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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ireyoonlee Jul 15. 2024

환대

마드리드 톨레도 

서쪽으로 시간을 거슬러 가는 비행은 지루하고 피곤했다. 좁은 비행기 좌석에 앉아 건조한 공기를 마시며 집 떠나 고생하는 여행의 긍정적인 이유를 애써 꼽아 보았다.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마중 나온 외교관 친구의 환한 미소를 마주하고 역시 떠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해발 657m 고원에 있는 마드리드시의 3월 날씨는 쨍하게 차가웠지만, 친구 부부가 집에 마련해준 방은 따뜻하고 아늑했다. 시차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 덧문을 열면 창백하게 고요한 하늘에서 처음 들어보는 새소리가 명료하게 들렸다. 친구 부부는 매일 저녁 스페인 내추럴 와인과 하몽, 토마토, 돼지고기 수육 같은 타파스를 차려 놓고 온종일 돌아다닌 우리를 맞이했다. 우리는 스페인에 대해, 세상에 대해,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진심 어린 환대로 낯선 나라는 집처럼 익숙해졌다.


마드리드에서 세고비아를 거쳐 톨레도로 가는 버스에서 내리자 찬 바람이 무자비하게 불어왔다. 단단히 껴입었는데도 높은 지대의 한겨울처럼 차가운 공기가 깊숙하게 스며들었다. 우리는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천천히 옛 도시의 좁은 골목을 걸었다. 다행히 바로 전 다녀온 중세 도시인 세고비아의 언덕에는 없는 에스컬레이터가 있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여러 가지로 불편한 집을 견디고 사는 주민이 있다는데 인적이 없어, 오래된 도시에는 진한 고대의 향기가 감돌았다.

톨레도에는 스페인 궁정화가가 되고 싶었던 그리스 화가 엘 그레코가 살았다. 황금빛으로 화려한 제대와 성체현시대가 으리으리한 톨레도 대성당에는 그의 그림 ‘엘 엑스폴리오(El Expolio)’가 걸려있다. 예수님의 붉은 옷이 벗겨지기 전 극적인 순간을 표현하기 위해서 배경은 다양한 얼굴로 채워졌다. 예수님의 눈은 원망스러운 듯 하늘을 올려다보고 사람들은 군중심리에 몰려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른다. 엘 그레코 특유의 기다랗게 우아한 선과 신비한 색으로 예수님 수난 순간의 급박하고 절실한 분위기가 전해졌다.

펠리페 2세가 2천 년의 고도 톨레도에서 마드리드로 수도를 옮길 때는 스페인이 세상에서 가장 힘센 나라였다. 타호강이 에워싸고 있는 고지대(해발 529m)에 로마 시대부터 세운 성곽도시였던 톨레도는 무적함대를 거느린 스페인 제국의 수도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굽이굽이 산길을 올라가서 내린 전망대에서 톨레도는 장난감 도시처럼 한눈에 들어왔다. 정말 무적함대의 국가가 수도로 삼기에는 작아 보였다. 한때 부와 명예로 으스대던 고도는 새파란 하늘을 이고 전쟁에서 몇 번의 승리를 거둔 노병처럼 근사했다. 우리는 오돌오돌 떨면서도 옛 도시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인 옛 도시의 위용에 감탄했다. 


500년 전에 이사 온 이 나라에서는 비교적 새로운 도시 마드리드는 톨레도에서 1시간 조금 넘는 곳이다. 우리는 마드리드 왕궁 투어를 시작하기 전 조금 일찍 도착했다. 궁의 넓은 마당에서 불어오는 모진 바람을 피하려고 친구가 알려준 성당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입구를 찾지 못해 서성이다가 어느 노부부를 따라 들어갔더니 황금 제대에 예수님과 성모님이 계신 알무데나 대성당이었다. 여행을 시작하는 첫날, 왕을 수호하는 것처럼 궁 앞에 버티고 있는 이 성당에서 나는 앞으로 열흘의 여정을 무리 없이 이어나갈 수 있는 은혜가 함께 하기를 기도했다.

마드리드 왕궁에는 3,000개가 넘는 방이 있다. 그중 몇 개만 관광객에게 개방되고 공식 행사를 하는 장소로 이용한다. 외교관 친구는 이곳에서 열린 연회에 한복을 입고 참석해 주목받았다고 했다. 좋지 않은 일로 쫓겨난 후안 카를로스 1세의 가족사진 같은 왕족의 그림은 걸려있지만, 현재 왕의 가족은 또 다른 궁전에서 산다. 가이드는 시누이와 올케 사이가 좋지 않다는 몇 가지의 왕족의 스캔들을 이야기해주었다. 사람 사는 일은 왕족이나 서민이나 비슷하다. 

부르봉 왕조 출신 펠리페 5세는 예전에 있던 알카사르(Alcazar, 성)를 리모델링 했다. 그는 어린 시절을 보낸 베르사유궁을 그리워하며 기획했지만, 정작 본인은 살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마드리드 왕궁은 프랑스의 가장 강력한 왕정 시대의 궁 못지않게 화려해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모든 방의 벽면은 유리로, 도자기로, 또는 거울로 채워져 예전에 가봐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베르사유 궁전도 이만큼 호사스럽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색색의 대리석을 조합한 테이블, 섬세한 조각을 장식한 시계, 황금과 태피스트리로 장식한 거대한 연회장, 태양처럼 빛나는 샹들리에 같은 장식품은 이제는 사람들의 눈요기이지만, 스페인이 한때는 최고의 부와 영광을 누렸다는 증표이다. 

우리는 머리를 휘날리며 왕궁의 뒤편으로 뻗어있는 숲을 바라보았다. 빽빽하게 푸른 나무가 들어선 숲이 대도시의 분비물을 말끔하게 청소하는지 찬 공기가 달콤했다. 우리는 마요르 광장으로 가는 길에 타파스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식당 거리는 꽃이 만발하게 피어있었다. 디저트로 꼭 먹어 보라는 츄러스와 쵸콜렛 음료가 지독하게 진해서 여독을 풀고도 남았다. 


마드리드에는 3개의 유명한 미술관이 있다. 우리는 그중 프라도 미술관을 가기로 하고 표를 미리 사놓았다. 마요르 광장과 솔 광장의 인파를 헤치고 도착하니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우리는 미리 산 표로 바로 들어갔다. 오후 6시부터는 무료 관람이라 하니 그 줄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미술관이 제일 한가한 시간은 오후 3시부터 6시이다. 

스페인의 왕들도 다른 나라 왕처럼 자기 집에 화가를 두고 그림을 주문했다. 그리고 국사에 전념하지 않고 사냥과 예술에만 관심이 있었던 카를로스 4세 덕분에(?) 프라도 미술관에는 스페인의 화가뿐 아니라 루벤스나 티치아노, 카라바죠 같은 다른 유럽 화가의 명작이 잔뜩 걸려있다. 스페인 국민 화가인 벨라스케스와 고야는 그 많은 작품 중에 단연코 가장 보고 싶었던 화가였다. 현대 미술가와 비평가가 뽑은 가장 위대한 작품인 ‘시녀들’, 고야의 ‘카를로스 4세 가족 초상화’, ‘옷 입은 마하’, ‘옷 벗은 마하’. 나는 자주 보았지만 실제로 보기 어려운 그림을 보는 감격스러운 순간을 맞이했다. 평일 오후라 관람객이 많지 않아 코앞에서 들여다볼 수 있어 위대한 화가의 숨결이 또렷하게 전해졌다. 그들은 궁정화가였지만, 등등한 왕가의 기세에 눌리지 않고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 많은 후배 화가에게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피카소는 ‘시녀들’을 오마쥬한 작품을 49점이나 그렸다) 

벨라스케스 시대에 궁정화가의 월급은 이발사와 비슷했다. 그러나 그는 ‘시녀들’ 같은 왕과 왕비를 주인공으로 하지 않는 그림으로도 왕의 인정을 받았다. 꽤 큰 폭의 그림은 위압적이지 않지만, 가볍지도 않고, 특이하지만 편안한 구도였다. 이 그림을 보니 스페인에서 봐야 할 것을 다 본 기분이었다. 

고야의 왕실 초상화는 당시 왕을 우스꽝스럽게 그렸다는 평을 받았지만, 사실 잘 보면 왕은 여염집 아저씨처럼 사람 좋아 보이고 목과 팔이 후덕한 왕비는 아이들의 손을 꽉 잡은 모성애 넘치는 엄마로 보여  친근한 여염집 가족같다. 붓칠을 아무렇게나 한 듯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매우 사실적이다.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이 그림과 같은 구도로 자기 가족 초상화를 그리게 한 것을 보면 고야의 그림이 왕들의 마음에 꼭 들었나 보다. 이 위대한 두 궁정화가는 아부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왕실의 내면을 그리기 위해 기존의 회화 방식의 선을 넘었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고야의 그림을 다양하게 아주 많이 보아서 나중에 우리는 어디를 가도 고야의 그림을 금방 알아보았다. 

우리는 이어지는 수많은 명작을 달리기하듯이 보고 숨이 가빠 미술관 입구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쉬었다. 해가 지는 마드리드 거리에는 잎을 달지 않은 아름드리나무와 고야의 동상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온종일 몇백 년의 역사와 문화를 넘나들어 시간 감각이 마비된 것 같았다. 

친구가 제대로 된 정통 스페인 음식을 사준다고 해서 오래된 식당을 찾아가는 길, 시청 외벽에 걸린 세계 여성의 날 플래카드를 보았다. 보라색 옷을 입고, 머리까지 보라색으로 물들인 여자들이 여성의 인권을 주장하는 조용한 시위를 벌였다. 어느 오래된 건물 외벽 전체를 우리나라 핸드폰 광고가 차지해서 눈에 띄었다. 외국에서 보는 고국의 낯익은 상표가 반갑고 뿌듯했다. 

스페인 사람들이 먹는 스페인 음식은 우리 입맛에도 잘 맞았다. 좋은 와인과 재료가 진정인 음식을 먹으면서 우리는 또 즐거운 수다를 떨었다. 마드리드 궁궐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이 보석처럼 현란해 눈을 부시게 했지만, 같이 여행하고, 환대해 주는 친구가 있어 우리의 여행은 더욱 반짝였다. 마드리드에서의 마지막 밤은 아쉬움을 남기면서 만사나레스 강과 함께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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