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헌트>는 왜 흥행했고, <리멤버>는 부진했나
일제강점기와 군부독재보다 한국 관객을 분노하게 하는 소재가 있을까. 올해 3분기, 전두환 대통령의 암살을 다룬 <헌트>가 435만 명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4분기에는 친일파 인사들의 암살을 다룬 <리멤버>가 관객 수 41만 명으로 손익분기점 200만 명 달성에 실패했다.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을 다룬 <헌트>와 <리멤버>의 간극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 간극에서 최근 한국 관객들의 영화 평가 기준을 확인할 수 있다.
<헌트>에서 사냥(헌트)은 세 가지 층위에서 이뤄진다. ①전두환 대통령의 국민 사냥 ②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 서로에 대한 사냥 ③박평호와 김정도의 전두환 대통령 사냥. <헌트>는 각 단계들을 거치며 군부독재의 악랄한 행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여기에 이정재와 정우성이라는 귀한 조합이 빚어내는 액션과 스릴러 그리고 반전은 지루할 틈 없이 이야기를 견인한다. 박평호와 김정도가 같은 목적임을 알았을 때의 안도감과 흥분은 <헌트>의 피날레다.
사냥 자체가 갖는 폭력성에 면죄부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도 인상 깊다. <헌트>는 사냥이 필연적으로 살해를 동반하기에 정당화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굉장히 영리한 영화다. 복수극은 이렇게 쓰여야 한다. 청산되지 않은 과거를 소환해 시사점을 제공하면서도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놓치지 않는다. 우정출연을 포함한 캐스팅 라인업도 꽤 화려하다. 캐스팅이 흥행을 보장하지 않지만 작품성이 전제될 때 얼마나 빛을 발휘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친일파들에게 가족을 잃은 참전용사 출신 치매 노인의 친일파 복수극’이라는 <리멤버>의 로그라인은 참신하다. 아우슈비츠를 소재로 한 원작 <리멤버: 기억의 살인자>만큼이나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기도 하다. <리멤버>는 ‘일본군 위안부’부터 ‘강제 징용’까지 최근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적 비극을 스크린에서 복기한다.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허스토리>와 <아이 캔 스피크>와 마찬가지로 비극을 자극적으로 재현하지 않은 점에서 예의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전개과정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리멤버>의 엔터테인먼트 요소는 ‘참전용사 출신의 노인 액션’인데 긴장감이 현저히 떨어진다. 불법 무기 개조에 의한 부비 트랩이 액션의 대부분이나 설득력과 흥미가 부족하다. 이를 의식했는지 엘리베이터 혈투씬(주인공과 동년배인 암살대상)을 마련했지만 그리 효과적이지는 못했다. 유능하지만 한 발 늦는 경찰 클리셰도 상투적이다. 경찰이 주인공을 잡기 직전에 사람들이 가로막거나, 차 문이 닫히는 상황이 반복된다.
물론 <리멤버>의 시사점은 명확하다. 영화에서 친일파에 가담했던 이들은 처단당하고 자신의 죄를 세상에 고백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한다(리멤버)’는 당부는 치매를 앓고 있는 한필주(이성민)을 넘어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까지 전이된다. 한편, 모든 암살에 성공하고 자결하려는 한필주에게 ‘죽지 말고 책임을 져라’라는 박인규(남주혁)의 외침은 <헌트>처럼 사냥을 정당화하지 않으려는 의미로 보인다.
좋은 소재가 좋은 영화를 담보하지 않는다. 관객은 영리하다. 관객은 주제가 아니라 ‘만듦새’로 영화를 평가한다. <리멤버>와 <헌트>는 한국의 비극적인 근현대사를 담았다. 그러나 <헌트>는 화제를 부르는 캐스팅과 이들에 의한 액션과 스릴러, 반전을 긴장감 있게 다뤘지만 <리멤버>는 그러한 점들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영화는 트렌드를 반영하는 복합예술이다. 트렌드를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것만큼이나 관객의 흥미를 붙잡을 수 있는 설득력과 매력을 갖춰야 한다. 이는 한국 관객들의 영화 선택 기준이 높아졌다는 반증일 것이다. 영화 업계는 자랑스러움과 긴장감을 동시에 갖춰야 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