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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Street Mar 12. 2023

아티스트 스무살:이십대의 풋풋함에서 삼십대의 성숙함으로

4년 만의 콘서트 ‘동창회’ 리뷰·비하인드 스토리

내게는 비밀스러운 취미가 하나 있다. 열여덟 살까지 주욱 살아왔던 서울 구로구 고척동의 공원과 시장, 주택가 등을 발걸음이 향하는 대로 온종일 걷는 것. 스무살 무렵부터 시작된 취미로 내게 주어진 상황이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거나 마음이 헛헛할 때마다 나에게 큰 위로가 돼줬다.    

  

스무살의 노래를 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날씨가 미쳤어>나 <전화할게> 같은 비교적 초창기의 곡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살면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의 결을 세밀하게 표현해 내는 가사와 목소리, 쉽고 편안하게 들리지만 흔하지 않은 멜로디에 매료됐다.      


그때부터 고척동을 걸을 때마다 스무살을 들었다. 이후로 ‘스무살=고척동=위로·안식’이라는 나름의 삼단논법(?)이 형성되며 자연스럽게 스무살은 내게 위로와 안식이 돼줬다.      


분홍빛과 초록빛 사이의 봄에는 <걷자 집 앞이야>, <날씨가 미쳤어>처럼 산뜻하고 다분히 청춘스러운 곡들을 들으며 걸었고 손을 안주머니에 넣어도 금방 곱을 정도로 추운 겨울에는 <내 맘 같지 않은 오후>. <X>를 들으며 내가 잃은 것들을 복기하며 하염없이 걸었다.      


스무살의 노래를 들으며 스무살을 보냈던 궁상맞았던 대학생은 어느덧 직장에 들어가고 시시한 어른이 됐다. 세상을 예전만큼 섬세하게 느낄 수 없음에 속상해질 무렵, 운이 좋게도 팬데믹 이후 4년 만에 열리는 스무살의 공연을 관람하게 됐다.     


2023년 2월 25일 홍대 벨로쥬에서 열린 스무살의 소극장 콘서트. <사진=무비스트리트>


‘단단한 아티스트’라 표현은 어떨까. <남이 될 수 있을까>, <걔 말고>처럼 가벼운 로맨스 곡으로 음원 시장에서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지만 아티스트로서의 고민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올해로 10주년을 맞는 스무살. 스물 후반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낡은 컨테이너를 빌려 계란판으로 방음벽을 만들며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그의 목적은 ‘진정성’이었다고. 이번 공연에서 곡을 시작하기 전마다 얽힌 사연과 배경을 들려줬는데 작사, 작곡에 많은 공을 들인 게 느껴졌다.     


‘미 비포 유’나 ‘플립’같은 영화를 비롯해 개인적인 아픔이나 구체적인 경험, 자신을 응원해 주는 팬들에게서 영감을 얻는다. 사랑으로 들리는 곡이 많지만, 정작 연인만을 위한 곡은 많이 없다고 한다. 친구, 과거, 가족 등 무엇을 대입해도 위로받을 수 있는 곡을 쓰는 편이다.     


그의 진정성은 이번 공연에서도 느껴졌다. 곡 하나하나에 담긴 감정을 충실히 담아내며 때로는 울컥하거나 복받치는 모습도 보였다. <샌디에고>와 <X>는 서사가 잘 짜인 한 편의 뮤지컬 독백처럼 다가왔다.     


무엇보다 공연에서만 볼 수 있는 애드립과 편곡도 이번 공연의 묘미 중 하나. 밴드 세션으로 듣 스무살의 노래야말로 공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경험 아닐까. 정식 음원과는 다른 곡의 해석도 짐짓 새롭다.      


한편, 진정성을 담은 곡을 많이 작업하겠다고 밝히면서도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곡도 놓지 않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적재의 <손을 잡는다거나, 같이 걷는다거나>처럼 본인이 직접 부르지는 않더라도 다른 아티스트의 작사·작곡 과정에는 꾸준히 참여할 계획이라고.      


또, 규모 공연보다는 이날 열린 소극장 공연처럼 적은 관객들과 소통하는 자리가 편하다고 거듭 말하는 모습에서 관객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그의 스타일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공연을 반기별로라도 열고 싶다고 밝혔는데 현장의 팬들은 분기별로 열어달라고 작은 소란이 벌어지기도.


이십대의 풋풋함과 열정에서 시작해 삼십대의 성숙해진 감정으로 나아가고 있는 아티스트 스무살의 행보가 기대된다. 다음은 스무살이 이날 공연에서 밝힌 곡의 비하인드 스토리.      


# <롤러코스터(2015)> ‘다시, 스무살’의 다섯 번째 수록곡.     

다시, 스무살 앨범. <사진=지니>

오랜 시간 최선을 다해 준비했으나 막상 기회가 왔을 때 지레 겁을 먹고 주저하게 될 때가 있다. <롤러코스터>는 이 모든 과정을 놀이동산에서 롤러코스터를 기다리듯 설레는 마음으로 맞이하고 충분히 즐겨보기를 응원하는 곡.      


스무살의 포근한 목소리로 밴드 음악을 듣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다. 통기타의 경쾌한 스트로크가 능수능란하게 완급조절하며 곡을 이끌어나간다. 하이라이트에 등장하는 브레이크(악기들이 잠시 연주를 멈췄다가 다시 시작하는 기법)가 지루할 틈이 없게 만든다. 산뜻한 가사와 통통 튀는 곡의 구성이 초여름의 초록빛을 연상케 한다.     


# <7942(2020)>. 단독앨범.     

7942 단독앨범. <사진=지니>

스무살에 따르면 ‘볼빨간 사춘기’와 함께 작업한 <남이 될 수 있을까>의 대성공 이후부터 <롤러코스터>·<난 너의 피터팬>(2015) 류의 인디 감성 ‘청춘예찬’곡은 쓰기 어려워졌다고 한다. <7942>는 스무살이 초창기의 풋풋함을 생각하며 작곡한 레트로 감성의 로맨스 곡이다.      


이 곡은 현란한 드럼과 휘황찬란한 전자음으로 시작되는 인트로부터 ‘더 블루’의 <너만을 느끼며>(1992)를 연상케 하며 레트로한 사운드 전개를 예고한다. 여기에 술자리에서 자신의 소매 끝을 잡아당기고 머리를 쓰다듬는 옛 친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호감을 느끼는 서사까지 더해져 ‘응답하라’ 시리즈의 한 편을 보는 느낌. 스무살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호소하는 듯한 고음도 포인트다.

     

# <샌디에고(2015)>. ‘다시, 스무살’의 열한 번째(마지막) 수록곡.      

다시, 스무살 앨범. <사진=지니>

스무살의 사연이 담긴 곡. 이삿짐을 정리하던 중,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친구와 주고받았던 엽서를 발견했는데 뒷면에 샌디에고 해변 사진이 있었다고. 자신은 어느덧 어른이 됐지만, 여전히 삐뚤삐뚤한 글씨로 샌디에고 해변의 풍경에 머물러있는 친구를 위해 만든 곡이다.      


이 곡은 스무살의 감정선을 따라 담담한 독백으로 시작돼 복받치는 흐느낌으로 마무리된다. 첫 번째 벌스는 정직하게 정박에 떨어지는 피아노 선율로만 진행된다. 두 번째 벌스는 이에 감응하듯 피아노와 기타, 현악기가 함께 어우러져 스무살의 목소리를 지탱한다. 그의 목소리 뒤로 이따금 들리는 샌디에고 해변에서 들려오는 바다의 철썩거림은 이 서사에 입체감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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