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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Street Jun 30. 2019

어쩌면 저는 두려운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아주 새삼스럽게. 

#1.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당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 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하여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의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이하 생략) 

 수험생 시절, 담임 선생님께서 게시판에 시 하나를 붙여놓셨다. 김수영 시인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라는 이름의 시였다. 이따금씩 나는 양치질을 하며 게시판 속 시를 스윽 흝어보곤 했는데 무엇에 옹졸해지지 말아야 하고 무엇에 분개해야 하는지 굳이 알려고 하지는 않았다. 옹졸함과 분개 따위의 것들은 대학에 가서 생각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그때의 내가 미뤄온 것은 옹졸함과 분개 같은 추상적 단어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채로 성인이 됐고 어느샌가 시 속의 인물처럼 꽤나 옹졸해져 버렸다. 사소한 감정들과 사건들에만 옹졸하게 분개하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잦았다. 그렇게 살다 보면 이따금씩 '옹졸하게 욕을 하고'라는 구절이 불현듯 떠오르고는 했다.  

 나는 그 시간을 오십 원짜리 기름 덩어리에 분노하는 대신 자유를 이행하는데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선생님께서 게시판에 영단어 대신 출제도 잘 되지 않은 시를 구태여 붙여놓으신 그 마음을 이제는 알 것 같다. 당신의 제자들이 옹졸한 어른으로 자라나지 않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보다 좋은 사람이 되기를, 큰 꿈을 꾸고 세상과 부딪쳐보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지금의 내 모습과는 다른 모습으로.


#2.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필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이하 생략)

 참 열심히 살기는 했다. 대학 생활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공백을 허락하지 않았다. 2년간은 교내 신문사에서 일하며 주말도 반납한 채 기자 생활을 했고 1년 반은 시사회, 영화제를 다니며 문예 전문 인터넷 언론에 영화 칼럼을 기고했다. 칼럼 기고와 동시에 한 1년 간은 영화사에서 시나리오 검토 작업을 맡기도 했다. 내 나이치고 참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고 조금은 자부심을 느껴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커리어를 쌓는데 열중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대학 생활을 한 기억이 전무하다. 그래도 내가 쌓아온 커리어가 이를 상쇄시켜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괜찮았다.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의 구절처럼 눈을 뜨고 일어났을 때, 곁에 둘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이 없어도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이 없어도 그래서 추위와 헤맴을 겪어도 괜찮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둘 모두를 가질 수는 없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문득 내가 쌓아온 모든 것들이 사실은 너무도 유약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언론 계열 학과를 전공하면서 학점만 좋았지 내가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조차도 몰랐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글을 쓰면서도 많은 이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내가 좇은 것이 이토록 유약한 것이었음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때로는 공든 탑도 무너지더라. 그러면 결국 나는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할 요령밖에는 없는 것이었다.


#3. 어쩌면 저는 두려운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랜만에 절친한 형과 만나 술 한 잔 하던 중 형이 한 일화를 말해줬다. 한 교수가 수업 중에 "정말 좋아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발견하십시오. 삶이 너무 지치고 힘들 때 봄으로써 위로받을 수 있는 작품들을요"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이 유독 머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내게도 인생영화가 있다. 고등학생 때 본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어바웃 타임>. 그때의 두근거림과 설렘이란. 그러나 그 이후로 다시 본 적은 없었다.

 나는 내가 정말 힘들 때가 아니라 내가 정말 행복할 때 보기 위해 그 순간을 아끼고 또 아꼈다. 사는 건 항상 무언가를 참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스펙을 쌓는 것 역시 성공을 위해 현재를 참아내는 일이니까. 그런데 행복은 참아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중하지 않은 순간이 없는데 나는 부득부득 그 모든 순간을 싸잡아 행복하지 않은 순간으로 격하시켰고 외면했다. 

 지금 내가 이토록 옹졸해지고 추위와 헤맴에 직면하게 된 까닭은 내가 그처럼 과거를 매도해온 까닭일까. 그러나 내가 두려운 건 당장의 이러한 옹졸함과 추위와 헤맴이 아니다. 어찌 보면 미래의 행복을 위한 희생이라고 볼 수 있는 그것들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님을 언젠가는 받아들여야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지금의 내가 이렇게 횡설수설하는 까닭은 어쩌면 두렵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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