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사람들에게 한식 디저트를 소개하는 행사는 12월이다. 11월 내로 맛있는 한국 디저트 5종 테스팅을 마쳐야 한다. 뭐든 만들 수는 있지만, 중요한 것은 현지에서 구하는 재료로 얼마나 맛있는 재료를 만들 수 있는가! 현지 인의 입맛을 고려하면서도 정통의 범주 안에 있어서 새로 맛보는 분들이 한국에 방문했을 때 "아! 이게 그때 먹어본 그 메뉴구나"라고 할 수 있는 정도의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한식 디저트 중 빠질 수 없는 것! 새해에나 명절에나 백일상에나 돌잔치까지도 빠질 수 없는 메뉴. 그것은 바로 떡!!!
일종의 튀긴 떡인 주악을 만들면서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다음날 매우 딱딱하게 고무 씹는 것과 같은 텍스처. 이런 건 아무도 먹어서는 안 된다. 집청 이틀째 더 말랑말랑해진다고 했던 사람 누구인가!! 나와보시게!!! 해결방법은 간단하다. 그냥 당일에 먹기 바로 전에 만들면 된다는 것. 주악 한 판을 튀기는데 20분가량 소요되니 20개씩 세 번 튀기면 되는 거다. 한과의 유명 책 저자 셰프님께도 여쭤봤다. 물 양을 늘려 만드는 것 하지 말고 레시피대로 하고 당일에 만드는 것을 추천하신단다. 정석을 따르는 게 마음이 편하니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래서 떡집이 새벽부터 문을 여는구나. 갓 나온 따끈따끈한 떡을 만들어 손님들께 대접하기 위함이다. 누군가의 미라클 모닝과 새벽부터 흘리는 땀으로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떡, 기나긴 역사만큼 쉽게 볼 것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나의 다음 타자는 인절미였다. 그러나 싱싱한 콩가루를 구하는 것이 어렵다. 아시아 마켓에서 산 한국산 콩가루가 괜찮긴 했지만 과연 먹었을 때 맛있다!라는 감탄이 나올까는 의문이었다. 그래서 찰떡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그것도 노란 속살을 뽐내는 호박 찰떡으로 말이다. 그동안 테스트했던 메뉴는 약과와 주악. 둘 다 시나몬 향이 솔솔 나고 집청을 하기에 진한 달달한 맛이다. 가을 겨울에 어울리지만 다른 재료, 다른 요리법으로 만드는 한식 디저트가 얼마나 다양한데! 그래서 조금 더 담백한 메뉴를 만들고 싶었다. 찰떡은 찹쌀가루로 쉽게 만들 수 있다. 여러 방법을 고민하다 찹쌀가루를 익반죽하고 전자레인지에 돌려 쫀득하게 익히는 방식을 선택했다. 마침 스페인의 아주 유명한 미슐랭 쓰리스타 레스토랑에서 오랫동안 일하신 한국인 요리사분의 팁을 얻을 수 있었다.
제철을 맞이한 호박은 향이 좋았다. 한국에서 흔히 쓰는 단호박도 늙은 호박도 아닌 버터넛 스쿼시지만 호박 향이 솔솔 나는 것 보니 한국적인 디저트에 딱인 재료랄까. 잘 익혀서 치대는 것 대신 핸드 블랜더로 반죽을 정리해준다. 얼룩덜룩 했던 노란색이 한 톤 비단결 같이 정리되었다. 너무 말랑 거리는 것이 부담이 될까 봐 씹는 맛에 변주를 줄 견과류도 잔뜩 넣어본다. 피칸과 호박씨. 노란색에 갈색과 녹색. 색의 조합이 딱이다. 한입 냠! 이건 제대로 떡이잖아! 나도 1년 넘게 한국에 방문하지 못해 고향의 그리운 맛이 뭔가 가슴에 훅 하고 와닿는 느낌이었다. 한편... 한입씩 먹어보는 행사에서 호박 찰떡 한 덩이는 조금 투박해 보였다. 경단 크기로 자르고 카스텔라에 굴리기로 한다. 그럼 경단이 되는 거지!
동글동글한 경단을 만들어두고 보니 맛이 더욱 좋아졌다. 입에 넣었을 때 익숙하고 부드럽게 느껴지는 카스텔라와 쫀득하고 말랑말랑한 떡, 오독오독 씹히는 견과류까지 밸런스가 훨씬 좋아졌다. 뭔가 노력하다 맛있는 게 나오면 절로 기뻐진다. 내가 맛있는 걸 먹는 기쁨도 크지만 소개하고 나눌 것을 생각하면 두배로 더 커지는 그 마음. 1번 시식단은 언제나 우리 집 쌍둥이다. 노란색의 한식 디저트는 꼬마들에게도 인기 만점이었다. 마음에 드는 모양인지 다음 날 아침부터 찾는다. 아이는 여전히 경단이 만족스럽다. 어어어??? 어랏!!! 아직도 아주 촉촉하고 말랑말랑해!! 오히려 카스텔라가 적당히 수분 기를 머금고 잘 정돈된 표면이 되었달까. 그래 이건 전날 밤에 만들어두면 되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안도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