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Plastic 라이프 도전기
No Plastic 라이프를 지향하면서 Less Plastic 라이프를 실천하고자 노력중인 나는 요즘 물건 고르는 기준이 조금 바뀌었다.
원래는 '적게, 필요한 만큼만'과 '싸게, 저렴한 것으로' 중 둘다 혹은 그 중 하나였다. 싸고 저렴하게 사다보면 때론 필요한 것 이상의 양을 살 때도 있었고, 적게 필요한 만큼만 사려고 하다보면 더 싼 것을 두고도 비싼 것을 고르는 날도 있었다. 마트를 가서 같은 식재료를 두고 다양한 패키지와 다양한 브랜드, 다양한 가격이 있을 때 그램 당 가격과 생산지 두 가지는 내가 꼭 습관처럼 따져 보는 기준이었다. 지금도 그 기준으로 마트에서 매의 눈으로 상품들을 빠르게 비교하고 고른다. 그러고 나오면서 '아, 난 합리적인 소비자야.' 하고 만족해 했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자면 '구매 후 내 손이 많이 안 가게 다듬어진 것'이다. 요리하는 것 자체도 일인데 요리를 위한 재료 준비에까지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집에 늘 갖춰두고 먹는 기본 채소를 사야할 때 흙까지 그대로 묻어있는 채로 파는 시장에서 살지, 깔끔하게 다듬어져 한두번 물에 슬쩍 세척하기만 하면 되는, 때론 세척까지 미리한 후 포장해 냉장실에 이쁘게 올려놓고 파는 마트를 갈지 고민이 되곤 했다.
기본적으로 보이는 대로 주워담는 간단한 소비자는 아니었지만, 요즘엔 조금 더 복잡하다. '복잡하다'는 건 장 볼 때 내 머리와 마음이 복잡하다는 것도 포함이다.
일단 채소는 내가 필요한 만큼만 내가 가져간 그물망에 담아 올 수 있는 시장이나 마트 내 무게를 달아 파는 채소들 중에서 고른다. 세척된 채소나 껍질 깐 양파, 깐 마늘 이런 것은 보통 탄탄한 비닐 포장에 쌓여 있어서 이젠 사지 '못'한다. 사지 않는 게 아니고 못 사게 된 건, 내가 이제는 내 불편함보다는 환경을 조금 먼저 생각하게 될 줄 알게 되었다는 얘기다. 한번씩 깐 양파에 유혹되어 내 손이 한 짓을 나도 모르게 슬쩍 고르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엔 마트를 돌면서 마음은 딴 데 가 있다. 결국은 계산대 앞에 줄을 섰을 때쯤, 황급히 깐양파 봉지를 꺼내어 들고 원래 있던 자리에 갖다두고 흙 묻은 껍질 있는 양파를 황급히 그물망에 담아오든지, 망이 모자란 날엔 망에 담아 파는 걸로 바꿔 사 온다. 마트 내를 돌면서 내적인 갈등에 휩싸였다가 마침내 그것을 극복한 나.
채소 말고 또 늘 집에 두고 먹는 것 중의 하나가 계란이다. 계란을 고를 때는 늘 신선함이 중요하니까 생산일과 유통기한 확인이 필수고, 같은 크기군의 다양한 계란 중 가격이 조금 싸거나 할인 중인 것을 꼭 10개들이 하나씩만 샀다. 그런데 요즘에는 '하루에 몇 개씩 먹어야 이걸 신선하게 다 먹을 수 있을까' 속으로 계산하면서 30개들이 계란을 통 크게 한 판씩 산다. 이유는 딱 하나다. 10개들이 계란들은 하나같이 투명 플라스틱 안에 들어있고, 30개들이 계란은 종이로 만든 계란곽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조금 좋은 마트에 가면 '좀 다르게 자란 닭이 낳은' 계란이라는 일반 계란보다 값 나가는 계란들이 6개들이, 10개들이 종이곽에 들어있긴 하다. 그런데 계란을 늘 먹는 우리 집엔 비싼 가격이다. 2명 사는 집에서 30개 계란은 조금 버거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계획을 해서 일부는 삶아서 반찬을 하거나 삶은 계란으로 보관을 늘리는 방법을 동원하면 괜찮다. 태국 집 앞 마트에서는 30개짜리 한판을 들고 계산대로 오면, 봉지에 따로 계란을 담아줄지 꼭 묻는다. 그럴 때 무심결에 오케이 하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아침으로 먹을 빵이나 스콘 등을 자주 굽기 때문에 밀가루나 통밀가루도 자주 사는 쇼핑 목록에 있다. 밀가루 종류야 뭐 다르겠냐마는 다양한 회사에서 나오는 다양한 가루들이 있다. 그램 당 가격을 따지면 어느 것을 사야할지 답이 나온다. 내 기준은 그런데 이것보다도 훨씬 더 간단하다. 비닐 포장이 아닌 종이 포장된 걸 산다.
그리고 사지 않는 물품이 하나 생겼다. 바디워시. 늘 쓰고 다양한 향, 예쁜 용기 등으로 바디 워시는 내가 즐기는 소소한 취향 쇼핑 중 하나였다. 용기 디자인이 어찌나 세련된 게 많은지 욕실 인테리어에도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이제 내게는 '조금 비싼 플라스틱'으로 보일 뿐이다. 욕실에 있는 플라스틱 용기들에 담긴 다양한 물품들을 보면 하나같이 필요하고 앞으로 줄이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그 중에서 굳이 안 쓰자고 한다면 바디워시를 안 쓸 수 있을 것 같다. 비누라는 대체제가 있기 때문이다. 태국에 오면 사람들이 많이 사 가는 것 중의 하나가 비누인데, 그 중에 '마담행 비누'라고 할머니 얼굴이 그려진 비누가 있다. 기본 비누부터 다양한 향을 넣은 비누까지 다양한데 써 보니 좋기도 하고, 무엇보다 비누가 종이곽에 담겨져 추가 비닐 포장 없이 판다.
지난 글(아래)에 쓴 리필 가게가 동네 곳곳에 생기지 않는 한 이런 노력을 계속 해 나갈 것이다.
이렇게 몇가지 식품이나 물품에서 나름대로 기준을 바꾸고 썩지 않는 용기를 소비하지 않는 방식으로 조금씩 실천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플라스틱을 사 온다. 늘상 사두고 먹는 요거트, 우유(태국 우유들은 패트병에 들었다. 종이곽에 든 것이 없는 것 같다.), 식용 오일, 과자, 커피빈 등.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어느 날 너무 괴롭다. 너무 괴롭다 보면 그만하고 싶다. 그래서 너무 극단적으로 밀어부치지 않기로 했다. 내 행복에 반하는 Less Plastic 라이프라면 지속성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행복한 플라스틱 줄이기 라이프를 지향한다.
한 걸음 더 나가보면,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 개개인이 하는 플라스틱 덜(안) 쓰기는 한계가 명백하다. 재활용 및 분해가 되는 플라스틱 기술을 만들고 실용화 하는 기업들이 있어야 하겠고, 더 과감하게는 플라스틱 생산 자체를 규제하는 전세계적 결심(?) 및 구체적 행동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코로나로 온 세계가 잠깐 빗장을 잠갔듯이, 사람들을 집안에 격리시켰듯이 뭔가 지구를 위해서도 액션이 필요하지 않을까? 환경 문제라는 것이 당장 내 눈앞의 위험으로 보이진 않지만, 그렇게까지 되었을 때엔 실로 지구 종말이 눈앞에 있다는 게 아닐까. 환경 문제를 당장의 문제로 여길 현실감과 상상력이 동시에 필요하다. 개인 하나하나가 아니라 전세계가 다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