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불온한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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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시놉시스와는 달리 다큐멘터리 '불온한 당신'의 주인공은 감독 이영이다. 감독은 70년 평생을 성소수자로 살아온 '선배' 이묵을 만난다. 그를 촬영하면서 종종 카메라에 등장해 그의 일상을 공유한다. 개인적으로 이묵과 감독이 소소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잎에 밥을 싸 먹는 장면을 참 좋아한다. 감독의 건네는 말에 의도성이 없어 보여 좋다. 또 감독은 일본인 레즈비언 커플 논과 텐을 만난다. 그들에게 잠옷을 선물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스크린너머 그들을 바라보는 감독의 애정 어린 시선이 느껴진다. 그렇게 영화는 잔잔히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갑자기 영화 장면이 바뀐다. 이제 감독은 2015년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성소수자(영화 완성이 2015년이라 2015년이라고 설명했다)이자 영화의 화자로 적극 등장한다. 감독이 마주한 세상은 순탄하지 않다. 늘 성소수자를 '불온한 세력'이라 규정하는 사람들과 부딪히고, 싸운다. 그들의 목적은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것이다.그들의 행동은 어이없게 느껴질 정도로 굳건하고, 웃음이 나올 정도로 돌발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대화가 안 통하니 이길 자신이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일상이 투쟁이 되어버린 성소수자의 이야기가 영화 절반 정도 등장한다.
영화는 다시 이묵을 만난다. 덤덤한 이묵의 말을 들으면서 문득 생각했다. 그는 레즈리언 중에서도 바깥일을 담당'바지씨'로 지냈다. '바지씨'로 살면서 그도 지금 사회에서 벌어지는 혐오를 견뎌야 했을까. 더 많은 이야기가 오갔으면 좋겠다. 궁금한 점이 많다.
그러나 영화는 감독이 느끼는 세상, 감독이 교감한 사람들을 기록하는 데 치중했다. 영화 소개에 그 내용 없이 '치마씨'와 '바지씨'의 이야기만 들어있어서, 혹은 러닝타임에 그들의 이야기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아 자칫 관객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속 세계가 확장되는 건 유의미한 시도다. 그러나 러닝타임에 모든 이야기를 넣어 버겁게 느껴진다. 이미 성소수자를 '불온한 자'라 낙인찍는 사람들과 그들로 인해 핍박받는 성소수자의 입장을 길게 그려지니 감독의 의도가 오히려 흐릿해진다. 그렇지만 유의미한 이야기가 많은 영화임은 분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