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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기린 Dec 03. 2017

237분의 감동,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

애드워드양 감독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 정성일 GV 후기

애드워드 양 감독의 걸작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봤다. 나의 부족한 머리로는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었다. 중간에 놓친 부분도 많다. 인과관계가 즉각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영화라 감정선을 따라가기도 어려웠다. (영화 중반부가 지나서야 이 영화는 인물들의 감정보다는 관찰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영화 감상평을 세상에 내놓기엔 내가 부족하다. 리뷰 대신 정성일 평론가 GV (6시간 동안 이어진) 정리본을 올린다. 다소 거칠게 정리되어 있어 보기 힘든 면도 있지만 영화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내용이 있어 공유한다.





--도입--

보기 굉장히 힘든 영화

영화가 전체적으로 흐름이 완만하고- 인과관계를 이해하기 힘듦

gv시간은 인과관계의 불투명성을 증명하는 시간이 될 것

미학적으로 설명하기도 굉장히 어려운 영화 (나만 어려운게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ㅜ ㅜ)

이 영화는 대만이라는 근대사를 근거로 하여 모든 이야기가 되고 있음

대만 근대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끝내 붙잡히지 못함.

이 영화는 샤오쓰(주인공)의 살인을 다루는 게 아님. 준비 없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난공불락처럼 느껴질 것임

우리만 그랬던 건 아님. 고령가가 처음으로 완성되었을 때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음



--영화배경--

1961년 대만을 배경

타이페이에서 일어난 최초의 미성년자 살인사건

그 해 소녀를 깔로 찔러 죽인 소년과 애드워드양(이하 양)이 동갑

4면 밖에 되지 않는 신문에 이 살인사건이 나옴

은 자신과 동갑인 사람이 살인을 저질렀을 때 분명 자극이 되었을 것

정성일(이하 정)은 원래의 살인사건-영화 속 살인사건과 일치하는 지는 우리가 알 수 없다고 말함.

역시 그 부분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음.

샤오쓰가 왜 밍을 죽였는지를 중점적으로 영화를 바라본다면 해석되지 않는 부분이 더 많을 것임.

영화에는 샤오쓰와 밍 외에 관계들이 많이 등장함.


그러면 이 영화를 뭘 찍으려고 한 겁니까?

→ 1960년부터 1961년 6월 15일까지 시간을 찍었음

시간을 찍는 게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이 영화에서는 이 관계들이 거미줄처럼 칭칭 엉켜 있음

거미줄의 특징은 거미줄의 줄 하나만 팅겨도 전체가 흔들림

은 거미줄의 줄 하나를 팅겨서 샤오쓰와 밍에게 영향을 주게 만듦


이 영화에서 거미는 발 장제스 (총통, 대만의 국부, 장기 독재자)

박정희같은 존재. 아시아를 근대화시킨 독재자 3명

이 영화를 끊임없이 한 자리로 돌아옵니다. 바로 샤오쓰의 집.

샤오쓰의 집을 살펴보자. 샤오쓰는 4째라는 뜻(본명은 장첸으로 등장, 배우와 같은 이름). 광저우에서 상하이로 공부하러 왔고 그 후 어머니를 만나 몰래 결혼하게 됨. 몰래 결혼했을 때 자녀도 낳음.

첫째: 대입 재수생

둘째: 예쓰라는 흥행술사와 어울리면서 내기 당구에 빠져있음. 심지어 영화가 시작되기 전부터 소공원파에 소속되어 있었음.

셋째: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서 성가대 활동을 하고 있음.

샤오쓰는 공부를 못함. 공부를 못해서 야간반으로 옮겨지면서 영화가 시작됨

영화과 함께 이야기가 시작되는 영화들이 있음.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이미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음

영화는 계속 나아가기만 함. 고령가는 게으른 관객 혹은 영화를 무심하게 보는 관객은 영화를 보기가 힘들 것

영화가 언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까요? 감독도 상하이에서 태어나 부모님과 함께 대만으로 건너옴. 샤오쓰도 마찬가지.


중국 본토에서 대만으로 이주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알아두면 좋음. 대만 영화를 접할 때 이 부분이 진입장벽임.

이야기 시작: 마오쩌둥과 국민당이 국공합작으로 일본군을 물리침. 물리친 다음 처음 공산당과 국민당은 협상하기로 했지만 마오쩌둥이 반격함. 공산당이 승리,

장제스의 국민당은 대만으로 이주함. 국민당은 정책적으로 대만으로 이주를 시작했음. 단순한 이주가 아니었음. 대만 사람들은 자치구처럼 잘 지내고 있었음. 이미 1920년대 대만 지역 사람들의 70%가 글을 읽을 수 있었음. 지적인 활동이 활발했었던 지역

대만 사람들은 황당함. 갑자기 우리가 대만을 근거지로 삼겠다고 할 때 대만인들의 심정은 어떨까. 중국 원래 살고 있었던 사람을 외성인이라고 부름. 평화롭지 않았음. 대만에서 원래 살고 있었던 본성인 할머니가 담배를 팔고 있을 때, 국민당이 이끄는 경찰로 부터 구타당함.

할머니를 위해 본성인들과 경찰은 싸움. 본성인들의 저항이 심해짐.


1947 2월 28일날 벌어진 2.28 사건. 무려 3만명이 죽고, 300명이 빨갱이로 끌려감.


추가 설명 <대만의 2·28사건>

대만의 2·28사건은 1947년 당시 타이페이 시에서 전매국 단속원들이 밀수 담배를 팔던 한 좌판상 여인을 과잉단속하는 과정에서 총격이 발생해 대만인 한 명이 사망함으로써 촉발되었으며, 대만 본토출신인 '대만인(본성인)'과 대륙에서 온 이른바 '외성인' 사이의 갈등요인이 됐다.

대만 2.28 사건

 중국 본토의 남동 해안에서 160km 떨어진 곳에 있는 타이완섬에는 17세기 중반부터 중국 대륙 본토의 한족(漢族)이 이주해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45년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끝난 후부터 국민당은 국부군을 대만에 파견하는 등 인수작업을 실시하였고, 1949년 '중화민국' 정부가 난징에서 대만으로 옮겨오기까지 대륙의 중국인들이 대만으로 건너왔다. 이에따라 대만의 한족(漢族)은 중국 대륙에서 조기 이주해온 본성인(本省人 대만인)과 1949년 전후에 장제스의 국민당 정권과 함께 건너온 외성인(外省人)으로 나뉜다.


본성인은 전인구의 85%, 외성인은 13%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 둘의 갈등으로 일어난 사건이 소위 '2·28사건'이다. '2·28사건'은 1947년 2월 27일 타이페이역 근처에서 전매품인 담배를 몰래 팔고 있던 여성을 본토 출신의 전매국 단속원이 구타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대만인들이 거세게 항의하자 경찰이 군중을 향해 발포하여 사상자가 나왔다. 사태는 일거에 확대돼 28일에는 타이베이시 전역에서 파업과 철시 및 데모대의 시위가 시가지를 휩쓸었고, 3월 1일 이후 전 섬으로 확대되었다. 이에 당황한 국민당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3월 8일 본토에서 2개 사단의 진압군을 대만으로 불러들여 3월 9일부터 대대적인 살육과 약탈을 자행하면서 진압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학생등 무고한 대만 원주민들이 무참히 죽었고 현지의 정치 지도자들과 경제인 언론인들도 체포되거나 처형됐다. 정부 발표로만 2만8천여 명이라는 희생자를 냈다.


이 사건은 대만 토박이들과 1945년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끝난 뒤 대만으로 이주한 중국인, 1949년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공산당에 패한 뒤 대만으로 피란한 중국인을 분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 사건 이후 국민당 정부의 군사 독재는 1949년에서 1987년까지 계엄령으로 이어졌으며, '백색공포'로 알려진 40년의 탄압정치로 이어졌다. 1987년 대만에서 계엄령이 해제되기 전에는 이에 대해 말을 꺼내는 것조차 금기로 여겨졌다. 그러나 1988년 리덩후이 정권이 출범한 후 '2·28 사건'의 진상조사가 진행되었다. 4년간에 걸친 진상조사 끝에 나온 공식보고서에서는 당시 사망자가 본토 이주자 7백 ~8백명을 포함해 1만 8천~ 2만 8천명이라고 발표했다. 1995년에 2월 28일에는 사건발생 48년만에 리덩후이 총통이 국가 수반으로는 처음으로 희생자 가족에 사죄의 뜻을 표시하는 한편 2월 28일을 `평화의 날'로 제정하고 사건 진상규명을 약속했다. 이날 대만 타이베이 공원에는 희생자를 추모하는 위령비가 세워졌다. 결국 1997년 대만정부는 사건 50주년을 맞아 과거정권의 잘못에 대해 정부의 공식사과를 발표하고 2.28 기념탑과 기념관을 건립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대만의 2·28사건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장제스은 대만을 접수하고 돌아가지 않음. 국민당은 반공노선을 취했음. 중국에서 공산주의 선언을 하자, 대만은 유교 노선을 취함

국민당은 대만을 독재 정책을 실시하면서 동시에 경제정책을 시행함. 필연적으로 민주주의를 짓밟을 수 밖에 없음. 여기서 함께 본토로 넘어온 지식인들이 국민당을 비판하기 시작함. 지식인들을 숙청시키기 시작. 이 영화 중간에 샤오스의 아버지가 긴 취조를 당하게 됨.

갑자기 불려가서 왜 이러는 거야? 대만에서 백색테러가 남무하던 시대. 무분별한 폭력을 저질러지던 때. 샤오쓰와 친구들이 폭력에 노출될 수 밖에 없음. 사실 이런 배경지식을 알지 못하면 영화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음.


은 말함. 내 영화 속에 들어오고 싶으면 대만 역사를 알아와.



--인물--

밍의 엄마는 중국 본토에 있었다가 대만으로 옴. 얼떨결에 와서 가정부 생활을 하고 있음.

친척을 만나면 계속 한탄만 함. 샤오밍은 자신이 중국인이라고 생각함. <-> 반대로 허니(양의 애인)는 본성인.

샤오마 아버지는 마 장군. 아이젠하워에게 선물을 받는 사람. 장계석은 미군 주둔을 원하지 않음.


--감독에 대한 설명--

대만 뉴웨이브 감독. 롱테이크와 인물과 카메라 사이의 거리로 생각함. 미학이라고 생각하진 않음. 인둘과 카메라가 가진 거리? 대만 감독들은 여태까지 만들어진 상업영화들과 결별해야 한다고 생각했음. 그걸 이루지 못하면 예술의 어떤 가능성도 나아갈 수 없다고 판단함. 이 때 대만영화 감독들이 배우고자 했던 부분은 유교, 중국문화 -관조-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음.


어떤 영화 사조에서 볼 수 없는 특징. 왜냐면 문화 전통을 계승하려는 트렌드는 발견되지 않기 때문.


이 만난 대만 뉴웨이브 감독들은 말했음.

내 영화는 차의 맛과 같아지길 바래요. 계속 우려낼 수록 차는 맛이 깊어지죠.

->중국 예술 대가들의 자세를 받아들이는 태도. 대만 감독들은 이걸 찾기 위해 일상으로 눈길을 돌림. 전래 없는 미학. 경험의 미학.


경험이 정말 미학이 될 수 있나요? 아니요. 경험을 미학적으로 만든 거죠.

대만 영화들은 경험을 틀로 포현하기 시작. 가장 확실한 경험은 '내 경험'

양은 '동시대'라는 경험을 찍기 시작함. 동시대 대만의 모습을 필름으로 만들기 시작했음

고령가는 의 예외적인 영화. 기존의 영화들과 다름. 만약 고령가를 먼저 접하고 양의 영화를 본다면 놀랄 것임.

이 영화의 예와적인 특징이자 영화가 어려운 이유.

영화 속 인과관계에 대해 한참 뒤에 설명해줌. 영화를 계속 보고 있다보면 영혼이 가출함.

영화가 이론적인 영화는 아니지만 푸코 스러운 장면이 있음. 권력이 작동하는 학교, 병원, 경찰, 군대. 그 곳을 오가면서 샤오쓰는 4시간이라는 러닝타임 내내 미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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