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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혜 Jun 28. 2021

라디오 작가가 정치사회분야 책을 써도 되는 걸까

[출간 소식]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

라디오 작가로 살면서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혹시 언젠가 책을 내게 된다면 웃긴 이야기로 내고 싶다고요. (유우머에 대한 열망이 있는 편.) 하지만 글을 써보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사람을 울리는 글보다 웃게 만드는 글이 훨씬 쓰기 어렵다는 걸 말이죠. 그걸 깨달은 뒤로는 웃긴 글로 책을 내지는 못하더라도 따뜻하고 포근한 글을 모아서 책을 쓰면 어떨까 (혼자) 생각하곤 했습니다. 상상은 공짜니까요.


예... 인생사 어디 뜻대로 되던가요? 저는 방송가에서 일하며 차곡차곡 전투력을 쌓아 올렸습니다. 너무도 하고 싶던 일이었지만 방송 제작 현장에서 매일 제 상식 바깥의 상황과 마주했거든요. 방송에서, 특히 지역사에서 작가의 위상을 모르던 저는 해맑게 “계약서는 언제 쓰냐”고 사측에 물었습니다. 그러자 “여기는 원래 그런 것 쓰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어요. 그때 예감했습니다. ‘나는 앞으로 아주 많은 질문을 품게 되겠구나.’


질문과 고민의 나날들


현직 작가로 일하던 시절에도 마음 한구석에는 항상 ‘미해결 과제’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후배 작가의 최저시급도 미치지 못하는 급여 앞에서 늘 미안한 선배였고, 하루아침에 속절없이 방송을 떠나는 선배 작가들 뒤에서 늘 송구한 후배였습니다. 방송에는 성역이 없다지만... 저희가 서있던 그곳, 방송 제작 현장이 바로 성역이었어요. 방송은 절대 방송의 음지를 다루지 않았으니까요.


방송을 떠난 뒤, 저는 방송 원고가 아닌 글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자꾸 방송하며 꾹꾹 눌러두고 미뤄두었던 노동 분투기만 쓰이는 겁니다. 나는 웃긴 글 쓰고 싶은데! 따뜻한 에세이가 쓰고 싶은데! 제 이런 발악을 곁에서 보던 친구는 말했습니다. “너는 방송 이면을 밝히는 글을 써야 돼. 책 제목은 ‘분노의 프리랜서’ 어때?” 세상에 분노의 프리랜서라니요. 아니, 분노했던 건 맞지만. 프리랜서도 맞지만...


그렇게 방송 노동 이야기를 열 편 정도 쓰고 난 뒤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이 일들을 써야 하고, 그래야 생의 다음 스텝으로 나아갈 수 있겠다는 사실을요.


“쓰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는 일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게 부모의 삶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게 학교폭력 경험담이다. 내게는 그게 방송가에서 보고 겪은 일들이었다.”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 프롤로그 중에서


글을 열다섯 편정도 썼을 무렵, 감사하게도 이야기들을 책으로 내자는 출판사의 제안을 받게 됩니다. 출판사 대표이자 편집자님과 미팅을 잡았어요. 처음 만난 자리에서 대표님이 제게 질문하셨습니다. “작가님, 저는 이 이야기가 좋은데... 출판해도 괜찮으시겠어요?” 그 물음을 들으니 책을 꼭 내고 싶어 졌습니다. 대표님이 걱정하신다는 건 그만큼 제 글이 솔직했다는 뜻일 것이고, 아마도 지금까지 접하지 못했던 종류의 글이라는 얘기일 테니까요. (멋대로 해석하기의 달인)


출판사와 계약을 한 뒤 저는 한 편의 글을 완성할 때마다 편집자님께 보내드렸습니다. 글은 마감이 쓴다는 말도 있고, 무엇보다 나태가 저를 집어삼킬까 두려웠거든요. 저의 성실성을 믿고 자율에 맡기느니 매주 마감하는 감각으로 몸을 길들였죠. 그러지 않았으면 책은 내년에 나와야 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저를 잘 알아요...


편집자님은 제 글을 보며 매주 고구마를 드셔야 했습니다. 물고구마도 아닌 밤고구마를요... 따사로운 얘기들이 아닌지라 답답하고 숨 막히는 순간들이 많았을 거예요. 그 이야기는 출판사 서평에도 살짝 나옵니다.


“한 회당 몇 백, 몇 천을 받는 유명 연예인의 삶을 살겠다는 것이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노동 환경에 대한 이야기이다. 물론 방송국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형태는 조금씩 달라도 우리의 노동 현장에는 불공정과 부조리와 비정함이 얕고 또 깊게 깔려 있다. 그것을 알기에 글을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노동의 대가로 급여 대신 상품권을 받았다던가,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고 받은 첫 월급이 40만 원이었다는 대목에선 말문이 막혔다. 자신이 퇴직된다는 것을 구인 공고를 보고 알게 된 어느 작가의 이야기에도 그랬다. 이게 진짜 지금 이 시대에 일어난 일이라고? 책을 만드는 내내, 내가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가 무엇을 해야 할지, 할 수 있는지 계속 물었다.”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 출판사 서평 일부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 책 표지


앞서 서평에도 잠깐 보셨지만 제 책은 에세이가 아닌 정치사회 카테고리로 확정되었습니다. 편집자님과 제가 마주 앉아 고민한 결과가 그랬어요. 내용도, 형식도 에세이보다는 사회나 미디어가 가깝다는 판단에서였죠.


매주 목 막힘과 싸워가며 방송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주신 편집자님께 저는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현장이 바뀌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썼기에 에둘러 말하기보다 날 세워 말했고, 묘사보다 기록을 앞세웠거든요. 그동안 실컷 고구마를 드렸으니 다음번에 만날 때는 사이다라도 한 잔 사드려야겠어요...


자 여러분, (이제야 본론) 방송 노동 ‘대 환장 파티’를 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어떤 이야기들이기에 편집자가 고구마를 백 개 먹었는지 궁금하시죠?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고구마만 있는 건 아닙니다. 1부에는 꿈과 희망의 파스텔 톤 이야기도 나와요. 진짭니다. 아, 물론 2부와 3부는 흑백 누아르물에 가까워지긴 합니다만.


방송 노동의 (짧은) 온탕과 (긴) 냉탕을 오가는 이야기, 방송이 하지 않던 방송의 이야기, 사랑과 정의와 다정을 노래하는 곳에서 일어나는 부조리와 비정함에 대한 이야기가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함께 읽고 공감해주신다면 더없이 기쁘겠습니다.



교보문고


Yes24


알라딘


인터파크도서

* 오프라인에는 빠르면 내일 6/29(화), 아니면 수요일쯤 책이 깔리게 된다고 하네요. 



어디선가 조용히 읽어주셨을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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