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긴기린 May 07. 2017

가식 없는 밤의 해변에서 혼자

홍상수 감독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

사실 이 영화는 욕하려고 봤다. 배우와 감독의 불륜관계를 미화시키려는 영화일 테니까 말이다. 영화를 봐야 욕을 하지.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차마 욕은 못하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굉장히 잘 만든 영화다. 인간의 욕망, 지촐함을 여과 없이 보여주며 영화는 외친다. "적어도 우린 가식적이진 않았어"


영화는 삶을 달관한 듯한 배우 영희를 관찰한다. 언뜻 보면 그녀를 보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희를 관찰하는 카메라의 시선이 그렇게 느껴졌다. 영화는 독일을 배경으로 한 1부와 강원도를 배경으로 한 2부로 나눠져 있다. 사실 독일에서 만난 영희의 모습은 굉장히 불안해 보인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도 어딘가 마음이 붕 떠있어 보이고, 길 가다 절을 하는 등 돌발행동을 하기도 한다. 아마 누군가를 기다리는 상황이라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1부는 영희가 처한 상황, 상황 때문에 생긴 영희의 감정이 치는 요동을 그린다. 영희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건 서영화다. 1부에서 서영화가 영희에게 말하는 방식은 일종의 인터뷰 같다. 영희의 생각을 묻고, 영희를 이해하려 한다. 배경 설명을 한참 하는 듯하더니 1부는 갑자기 영희가 이름 모를 남자에게 업혀가는 걸로 마무리된다.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은 2부에 다 나온다. 아마 동료들과 술 마시는 장면이 자주 나와서 그런 듯하다. 홍상수 영화는 원래 술자리 장면에서 중요한 말을 쏟아낸다. 첫 번째 술자리는 강원도에서 만난 선배 권해효, 정재영, 송선미와 함께다. 이들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영희를 받아들인다. 영희를 비난하는 세상이 이상하게 보일 지경. 더 잔인한 일도 스스럼없이 하는 인간들이 사랑을 함부로 판단하고 재단하고, 영희는 그런 사회의 피해자처럼 보인다. 사랑에서 속박은 불행한 것이고 (정재영이 애인한테 시달리는 장면) 마음이 하는 대로 행동하는 건 위대한 일처럼 칭송받는 장면들이 나온다. 뭐 '우리 영희하고 싶은 거 다해'라는 말만 안 나왔지 대충 이런 뉘앙스다.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술자리는 거의 외침에 가깝다. 영화감독과 영희는 울화가 치민 목소리로 서로를 향해 소리친다. 우리는 후회하는 상태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후회는 지속되지만 그래도 후회하지 않기에 이 상태로 남을 겁니다.  모순적인 문장이나 저 장면을 적절하게 설명한 내용이다. 영화는 감독과 영희 사이의 로맨스를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을 향해 당신들이 생각하는 건전하고 진실된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흔히 말하는 도덕적 결함이 문제없는 사랑이 참된 것인가. 그러면 사람은 문제 되지 않는 행동만 하며 다들 성실하게 임하고 있나? 아닐 텐데. 그렇다면 "무서운 짓도 스스럼없이 하는 사람들"(권해효 대사)이 우리의 사랑을 지적할 처지가 되나? 영화는 울부짖는다. 




제목은 <밤의 해변에서 혼자>지만 실제로 밤의 해변이 등장하진 않습니다. 1부는 저녁 어스름의 해변 같고, 2부는 낮의 해변이지요. 그럼에도 왜 ‘밤의 해변에서 혼자’일까요. 월트 휘트먼의 시 <온 더 비치 앳 나이트 얼론>(On the Beach at Night Alone)에서 영감을 받았다고도 하는데,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시의 내용이 영화를 닮은 것도 같습니다.


=시의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읽고 제목이 맘에 들어서 언젠가 제 영화의 제목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깜깜한 밤의 해변에서 우주와의 사이에 아무 방해물이 없을 때 보통의 인정과 규범과 분별들이 사라지고 원래의 자신을 잠시 느낄 수 있다고 상상한 겁니다. 원래 자신이란 말을 믿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상관없습니다. 도움이 됩니다, 저에겐.


-씨네 21 홍상수 인터뷰 중에서

전문은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86740)


홍상수의 인터뷰를 보자. 그는 세상의 규범 없이 온전히 자신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밤 해변이라고 말했다. 영화에 비록 밤의 해변에서 혼자 산책하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아도, 영화 자체가 밤 해변을 그리고 있다.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순수 그 자체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영화는 자신들의 사랑을 옹호하고 세상이 알아줬으면 하는 일종의 외침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달빛 아래에 흑인 소년들은 파랗게 보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