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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혜 Nov 02. 2021

나보다 먼저 늙는 나의 아이

어쩌자고 고양이를 마음속 가장 말랑하고 연약한 곳에 들여버렸을까

얼마 전, 천장 수리를 위해 하자 보수 업체 기사님이 우리 집에 방문하셨다. 기사님은 두 고양이를 보시고는 “몇 살이에요?”하고 물으셨다. 첫째인 반냐는 열한 살, 둘째인 애월은 아홉 살이라고 답해드리자 기사님은 “어이구 나이가 많네”라고 혼잣말 비슷하게 감탄하셨다.


저희 애가 나름 동안입니다만...   ⓒ unsplash


무심하게 답했던 나는 기사님의 말에 조금 놀랐다. 우리 집 고양이들이 남들 보기에는 중년이구나 싶었달까. 평소엔 두 고양이의 나이를 잘 떠올리지 않고 지내서 더 그랬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녀석들이 착실히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 노화보다 내 고양이들의 노화를 떠올릴 때 마음이 더 불안하니까.


누군가 그랬다.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삶은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라고. 요즘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반려동물과 살아가는 건 ‘나보다 먼저 늙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라고. 포털 사이트에 나와 있는 고양이 나이 환산법(성장이 완성되는 1세까지는 20살로 치고, 2살부터는 4세씩 증가하는 것으로 계산)에 따르면 11살인 반냐는 사람 나이로 60세 이고, 9살인 애월은 52세가 된다.


식탁이 아지트였는데... 왜 오르질 못하니


처음 첫째 고양이 반냐의 노화를 알아챈 건 식탁 언저리에서였다. 반냐는 타인에게는 새침하지만 남편과 내게는 늘 애정을 갈구하는 응석받이다. 내가 식탁에서 일할 채비만 하면 식탁으로 가볍게 점프한 뒤 노트북 옆에 털썩 드러누워 ‘일이고 뭐고 일단 쓰다듬어 줘’라는 얼굴로 야옹거리는 게 일상이다. 하지만 얼마 전에는 식탁에서 노트북을 펼쳤는데도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반냐가 낮잠을 자나보다’ 생각한 뒤 문서 창을 켰다. 그때 발치에서 냐아아- 쉰 목소리가 들렸다. 아래를 보자 반냐가 보였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했다. 반냐가 자꾸 식탁을 보며 몸을 주춤거렸다. 잠시 녀석을 관찰한 뒤 알 수 있었다. 사뿐하게 점프하고 싶은 데 관절이 따라주지 않으니 머뭇거리며 울고 있는 거였다.


엉거주춤 식탁만 올려다 보며 울던 내 첫째 고양이.   ⓒ unsplash


그날 나는 반냐를 식탁으로 안아 올리며 조금 울었다. 열 살이 넘었어도 마냥 아기 같아 보였던 내 고양이의 늙음을 직면하는 일이 버거워서. 인간의 시간보다 급하게 흐르는 고양이의 시간을 붙잡고 싶어서. 함께할 시간이 줄어드는 게 조바심이 나서. 무엇보다 고양이들이 내 곁을 떠난다는 걸 생각만 해도 두려워서.


반냐의 몸에서 한 번 노화를 발견하고 나니 예전과 다른 것들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에센스를 바른 것처럼 늘 윤기가 흐르던 반냐의 털은 어느새 푸석해졌고, 사냥놀이도 예전처럼 오래 하지 못한다. 좋아하던 장난감을 꺼내 흔들어도 녀석은 뛰는 둥 마는 둥 하다 바닥에 앉아 딴청을 피운다.


잠도 부쩍 늘었다. 원래도 고양이는 많이 자는 동물이지만, 요즘 반냐는 하루 대부분을 잠으로 보낸다. 나나 남편이 오며 가며 쓰다듬어줘도 그때뿐, 반냐는 눈을 끔벅이다가 볕이 잘 들어오는 자리로 어슬렁 걸어간 뒤 다시 존다. 햇살 속에서 잠든 반냐의 터럭이 희끗하다. 내 어린 고양이가 어느새 나를 앞질러 늙고 있음을 절감하는 나날들이다.


내 어린 고양이는 나보다 먼저 늙어 이제 양지에서 꾸벅꾸벅 조는 일로 하루를 보낸다.   ⓒ unsplash


고양이 털아, 오래오래 날려라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고양이의 노화를 알아차린 뒤로 나는 더 잘 살고 싶어졌다. 틈이 날 때마다 고양이들과 눈 맞춤을 하고, 일을 하다가도 잠시 짬을 내서 자고 있는 녀석들의 따끈한 몸을 쓰다듬는다.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고양이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사랑하는 존재의 늙음을 보는 일은 정말로 쉽지 않지만, 그만큼 생의 유한성을 절절하게 깨닫는 일도 없을 것이다.


요즘 나는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사람들과도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예전에는 감정이 요동치는 게 싫어서 관련 주제를 기피했었지만 이제는 언젠가 내게도 닥칠 일이라는 걸 인정하고 먼저 겪은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듣는다.


대화를 나누다 귀한 팁도 얻었다. 반려동물에게 노환이 오면 병원비가 눈덩이처럼 커지니 미리 예금이나 적금을 활용해서 따로 돈을 모아두면 좋다는 것. 이사를 할 때면 집 근처 24시간 동물병원 위치와 가는 길을 가장 먼저 파악해두라는 것. 사진과 영상을 틈 날 때마다 많이 찍으라는 것. 나는 먼저 겪은 이들이 나누어주는 이런 이야기들을 소중하게 받아 마음에 담는다.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도록. 고양이와 함께하는 시간들을 더 충만하게 보낼 수 있도록.



물론 아무리 주변인에게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다잡아도 나이 든 고양이와 사는 한 불안은 언제나 내 곁을 서성일 것이다. 나는 녀석들의 음수량이 줄면 줄어서, 늘면 늘어서 걱정을 하게 될 거다. 어쩌자고 고양이를 내 마음속 가장 말랑하고 연약한 곳에 입주시켜서 이 사달을 냈을까.


하지만 사실 나는 알고 있다. 고양이가 처음 내 몸에 찹쌀떡 같은 앞발로 꾹꾹이를 하던 그날, 슬그머니 다가와 처음 내 허벅지를 베고 자던 그날부터 알고 있었다. 나는 이 잠 많고 털 많고 세모난 입을 가진 생명체와 기꺼이 생을 함께 하리라는 걸. 그로 인해 많이 웃고 많이 울기도 하리라는 걸. 가끔은 불안을 쓰다듬으며 밤을 보내기도 하리라는 걸. 이미 알고 시작한 일이다. 그러니 괜찮다. 부디 우리 집에 고양이 털이 오래오래 흩날리기만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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