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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ebangchon Jun 21. 2020

어디든 왕이 있는 나라, 태국

왕이 있는 입헌군주제의 풍경

한국에 요즘 흔하디 흔한 것 중의 하나가 '카페'다. 태국도 마찬가지다. 번화한 시내뿐만 아니라 로컬 동네에도 작은 골목마다 많은 카페들이 있다. 태국, 특히 태국의 수도인 방콕에서는 짜오프라야 강 주변의 사원과 궁을 구경하고, 스트리트 푸드가 넘쳐나는 야시장에 가는 것이 여행 혹은 관광의 기본이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골목 안에 자리 잡은 다양한 콘셉트의 카페를 탐색하는 것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방콕의 여행 트렌드다.


브랜드 가치를 내세우고 그에 따른 획일적인 매장 분위기를 연출해야 하는 프랜차이즈형 카페보다 카페마다 새로운 공간의 느낌을 뽐내는 이색적인 로컬 카페들이 특히 인기다. 태국 북부나 중부에서 재배한 태국산 로컬 커피빈을 직접 로스팅하는 카페, 해외의 유명 커피 산지로부터 가져온 커피를 스페셜티로 내세우는 카페, 마차(match)로 만든 다양한 베리에이션이 있는 마차 카페 등 커피 산지와 재료의 다양함을 내세운 카페들도 있고, 다양한 초록빛 식물들로 자연의 감성을 그대로 살렸거나, 깔끔하고 정제된 디자인으로 모던함을 강조하는 등 매장 공간의 다양한 콘셉트를 내세운 카페들도 있다. 


다양함을 추구하는 로컬 카페들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공통점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어느 로컬 카페에서나 쉽게 '왕'이나 '왕실' 사진과 그림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70년이 넘게 왕위를 유지해오다가 2016년에 서거한 전왕인 푸미폰 아둔야뎃(라마 9세)을 가장 많이 볼 수 있고, 왕세자로서 그 뒤를 이어받아 현재의 왕인 마하 와치랄롱꼰(라마 10세)의 사진과 그림도 요즘엔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태국은 '왕'이 있는 입헌군주제의 나라다. 우리나라에서는 흥미로운 판타지적 요소로 쓰이는 왕과 왕실이 이 나라에선 현실로 존재한다. 그리고 태국 국민들은 왕과 왕실을 존경하는데 생활 면면에서 드러난다. 로컬 카페의 천장이나 벽, 장식 테이블 위에 놓인 액자들만 봐도 태국 사람들이 왕과 왕실을 얼마나 가까이서 느끼고 존중, 사랑을 표현하길 바라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로컬 카페뿐만 아니라 로컬 식당, 로컬 가정집에 가면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왕과 왕실 액자들은 예술작품으로서도 손색이 없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왕의 사진이나 그림을 얼마나 정성 들여 찍었겠는가. 좋은 작품이 아닐 수가 없다. 


로컬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왕의 사진과 그림
왕(특히 전왕)의 어렸을 때부터 젊었을 때의 사진, 왕족 가족사진 등이 걸려 있는 로컬 카페의 벽면 모습


생활하는 공간 곳곳에 놓여있는 왕과 왕실 그림 외에도, 여러 생활 규칙에서도 태국 왕은 존재감을 드러낸다. 지폐와 동전 속 인물은 모두 왕이다. 새롭게 찍어낸 지폐와 동전에는 현재 국왕인 라마 10세의 얼굴이 새겨져, 현재로선 라마 9세와 10세의 두 얼굴 모두를 볼 수 있다. 떨어뜨린 동전이 굴러갈 때 당연히 발이 먼저 가겠지만, 제일 작은 화폐 단위인 25사땅(약 10원)에도 왕의 얼굴이 새겨져 있기 때문에 발로 세워 잡는 것이 금지된다. 왕과 왕실에 대한 모욕적인 말을 하는 것은 왕실 모독죄로 형법에 의해 처벌될 수 있는 위험한 행위다. 일부 진보학자나 대학생들 사이에 표현의 자유를 막는 왕실 모독죄 형법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크게 힘을 받지는 못하는 것 같다. 


왕이 있는 태국 민주주의를 이해하기에 쉽지는 않아 보이지만, 생활공간 가까이에 늘 왕과 왕실의 사진, 그림을 두고 때로는 두 손을 가슴 가까이 모아 인사하고 지나가는 태국 사람들을 볼 때 이들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왕의 존재에 대해 그 존재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이 일반 태국 국민들의 생활을 유지하게 하는 정신적 기반이라면 모든 인류의 자유를 외치는 자라고 하더라도 함부로 그들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왕에 대해 늘 미소 짓는 태국인들 옆에서 함께 존중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 



이 글은 월간 잡지 <샘터> 7월호 '지구별 우체통' 코너에 '일상에서 만나는 왕과 왕실'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습니다. 브런치 글과 잡지에 실제 게재된 글은 조금 차이는 있습니다. 브런치 글은 제 목소리 그대로의 글이고, 잡지에 실린 글은 잡지사의 편집 방향에 따라 조금 더 다듬어진 글입니다. 

월간 잡지 <샘터> 7월호

▼ 월간 샘터 7월호 게재글 보러가기 (링크)

https://bit.ly/2HjsxQ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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