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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ebangchon May 27. 2020

플라스틱 팔지 않는 착한 가게

No Plastic 라이프 도전기

No Plastic(플라스틱 안 쓰기) 이라고 썼지만, 실은 Less Plastic(플라스틱 덜 쓰기)를 실천해 보고 있다. 비닐, 빨대, 일회용 컵 등을 최대한 안쓰기 위해 장바구니, 텀블러 등을 가지고 다니지만 이런 것도 소용없이 느껴질 때는 마트에서 장을 볼 때다. 이미 상품마다 씌어져 있는 비닐 봉지들, 스티로폼 보호 용기로 싸고 패트 그릇에 얹어 또 그것을 비닐에 꽁꽁 담은 이삼중 포장재들. 이게 다 미리 담아놓은 편리성, 집어들기만 하면 되는 편리성을 위한 방법이다. 


우리가 장 봐 온 것을 풀 때, 플라스틱과 플라스틱 아닌 것을 구분해 내는 선별 작업이 필요하다. 그때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플라스틱을 사 왔는지 알게 된다. '내가 지금 뭘 사 온 거지?' 하고 놀라다가도 다양한 상품과 저렴한 가격, 36도 기온의 태국에선 에어컨을 공짜로 펑펑 맞을 수 있다는 시원한 매력까지 더해지니 이 화려한 매력들에 지난 쇼핑의 놀라운 플라스틱 추억은 금새 묻히고야 만다. 


플라스틱을 사지 않기 위해 과일이나 채소는 시장에 가서 산다 하더라도, 결국은 마트에서 살 상품은 늘 따로 있다. 그래서 시장을 이용해도 마트를 영 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런 가게가 근처에 있다면 가능해 질 수도 있을 것 같다. 


ZeroMoment Refillery 제로모먼트 리필러리 in Bangkok

담아 올 용기를 직접 챙겨가서 필요한 상품들을 용기에 담고 그램 당 무게를 재어 가격을 지불하고 사 올 수 있는 식료품점이다. 쌀, 파스타면, 견과류, 계란, 씨리얼, 식용 기름, 건과일, 제빵 및 제면 가루들, 향신료 등에 샴푸, 린스, 클렌저, 비누, 디퓨저 등의 생활용품들도 판다. 그 외 스테인레스 빨대, 나무 칫솔, 리필 치실 등도 있다. 모든 상품은 포장이 되어 있지 않으며 용기가 필요할 시 매장에서 제공되는 종이 포장지에 담거나 액체류는 매장에서 판매하는 유리병에 사서 담을 수 있다. 영수증은 종이 영수증으로 제공하지 않으며 이메일을 입력하면 메일로 즉시 보내준다. 

내용물만 리필해 사오는 No Plastic 가게 ZeroMoment @Bangkok
가게 벽면에 가게 이용방법이 나와 있다.

[이용 방법]

1. 용기를 직접 가져오거나 재사용 가능한 것을 매장에서 구매

2. 점원에게 가져온 용기를 주어 용기 무개 측정. 나중에 상품 가격을 잴 때 용기 무게를 빼기 위함이다.

3. 원하는 상품을 용기에 골라 담기.

4. 용기에 종이테이프를 붙여 골라 담은 상품이 무엇인지 연필로 체크하기.

5. 구매한 무게를 재고 해당 금액을 지불. <끝>


이 가게의 장점은 살 수 있는 상품군이 꽤 다양하다는 점이다. 가격도 전혀 비싸지 않다.
쌀, 파스타면, 쿠킹 오일과 올리브오일, 씨리얼 등을 장 본 가방
이메일로 즉시 전달해주는 영수증. 영수증 종이 찢어 버릴 필요도 없고 종이를 소비할 이유도 없다.


나는 장보기를 할 때 워낙 필요한 만큼만 사 쓰는 유형이어서, 필요한 것을 조금씩 담다 보니 239바트(약 9,300원)어치를 사게됐다. 담으면서 정확히 이게 얼마인지 빠르게 최종가격으로 치환되지 않아서 답답한 점은 있었는데, 어차피 내가 장을 볼 총량을 어느 정도 계획하고 있고, 생각보다 조금 더 나온다 하더라도 플라스틱을 사지 않은 값으로 생각하면 '이게 환경기금이지 뭐야' 싶은 고마운 마음으로 쇼핑을 했다. 이 가게에는 상품군도 다양해서 쇼핑목록에 없던 새로운 상품을 보는 재미 또한 있었다. 마트 가면 홀려서 담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인데, 여기에선 플라스틱까지 사지 않아도 되니 절로 착한 소비자, 착한 지구인이 된다. 


다만 정말로 큰 문제 하나가 있다. 239바트치 장을 보면서 나는 왕복 택시비를 약 230바트 썼기 때문이다. 이 가게가 우리 동네에 없기 때문인데, 태국 택시비가 상대적으로 싸다고 치더라도 239바트치 사기 위해 230바트 교통비를 쓰는게 맞는가 생각하면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라는 결론에 닿는다. 교통비를 줄이기 위해 최대한 버스와 두 발을 이용해 갈 생각을 해 보지만 만만치 않은 경로다. 


그래서, 오토바이가 있는 동네 친구가 장보러 갈 때 얻어타고 가는 방법 혹은 그 친구에게 내 장보기 리스트까지 얹어주는 친구 찬스가 있고, 또 하나는 다른 동네 놀러가는 기분으로 시간이 많을 때 골목 여행을 가는거다. 골목 여행을 갔는데 마침 이 곳에 리필 샵이 있어서 '간 김에 장도 보는' 계획적인 것 같지만 계획적이지 않은 우연적 장보기. 


그래서 중요한 건, 플라스틱 줄이기에 대한 의지를 이어가게끔 지원해줄 주위 환경이다. 플라스틱 줄이기가 혼자서만 해선 그 한계가 분명하다는 이야기도 된다. 개인으로서의 우리 하나하나 뿐만 아니라 거대 기업의 마트부터 작은 가게까지 지금까지 해 오던 방법과는 다른 방법을 찾아 실천해 봐야 하는 것이고, 그 방법을 빠르게 실천할 수 있게 정부의 지원이나 환경 정책도 필요한 것. 


내가 사는 방콕에는 내가 이용한 ZeroMoment Refillery(제로모먼트 리필러리) 외에도 Better Moon Refill Station(베터 문 리필 스테이션, 카페도 함께 운영한다)이 있다. 베터문은 카페로도 알려져 있어, 여행자들이 찾는 핫플레이스이기도 하다. 커피 마시고 리필 스테이션을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이런 것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사람들의 바람이 모여 한국에도 이런 가게들이 늘어나길 바란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사는 요즘엔 No Plastic 라이프가 더욱이 힘이 든다. 포장이나 배달뿐 아니라 남이 손 댄 것에 다시 손 대기가 찝찝하고 위험하게 느껴지는 상황에서 식거리를 겹겹이 포장해 둔 게 안전하게 느껴지는 마법까지 있기 때문이다. 이중 포장에 둘러 싸인 마트의 플라스틱반 상품반 물건들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 바이러스가 인간들을 집으로 감금하고 다양한 동물들과 식물들을 자연환경에서 살려 내는 긍정적 효과를 주는 동시에 플라스틱 이중 포장이 주는 안전함을 사람들에게 교육해 주고 있는 건 아닐까. 이건 또 다른 의미에서의 지독한 바이러스다. 하지만  No Plastic 라이프를 해야겠다는 의지가 백신이고, 그것을 이어가려는 노력이 치료제이니 굴하지 않고 이어나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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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haebangchon/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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