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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Street Sep 30. 2019

삶이라는 진귀한 체험
<애드 아스트라>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애드 아스트라>

 1968년, 사상 최초로 아폴로 8호는 달의 궤도를 선회하는 데 성공한다. 승무원들은 달에서 지구가 떠오르는 어스라이즈(Earthrise)를 생중계로 담아냈고 인류는 드디어 지구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 이 세기적 사건을 두고 시인 '아치볼드 매클리시'는 뉴욕 타임즈에 ‘푸르고 아름다운 지구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지구의 승객이며 우리가 형제임을 진실로 아는 형제들’이라는 구절이 담긴 시를 기고했다. 우주의 무한함 속, 인간 존재의 유약함과 허망함에 좌절하는 대신, 생명의 소중함과 연대의 가치를 역설했다는 사실은 꽤나 인상 깊게 다가온다.



 

분노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우주에서 지적 생명체를 찾는 '리마 프로젝트'를 이끌었다가 실종된 영웅인 아버지 클리포드의 뒤를 이어 우주비행사가 된 로이는 임무에 맹목적으로 삶을 헌신해온 인물이다. 영화가 시작할 때 읇조려지는 '꼭 필요한 선택만 하겠으며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겠다'는 로이의 독백은 아내 이브가 떠날 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씬 그리고 사람들에 대해 염증을 느끼는 씬과 병치된다. <애드 아스트라>는 삶을 허무의 시공간으로 인지하는 로이의 태양계 로드무비다. 그리고 이 로드무비는 그 끝에서 상기의 아치볼드 매클리시의 시를 잊지 않는다. 

 과전류 현상인 '써지'의 발생으로 지구의 인류가 생명을 위협받게 된 가운데 로이는 사령부로부터 써지의 근원지가 해왕성 부근의 리마 프로젝트이며 클리포드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동시에 로이는 화성 통신 허브에서 클리포드에게 아들로서 설득 메시지를 전송하라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클리포드에게 닿기 위한 로이의 여정은 자신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오랜 기간 부재했던 존재(아버지)의 근원에 대한 여정이라 견지할 수 있다. 한편, 십수 년 전 클리포드가 떠났던 여정은 인류의 근원에 대한 여정이라 견지할 수 있다. 

 근원을 찾기 위해 우주로 나아가는 이 부자의 여정은 우리가 당도해야 하는 삶의 근원이 과연 무엇인지 집요하게 캐묻는다. 로이가 탑승하게 되는 선체의 이름이 진지함 내지 엄숙함을 의미하는 라틴어 '세리우스'라는 사실은 이를 은유적으로 뒷받침한다. '(삶의 근원에 대한)진지함'에 탑승해 화성 통신 허브로 향하던 로이는 생체 의학 연구 선체의 조난 신호를 받고 승무원 한 명과 선체에 진입한다. 이 과정에서 승무원은 실험용 유인원에게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다. 선체로 복귀한 로이는 처음으로 감정적으로 동요한다.

 

 혼란 [사진 출처: 다음 영화]

 로이는 유인원의 분노를 이해한다. 자신에게서도 그와 같은 분노를 발견한 까닭이다. 자신을 두고 떠난 아버지 클리포드에게 분노하지만 그 이면에 있는 것은 결국, 초라한 상처뿐이다. 로이는 자신이 아내 이브에 대해서도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음을 열지 못하고 방황하는 원인이 아버지에 의한 상처로부터 비롯됐다고 진단한다. 상처는 잔존하지만 상처의 원인에게 대거리조차 하지 못할 때, 우리는 그 상처와 상처에서 비롯된 삶을 어떻게 감당하고 또 극복해야 하는가. 아버지에게 닿기 위한 여정에서 로이가 처음 발견한 감정은 분노다. 

 마침내 도착한 화성 통신 허브에서 로이는 관리소장 헬린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 듣는다. 리마 프로젝트 도중 승무원들이 지구로의 귀환을 요구하며 폭동을 일으키는 사건이 발생했다. 선장인 클리포드는 임무 수행을 위해 선내 일부에 생명유지장치를 정지시켰고 폭동을 일으킨 승무원과 무고한 승무원 모두 사망했다. 클리포드는 이제 로이에게 영웅이라는 도금마저 벗겨져버린 존재가 되고 말았다. 이제 로이의 분노를 점철하는 건 혼란이다. 로이는 자신의 손으로 이 혼란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것을 안다. 자신을 위해서도. 지구를 위해서도.  

 (클리포드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지침대로 읽지 않았다는 이유로)사령부로터 임무 권한이 박탈된 로이는 몰래 세리우스에 잠입한다. 승무원들은 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로이를 사살하려 로이는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이 과정에서 승무원 전원이 사망한다. 이때, 유감을 표하면서도 역사가 판단해줄 것이라며 미완의 임무를 계속해서 수행하려는 로이의 모습은 클리포드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로이를 연기한 브래드 피트는 원망하는 존재와 가장 유사한 존재가 되어갈 때의 비극적인 고통과 좌절을 짙은 표정과 암울한 독백으로 설득력 있게 구사한다. 


 희망 [사진 출처: 다음 영화]

 화성에서 해왕성까지의 소요 시간은 79일. 로이는 우주가 아닌 자신의 내면을 유영한다. 로이는 마음을 열지 못하는 그에게 좌절하며 이별을 고하는 아내 이브의 환청과 우주 탐사 프로젝트를 그만둔 로이의 결정을 두고 실망하며 비난하는 아버지 클리포드의 환청에 시달린다. 끝내 로이는 '난 혼자야', '난 이기적인 놈이야'라고 중얼거리기까지 한다. 무한함을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상 무로 점철된 우주라는 시공간을 로이는 사랑했던 이들에 대한 죄책감, 좌절, 후회라는 유의 감정으로 삼투시킨다. 이 고독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마침내 클리포드를 마주하게 된 로이가 내뱉는 첫인사말이 "혼자 계세요?"라는 사실은 그 고독의 깊이를 실감하게 한다. 그러나 재회의 감동은 언제나 예상을 벗어나기 마련이다. 클리포드는 로이에게 자신 삶에 로이와 아내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으며 지구가 아닌 우주가 자신의 집이라고 말한다. 그에 대한 원망으로 삶에서 빗겨 나버린 로이에게 클리포드는 어떠한 사죄의 단어도 언급하지 않는다. 로이가 한 평생 찾아내고자 했던 삶의 근원인 우주와 아버지는 그가 그들로부터 소망해왔던 평화와 위안을 주지 못했다.

 영화의 끝에서 로이에게 평화와 위안을 선사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러닝타임 내내 부정해왔고 탈출하고자 했던 지구였다. 로이와 클리포드가 리마 프로젝트 밖으로 나왔을 때, 클리포드는 제발 자신을 놓아달라며 자신과 로이 사이의 연결선을 끊어버린다. 리마 프로젝트를 기준점으로 클리포드는 하강하여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로이는 리마 프로젝트의 선체 벽면을 뜯어내 방패 삼아 운석으로 가득 찬 해왕성 고리를 통과, 상승하여 세리우스로 유영해간다. 우리는 로이를 지켜줬던 방패를 '사람들에 대한 희망'이라고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로이는 지구에 도착하고 구조원들이 그를 향해 달려온다. 이때 카메라는 아웃포커싱(초점을 맞춘 부분은 선명하게 그 외 부분은 흐릿하게 하는 촬영 효과) 기법을 사용해 손만을 또렷하게 응시하는데 이는 꽤나 의미심장하다. <애드 아스트라>는 우주에서 허공을 헤집어오던 로이의 손이 자신을 향해오는 누군가의 손을 기꺼이 잡음으로써 완성된다. 로이는 이제 어느 때보다도 삶의 의욕을 느낀다. 누군가에게 기꺼이 의지하고 또, 기꺼이 의지가 되고자 한다. 영화는 이브와의 재회 씬을 기점으로 끝이 나는데 그 끝은 클리포드의 끝과는 다를 것이다.   

 우주라는 정신적, 물질적 수난 속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가장 값진 것은 '끝끝내 서로에 대한 사랑'이라고 증명한다는 점에서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애드 아스트라>와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는 썩 닮은 구석이 많다. 우리의 삶 역시, 마찬가지다. (per ardua) ad astra. '역경을 딛고 별로 나아가다'라는 뜻의 제목처럼 우리는 매일매일 역경으로 가득 찬 미지의 공간으로 여정을 떠난다. 그리고 그 여정은 언제나 귀환을 통해 완성된다. 우리는 언제나 돌아가야 한다. 당신의 사람들과 당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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