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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ebangchon Sep 06. 2019

"목표도 없는 놈"

춤추는 데 목표가 필요하다니?

일주일에 1회 2시간씩, 남편의 동료로부터 라틴댄스(살사, 바차타)를 배우고 있다. 춤을 함께 배우는 멤버는 선생님 포함 총 6명인데, 스페인인, 미국인, 태국인, 한국인(나)으로 구성되어 있다. 굳이 이렇게 멤버들의 국적을 밝히는 이유는 춤을 추다가 깨달은 문화 차이에 대해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


[참고_이전 글 _ 춤 배우러 다닙니다]


학교에서 매년 '탤런트 쇼(Talent show)'를 개최한다. 무대에서 교사나 스텝, 학교 관계자들이 다양한 취미나 특기를 학생,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선보이는 자리다. 재롱잔치는 재롱잔치인데 아이들이 하는 게 아니라 선생님들이 몸소 무대에 서서 웃음을 주는 자리. 매년 열리는데, 예상외로 교사와 관계자들의 참여가 엄청나다. 쇼가 열리는 날이 확정된 어느 날, 우리 춤 모임 멤버 중 한 명인 셜리(Shirley)가 우리도 저 쇼에 참여해야 한다며 강력하게 의사를 어필해 왔다. 특히나 태국인인 그녀는 이 행사를 준비하는 메인 스테프이기도 했다.  


"우리는 꼭 무대에 나가야 돼! 우리에게도 목표(goal)가 생기는 거야!"


"춤추는 데 목표가 필요해?"

이 제안에 가장 빠르게 반응을 한 것은 우리의 춤 선생 Borja(보하)였다.

"나는 우리가 이 시간을 즐거워하고 있다고 생각했어. 이 시간을 위해 목표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목표가 필요하다고 한 '셜리'나, 그게 왜 필요하냐고 한 '보하'나 춤을 배우러 오는 이유나 지향점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목표라고 지칭하고 '달성해야 할 과제'로 삼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목표가 없는 사람에 대한 비난을 대놓고 하는 '목표도 없는 놈'이라는 표현이 존재하는 사회가 있다. 이런 표현이 있는 문화와 아닌 문화는 확실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으리라. 늘 목표를 세우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나 그런 문화에서 살아온 사람은 보하가 말한 '그저 즐기는 것' 또한 '목표'라고 지칭할 것이다.


분명한 목표의 끝에는 실패냐 성공이냐의 결과가 따른다. 맘먹은 대로 되는 것보다 안 되는 것이 많은 인생에서 목표가 분명하고 또렷하고 거창할수록 실패할 확률은 커진다. 그러므로 목표를 세우면 실패하지 않기 위해 나를 '갈아 넣는' 과정이 동원된다.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거나 실패한 다음에 또 다른 목표를 바로 세우지 않으면 당장에 '목표도 없는 놈'이 될 지경이라 지친 과정에 연연해하지 말고 새롭게 일어나 새 목표를 세워야 기본은 된다. 벌써 피곤하고 실패할까 봐 무섭고, 실패할 줄 알아서 좌절스럽다. 한국이 목표 지향적 사회임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목표에 대한 한국인과 유럽인의 차이를 들은 것은 이보다도 훨씬 이전의 이야기다.


나의 한 학교 선배는 네덜란드인과 결혼해 네덜란드에 살고 있다. 밤낮 주말 없이 한국의 대기업에서 일만 하며 살던 선배는 한국보다 오히려 네덜란드의 생활을 더 힘들어했다. 퇴근을 하고 와도 제때 퇴근을 하니 시간이 너무 많고, 무엇을 배우러 다니기에 마땅치도 않고 해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게 문제라고 했다.


새해가 다가오는 어느 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새해 목표랑 계획 세우자!"


그랬더니 남편에게서 돌아온 말.

"새해 목표 그게 뭔데? 그게 있어야 돼?"


우리 표현으로 치자면, "목표도 없는 놈"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것이다. 일을 할 때는 뚜렷한 목표가 있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일 외의 모든 영역에도 다채롭게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우리를 만성피로로 몰고 간다. 목표가 있으면 성과가 따를 것이고, 성과에 연연해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너는 춤을 왜 배우냐고?


나는 춤을 추러 모인 그 시간이 너무 웃기다. 몸치들이 섹시한 그 춤을 추려고 골반을 이상하게 움직이고 군대 온 것도 아닌데 스텝을 착착 맞추며 행군하듯 추는 춤을 보는 게 너무 재밌어서 배가 아프다. 그렇게 깔깔깔 웃을 수 있는 시간이 일주일에 그 시간 외에 흔치 않다. 이유는 또 있다. 남편이랑 같이 할 수 있는 취미, 그것도 다른 도구 없이 맨몸으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간단한 취미를 하나 가지게 된 것이 좋다. '목표'라고 굳이 붙여 말해보자면, 여행 가 크라비 석양 비치에서, 프랑스 남부 비치에서, 미국 플로리다 비치에서 기분 째지는 날 가뿐히 두 몸으로 리듬 타 보고 싶다. 내가 굳이 목표라고 지칭한 이것은 무조건 성공하게 되어 있다. '목표'로 설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 춤추는 우리 부부의 모습을 넣고는 싶은데 타인의 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비치에서, 도저히 부끄러워서 용기가 안 날 가능성이 크다. 비치에 갈 때마다 마음은 굴뚝같지만 못 출 것이다. 그러니 이것을 목표로 세우면 나는 비치에서 날마다 실패하게 된다. 그래서 굳이 목표로 삼지 않는다. '목표 없는 놈'인 나는 비치에 갈 때마다 한번 춰볼까 생각은 하겠지만 안 되겠는 날엔 슬쩍 마음을 바꾸어 숙소에 돌아와 둘만 있는 공간에서 춤을 출 것이다. 목표는 없지만 성공은 하는 것이다.


굳이 목표를 설정하지 말자. 설정한 목표는 실패할 확률이 너무 크다. 굳이 좌절할 일을 왜 내가 스스로 자초하는가. 하지만 즐거움을 위해 지향점을 세우고, 그것이 되는 방향으로 조금씩 내 마음대로 바꾸면서 무조건 그 지향점에 가닿는 성공을 하자. 뚜렷한 목표가 있어야 성공도 한다고들 하는데, 내 생각엔 뚜렷한 목표가 없어야 스스로 성공할 수 있다. 스스로가 느끼는 성공의 경험은 중요하다. 그 성공 경험들이 축적될수록 즐거움과 행복이 커질 것이므로.


원하고 바라는 것을 '목표'로 세우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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