회사가 업력 십수년이 안 될 겁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세상이 많이 변했습니다.


잡지계도 많이 변했습니다. 무엇이 어떻게 변해 어떻게 가는지는 또 긴 이야기가 될 테니 여기서는 하지 않겠습니다만, 제가 적어둔 잡지의 이런저런 면모도 자연스럽게 옛날 정보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옛날 정보는 잘못된 정보가 될 수 있습니다. 잘못된 정보는 잘못된 판단을 부를 수 있습니다. 저의 몇년 전 게시물이 누군가의 잘못된 판단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잡지 에디터'나 '에디터'는 여전히 저의 블로그 유입 검색어 상위 키워드입니다.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이 직업이나 일에 관심 갖고 계시는 분이 있다는 뜻이겠죠. 그런 분들께 철지난 정보를 드릴 수는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어느 잡지 에디터의 생활'을 내린 이유입니다.


2022년의 잡지와 잡지형 정보/기사/원고(등 '콘텐츠'라고 뭉뚱그려 부르는 것들)는 제가 알던 그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오늘날의 페이지가 무엇으로 채워져야 하는지, 어떤 이야기가 들어가야 하는지는 저도 나름 계속 찾는 중입니다. 제가 아는 한 정답은 없습니다.


여기까지 찾아 들어오신 젊은 분들이 계신다면 이 말씀은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정답입니다. 여러분이 건강하게 살아남고, 여러분의 정보가 독자들에게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저도 그럴 수 있기 위해 더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할 수 있는 한 지금 하는 일을 계속 하려 합니다. 제 분야에서 좋은 정보를 만드는 일이 제 직업적 기술이자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정보를 만드는 과정에서 젊은 에디터분들과 마주칠 일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젊음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러나 젊음만 할 수 있는 일은 있습니다. 이 일에서는 그 기운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저와 언젠가 마주쳤을 때 제게 많이 알려주세요.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브런치북을 내리는 건 상당히 공이 많이 드는 일이었습니다. 일단 브런치북은 n개의 포스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n개의 포스팅은 브런치북에 발행되었다면 발행취소를 할 수 없습니다. 발행을 취소하려면 브런치북을 삭제해야 합니다. 브런치북을 삭제한 후 n개의 포스팅을 일일이 발행취소로 돌려야 합니다. 제가 업로드한 200여개의 게시물 중 '어느 잡지 에디터의 생활'에 있던 걸 일일이 찾아서 발행취소시키고, 다시 글 목록으로 돌아가 찾고 발행취소시키기를 반복해야 합니다.


'어느 잡지 에디터의 생활' 브런치북에는 16개의 게시물이 있었습니다. 그 중 15개를 일일이 그렇게 발행취소시켰습니다. 그러고 나니 자연스럽게 브런치북을 다시 발행하지는 말아야겠다 싶어졌습니다. 브런치북을 발행하신 분들께 참고 되시길 바랍니다.


1개 남겨둔 게시물은 '좋은 취향이란 뭘까' 라는 게시물입니다. 이 게시물은 요즘 보셔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요즘은 몇 년 전에 비해 취향이라는 말이 더욱 자주 쓰이는 것 같습니다. 취향에 홀려 젊은 날을 버린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허망한 일들입니다. 무의미하다고 할 순 없겠습니다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세상엔 많습니다.


'어느 잡지 에디터의 생활'의 내용이 궁금하셨던 분들은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잡지의 사생활'을 찾으시면 됩니다. 아직 재고는 넉넉하게 남아 있습니다. 일선 도서관에도 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e북도 판매중입니다. 몇 년 전 잡지 에디터를 하던 사람의 생활상이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나름의 가치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혹시 제 원고를 보시는 분들이라면 이런 곳에서 제 게시물을 주기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요기요가 제작하는 뉴스레터 '요기레터'를 2주에 한 번 만듭니다. 저의 개인 뉴스레터 '앤초비 북 클럽'이 2주에 한 번 나옵니다. 둘 다 무료입니다. 저의 웬만한 근황은 개인 뉴스레터와 SNS에 있습니다.


오랜만에 올린 긴 게시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티셔츠와 반바지, 선택하기와 선택받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