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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Street Nov 08. 2020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춘예찬 <델타 보이즈>

<족구왕>의 주인공 만섭의 10년 후를 보았다

 우문기 감독의 <족구왕> 속 주인공 '만섭'의 삶을 10년 후까지 유예한다면 그 모습은 고봉수 감독의 <델타 보이즈>의 '일록'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창 취업준비에 매진해야 할 대학생 만섭은 족구에 열과 성을 쏟고(족구왕),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고 가정을 꾸려야 할 시기에 일록 포함 4명의 델타 보이즈는 남성 사중주 합창에 사활을 건다(델타 보이즈). 사회가 정해주는 생애주기에 따른 당면과제를 보란 듯이 뻥 차버리고 가슴을 뛰게 하는 일에 모든 것을 걸어본다는 점에서 만섭과 델타 보이즈는 퍽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두 영화에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족구왕>은 '이 대책 없는 청년을 어떻게 할까?'하는 푸념을 늘어놓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정서의 베이스 자체는 '청춘예찬'이다. 영화가 청년세대의 고민거리를 계속해서 끌어안고 있지만 그럼에도 비치는 만섭의 삶은 유쾌하고 경쾌하다. 영화의 사운드 트랙에 청춘을 응원하는 페퍼톤즈의 <청춘>이 수록돼있다는 사실 역시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청춘의 모습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러니까 <족구왕>은 분위기부터 세부적인 설정까지 청춘을 예찬하는데 주력한다 


 <델타 보이즈>의 주인공들도 본질적인 삶의 궤도 자체는 만섭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만섭의 삶처럼 마냥 아름답게 비치지 않는다. 영화의 필름에서부터 다큐멘터리 식의 무미건조함이 느껴진다. 인물들의 설정과 역학관계는 더욱 고되다. 주인공들은 누군가의 덕택으로 근근이 경제적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이고 영화가 진행될수록 점점 상황은 악화되기만 한다. 인생을 빵과 장미로 비유했을 때, 장미도 취하지 못하고 빵도 취하지 못한 채 나이가 들어버린 이들의 불안과 자조는 보는 이를 깊게 침전시킨다. 


 그렇다고 <델타 보이즈>가 삶에 대한 깊은 침전에서 오는 불안감을 음악으로 온전히 상쇄시키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존 카니 감독의 <싱 스트리트>, <비긴 어게인>과 같이 세션을 이뤄 무언가에 도전하는 음악 영화는 통상 30분 내외 선에서 세션 구성과 합주를 시작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델타 보이즈>는 영화가 시작된 지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주인공들의 본격적인 연습을 보여준다.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에는 인물들을 둘러싼 현실적인 문제와 연습 장소, 연습 일정 조율 불화와 같은 다양한 문제가 얽혀 있다. 


 그렇게 시작한 이들의 사중주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엉성하기 그지없다. <족구왕>에서 만섭이 보여줬던 것과 같은 흥미진진한 클라이맥스는 찾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사중주 대회를 담당하는 공무원의 눈빛처럼 싸늘하고 무관심하다. 무엇보다 <족구왕>에서 허용되는 청춘에 대한 정상참작이 <델타 보이즈>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모든 난제들을 보여주고도 고봉수 감독은 테너의 음성으로 나지막하지만 힘주어서 말한다. 


엔딩이 설령 본선에도 오르지 못하는 리허설에 불과할지라고 도전한다면 그게 곧,  viva la vida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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