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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ebangchon May 14. 2020

코로나는 내게 이별이고 슬픔이다

포스트 코로나의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

*Photo by Renee Fisher on Unsplash


코로나가 나의 세계에 미치는 영향


코로나가 나를 집안에 가두기는 했지만, 여행을 못 가서 여행병 걸리게는 했지만, 가정 수입에 지장을 준 것도 아니고 가족, 가까운 친구, 지인들 중에 코로나에 걸려 아프거나 생명에 지장을 받은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전염병을 잘 피해 간 운 좋은 자로서 '코로나에도 내 삶은 다행스럽고, 답답함만 조금 잘 참아내고 버티면 다 괜찮아질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오늘 오전 뉴스 속보를 보기 전까지, 아니 친구로부터 메시지를 받기 전까지 불과 2시간 전까지는 그랬다.


WHO "코로나19, HIV처럼 안 없어질 수도"… 장기전 경고
WHO "코로나19, 절대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
WHO “코로나19, ‘팬데믹’ 넘어 ‘엔데믹’ 될 수도” 전망


포털 창에 <속보> 꼭지를 달고 위와 같은 헤드라인들이 떴다. '코로나 종식이라는 것이 가능할까?'라고 스스로 물어봤을 때에 이미 '그러긴 힘들 것'이라고 어렴풋이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지난 3월 11일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코로나 엔데믹(주기적 발병)을 예상하는 오늘의 WHO 전망은 또 다른 절망을 주었다. 이 답답함과 불편함, 전염병을 의심하고 몸 사려야 하는 생활이 견디고 버티면 지나가질 그런 성격이 아니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WHO 마이클 라이언 사무차장의 발언 중 그나마 희망이라고 볼 수 있는 지점은 "만약에 백신이 개발되지 않는다면 세계적으로 면역력이 충분히 생기기까지 몇 년이 걸릴 수 있다."라고 한 점이다. '백신', '몇 년' 이 두 단어가 그의 브리핑에서 겨우 얻어낼 수 있는 유일한 희망 지향적 단어다.


HIV(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 발병 시 AIDS) 보다 훨씬 쉬운 방법으로 다수에게 감염 가능한 코로나라고 생각한다면 HIV 만큼, 혹은 그보다 더 우리 삶에 치명적인 바이러스일 수 있을 것 같다. WHO 사무차장이 우리에게 너무 절망적인 말만 하는 대신, '백신', '몇 년'이라는 다소 희망적인 말도 주었으므로 우리는 몸 사리며 제발 빠른 시간 내에 백신이 개발되길 기도하고 바라면, 그러면 과연 내 세계는 지켜질 수 있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No"이다. 이렇게 확정적으로 빠르게 답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내 세계가 벌써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너무도 뚜렷한 메시지를 뉴스 속보를 읽고 있던 중에 받았기 때문이다. 포털 창 위로 메신저 알람이 떴는데 함께 출퇴근하는 동료이자 이웃이자 친구인 K가 단체 창에 쓴 긴 장문의 메시지였다.


안녕, 친구들(정확하겐 VAN FAMILY라고 칭했다. 같은 벤을 타고 출근하는 가족이라는 의미다). 불행하게도 우리 계획에 변화가 생겨서 너희들과 공유하고 싶어. 우리는 학기가 끝나는 대로(6월 5일, 3주가 채 남지 않았다) 미국으로 돌아가기로 했어. 이 학교와 태국을 떠나는 것은 정말 힘든 결정이었고 몇 주에 걸쳐 생각한 결과 나 K와 T(K 남편)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어. 그게 우리로선 최선의 선택인 것 같아. 팬데믹 중에 이렇게, 만나서 함께 이별을 나눌 수도 없이 떠나는 게 너무 싫고 슬퍼. 방콕에서 너희가 있어서 우리 삶은 너무 행복했어...


K와 T는 우리가 2년 전 태국으로 이사 왔을 때, 이미 방콕에 우리보다 수년 전에 와서 살고 있던 같은 학교 동료이자 같은 동네 이웃이다. 이 메시지를 받기 전까지는 내년에도 같은 학교에 머물 것을 서로 알고 있었기에 적어도 1년, 그 이상은 이렇게 친구이자 가족 같은 느낌으로 물리적, 심리적 안정 거리 내에서 곁을 두고 살 거라 믿었다. 그런데 각자 집에서 방콕 하는 생활이 이어지면서 장 보러 나갈 때 가려진 마스크와 선글라스 아래로 손을 흔드는 이가 서로라는 것을 알아보며 2미터 떨어진 거리에 어색하게 서서 "집에서 지내기 답답하지 않아? 얼른 이게 끝나면 좋겠다."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지내는 동안 각자의 가정 내에서, 각 개인의 마음 내에서 어떤 걱정과 기대와 판단과 선택이 오고 가는지, 그들의 삶을 좌지우지하는지 속속들이 알기는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가까운 친구의 떠남이, 이별이 더욱더 갑작스럽게만 느껴진다. 정말로 잔인한 바이러스다.


포스트 코로나(코로나 이후의 새로운 시대)에 대해 매일매일 뉴스가 쏟아져 나오고 세계 석학들의 말도 전해지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가 이전과 같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언택트에 기반한 재택근무, 원격 수업, 홈코노미 등으로 예상되는 포스트 코로나는 사실 그리 새로운 것도 아니다. 제4차 산업혁명을 이미 예상하고 있던 터라 그랬을 것이다. 다만 코로나가 이것을 더욱 당기는 계기가 되었고, 미래일 줄 알았던 언택트 일상이 갑자기 예고도 없이 전 세계에 동시적으로 벌어졌으니 당혹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세계 석학이 '포스트 코로나는 코로나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일 것이다.'라고 하는 말보다, 예고 없던 이별을 알려주고 태국에서 미국으로 갑자기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친구의 메시지 하나가 내 세상엔 백 배 천 배 더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태국 방콕 내 소재한 국제학교에 소속되면서 사귀게 된 친구들. 특히 나와는 국적과 언어부터가 다르니 공통점보다 차이점만 수백 개인 친구들이지만, 나고 자란 국적이 있는 나라를 떠나 제3국에서 사는 이방인이라는 단 하나의 공통점은 우리를 단시간에 타국의 제2의 가족으로 만들게 했다. 자신의 부모님이 있고 나고 자란 본국을 떠나 타국으로 온 이유는 제각각 다르겠지만 그런 다양한 이유를 가지고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고 사는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람인 게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일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 특히 종식될 수 없이 함께 살아가야 할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의 자유를 막았고, 이동을 금하게 했으며, 일 년에 단 한 번 본국으로 가 가족을 만나는 시간도 불가능하게 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자유롭고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는 것 외의 다른 가치들을 바라보게 하고 있다. 어제 확진자 0명, 오늘 확진자 2명인 태국에 비하면 그들의 고향이자 나라인, 그들이 돌아가는 곳인 미국은 너무 위험천만해 보인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결코 안전한 선택은 아닌 것 같지만 '가족'이 있고 '국민'일 수 있는 본국에 있는 것이 보다 큰 안전과 안정감을 준다는 판단. 또한 그곳에서 락다운이 되더라도 타국에서 홀로 집안에 갇히기보다는 언제 또 반복될지 모를 이런 상황에 대비해 갇히더라도 '가족'이 있는 '내 나라'에서 갇히는 게 더 행복하다는 판단일 것이다.


저런 판단이 얼마나 어려운 판단이고 중대한 판단일지는 그들의 선택이, 이미 확정된 이곳에서의 안정된 수입과 직업을 버리는 것이며, 직장이나 월급 등의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고향, 단지 내 부모가 있고 내가 국민일 수 있는 나라로 돌아가는 것임을 생각해 볼 때 짐작할 수 있다. 이미 수년 전 떠나올 때 가지고 있던 집이나 차도 정리를 했고, 학교 채용 시즌도 끝이 났고, 적어도 1년 정도는 무직 상태일 수 있음에도 일단 떠나기로 결정하는 일. 쉬웠을 리가 없지 않은가.


K와 T와의 이별로 끝이 나지 않을 것이다. 친구들과의 이별은 시작되었고, 다양한 나라에서 떠나와 새로운 곳에서 만나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는 다시 떠나왔던 곳으로 돌아가게 될지 모르겠다. 앞으로 당장, 몇 번의 이별을 더 하게 될지, 일 년 단위로 시간이 갈수록 그 이별의 수는 더욱 커질 것이다. 어차피 타국에서 만났고, 서로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헤어질 것을, 뿔뿔히 흩어질 것임을 알고 시작된 만남이자 인연이었지만, 이렇게 바이러스가 준 불안이 준비도 없이, 헤어짐의 허그도 없이 우리를 이별하게 할 줄은 몰랐다.


해외 생활을 시작하자 마자 해외 생활은 곧 이별의 생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을 떠나올 때 그랬고, 계획한 기간이 끝나 떠나는 친구들을 보면서도 그랬다. 해외 생활에서 내가 더 강한 사람이 되려면 이별에 익숙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구나 알게 됐다. 그럼에도 이별이라는 것은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슬픔이고 아쉬움인 것 같다.


코로나는 이제 내게 이별이고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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