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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ebangchon Sep 04. 2019

춤 배우러 다닙니다.

하나의 용기는 다른 용기를 부른다.

벌써 십 년도 더 된 일 같다.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에서 해가 지고 어둑한 잔디밭 위, 재즈 음악을 다 같이 즐기고 있는데 한 커플이 일어나서 자유롭게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아름다움', '자유'란 단어를 그리면 바로 이 장면일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이. 느끼는 것을 다른 도구 없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몸 하나로 표현할 줄 안다는 게 얼마나 심플하고 자유로워 보이는지. 그러면서도 워낙 유연성 없고 리듬감 없는 몸이라 '춤'추는 사람을 동경만 했지 직접 춤춰볼 용기는 내지 못했다. 게다가 나못지않게 더 몸치인 남편이랑 마주 서서 함께 춤을 춘다는 건 이번 생엔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Photo by Maksym Kaharlytskyi on Unsplash

춤을 배우는 데에 용기가 필요했다. 마음으로 용기를 먹어도 댄스 동호회에 가입하거나 모임에 가는 등 실행에 옮기는 용기는 또 다른 차원의 용기였다. 그런데 용기는 용기끼리 맞물려있다고 해야 할까. 생전 가보지 않은 나라로 이사를 오는 선택을 한 나의 용기는 생활 전반의 다른 곳에도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는데, 그 용기가 '춤을 배워볼 용기'로도 연결이 되었다. 


남편의 직장(학교)에 있는 스페인어 교사인 동료인 Borja(보하)는 라틴댄스를 취미로 하고 있는데, 춤을 배우고 싶은 사람은 방과 후 시간에 학교에 모여 함께 춤을 추자고 제안해 왔다. 학교 전체 메일로 모두에게 뿌려진 메일에 바로 응답했다. 십 년 간 나지 않던 용기가 갑자기 나 "why not, sure!" 하고 바로 그다음 주 첫 번째 수업에 간 것이다. 내가 용기를 내니 나보다 더 몸치인 남편도 용기를 냈다. 용기와 용기는 맞닿아 있으니까. 


수업에 갔더니, 라틴댄스가 궁금한 모든 사람들이 다 모였다. 벽 한쪽에 대형 거울이 붙어 있는 연극반 교실에 모였는데 마치 중학교 당시 무용 수업을 연상시키는 듯했다. 45명쯤의 학생들이 거울을 향해 줄지어 서서 빼곡한 거다. 첫 수업에 사람이 많았던 게 우리에겐 좋았다. 아무도 주목되지 않았고, 저게 뭐야 하면서 아무렇게나 따라 하면서 서로 부딪치고 웃느라 배가 아팠는데 이게 춤 배우는 게 즐거워서 웃는 건지, 정말로 이런 상황이 웃겨서 웃는 건지 헷갈렸기 때문이다. 춤이란 게 낯설고 왠지 부끄럽지만 너무 즐거운 것이란 첫 경험을 한 것이다. 


나는 직장을 다니지 않기 때문에 일정하게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 없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정해진 요일, 시간에 하는 라틴댄스 수업이 유일한 나의 확정된 스케줄이었다. 그 스케줄을 놓칠 수 없어 매주 가다 보니 꾸준히 하는 멤버가 되었고, 그렇게 거의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 함께 하는 최종 멤버는 선생님 포함 총 6명이다. 


우리는 '살사'와 '바차타'를 배운다. 선생님 보하와 남편, 이렇게 남자 2명과 나를 포함한 다른 여자 선생님 4명. 살사, 바차타는 남녀가 한쌍을 이루어 추는 춤이어서 남녀 비율이 중요하고 남자가 리드한다. 그래서 선생님 보하는 남편을 좀 더 집중해서 가르친 다음, 순서대로 둘씩 짝을 지어 연습을 한다. 하지만 우리의 라틴댄스는 누군가가 "일 년 씩이나 했으니 이제 잘하겠네?"라고 생각할까 봐 "춤 배운 지 1년 됐어."라고 말하기가 무서운 수준이다. 


일 년 중에 여름, 겨울 방학 제외하고, 학교 행사일 제외하고 일주일에 두 시간씩 하면 막상 몇 시간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쉽게 춤이 늘 몸이었으면 지금껏 용기를 못 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잘 추든 못 추든 그 시간이 즐겁다는 것이고, 라틴음악이 흘러나오면 몇 가지 스텝 정도 그냥 해 볼 수 있는 용기 정도는 생긴 것이다. 춤을 출 때 전면 거울이 있긴 하지만 내가 춤추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다. 그래서 춤출 때는 예제용으로 봐왔던 유튜브에 올라온 이미 수준급의 사람들을 연상한다. 내가 그렇게 추고 있을 거라고 착각하는 거다. 그런데 한 번씩 동영상 촬영해서 보면, 저것은 춤인가 행군인가 싶다. 남편과 나는 둘이 마주 잡고 서서 스텝을 "착 착 착" 잘도 맞춰 오른쪽 왼쪽 앞으로 뒤로 하면서 군인이 보면 잘한다고 박수 춰 줄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정도로 아직도 잘 못 춘다. 그래도 재밌다. 언제 잘 추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춤을 추기 시작한 이상 춤을 잘 추게 될 가능성도 없진 않은 거 아닐까? 춤을 배우기 시작하고 지속하는 용기는, 재즈 페스티벌 잔디 공연장에서 남 눈 상관 않고 사랑하는 남편과 마주 서서 손잡고 스텝 밟을 용기도 언젠가는 줄 것이다. 용기는 또 다른 용기를 부르는 법이니까. 


일상에서 내가 바닥에 있다고 느끼게 되는 적이 드물지 않게 누구나 있을 것이다. 세상의 기준이나 남과의 비교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특히 자기 객관화가 잘되는 사람이라면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스스로 괴로울 날이 많다. 그럴 때 아무것도 하기 싫고, 못하겠다 싶은 기분이 든다. 사지만 아무거나 그냥 해보자고 하나의 용기만 내보면, 그다음 용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쉽게 빠르게 일어날 수 있다. 그러니 일단 용기 딱 하나, 하나의 용기만 내 보면 좋겠다. 나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분도. 용기 냅시다! 


하나의 용기는 또 다른 용기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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