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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ebangchon May 25. 2020

태국의 뜨거운 날을 닫아주는 소리

담담하고 아늑한 무슬림의 기도 


해가 둥실 떠오르는 순간, 30도를 훌쩍 넘어버리는, 아침에도 36도인 태국. 해가 떠오르기 전에 산책이나 운동을 나서지 못했다면 그다음 기회는 해가 넘어가는 시각쯤이다. 


방콕 하면 화려한 조명의 도시 거리와 야시장을 떠올리기 쉽지만, 내가 사는 로컬 동네는 해가 넘어가고 나면 깜깜하다. 그냥 깜깜한 정도가 아니라 손전등을 들고나가야 할 만큼 깜깜하다. 마치 내일 아침 일찍 논으로 나가야 하는 시골사람들처럼 모두들 일찍 잠에 드는지, 집집마다 불은 켜져 있어도 8시만 돼도 동네엔 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 깜깜한 밤이 가장 시원은 하겠지만, 동네를 어슬렁 거리며 돌아다니는 큰 동네 개들을 인적이 없는 골목에서 마주하는 일이란 내겐 너무 공포스럽다. 처음 태국에 왔을 때 한낮의 골목에서 큰 동네 개들을 마주하고, '과연 내가 여기서 살 수 있을까'에 대해 물음표를 던졌던 만큼 큰 일이다. 


그래서 해가 넘어갈 때 노을빛을 받으며 나가서 집으로 돌아올 때쯤엔 해가 완전히 넘어가 태양열을 느끼지 않고 그나마 조금 식혀진 땅의 기운을 느끼며 돌아오는 시간이 산책이나 운동하기에 최상이다. 서쪽 하늘에서 반사되어 동쪽 하늘까지 길고 붉은빛이 드리워지기 시작할 때, 그때에 나가 해가 거의 다 넘어가는 시간 조금 어둑해지네 싶을 때 어느 하늘에선가 또 낮게 깔리는 기도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면 이제 슬슬 집으로 돌아가야겠구나 하고 동네 산책의 절반 포인트 지점을 찍고 갔던 길을 돌아온다. 그 소리는 낮고 경건하게 긴 여운을 주고 깔리는데 뜨거웠던 한낮을 마무리하고 이제 다들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주문 같다.  


태국의 해 뜨는 시각. 맨발로 탁발 공양하는 승려들과 시주하는 사람들의 아침을 열고(이전 글, 아래 참고), 해가 지는 시각. 무슬림들의 모스크(이슬람 사원)에서 퍼져 울리는 담담하고 아늑한 기도 소리가 긴 하루를 마무리한다. 


태국은 93%의 국민이 불교이지만,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나라다. 불교가 국교였지만 다양한 종교를 인정하고자 국교를 해제했다고 하니 정말 이 곳은 '다양함을 존중하고, 공식적으로 노력하는 나라'인 것 같다. 태국에서 이슬람을 믿는 국민은 약 5.5%(현재, 2020년 기준) 정도인데 심심찮게 높은기둥을 올린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를 볼 수 있다. '할랄 푸드(Halal, 이슬람법에 허용된 먹을 수 있는 것)' 표시를 하고 할랄 푸드들을 파는 식당이나 레스토랑들도 쉽게 본다. 


태국 수로를 통해 보트 타고 다운타운 가면서 본 풍경. 녹색 돔 모양이 얹힌 높게 솟은 기둥을 보아, 작은 모스크가 있는 듯하다. @태국, 방콕
우리 동네 큰길 건너 맞은편 동네의 모스크 @태국, 방콕


우리 동네 할랄 음식점의 HALAL 푸드임을 알려주는 간판
할랄이 무엇인지도 가게 앞에 안내해 놓았다.


무슬림(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은 하루에 다섯 번씩 메카 방향을 향해 의무적으로 기도를 한다고 하는데, 어째서인지 나는 꼭 하루의 마지막 기도인 밤 기도 소리만 들린다. 시작하고 몰두하는 아침이나 낮시간엔 아마 일부러 집중하지 않고는 안 들렸을 것이다. 정리하고 조용하게 잦아드는 저녁 시간에만 그 소리가 들렸을 터. 내가 듣든 듣지 못하든 그들은 그들의 신에게 기도를 올렸을 것이다. 내가 아침 조깅을 나가든 나가지 못하든 탁발 승려들이 매일 아침 동네를 돌며 아침을 열어주듯 말이다. 


종교인이 아니어서 정확한 그들의 기도 내용을 알지는 못한다. 행여 그들의 기도가 그들만을 위한 기도라 하더라도, 혹은 그 종교를 믿지 않는 자에 대해선 관용 없는 기도라 하더라도 내게 그 기도 소리는 집에 돌아갈 시간을 알려주는 알람이고, 할 수 있다면 요가 매트 꺼내 앉아 단전에 힘 모으고 앉고 싶게 하는 소리다. 비종교인으로서 다른 사람의 종교를 존중하되, 내 생활에 자연스레 침입한(?) 종교의 풍경과 소리들을 비종교인인 나도 자유롭게 해석할 자유쯤은 가져도 되지 않을까. 


태국의 뜨거운 날들을 나도 잘 보내었다고, 내일은 새로운 뜨거운 날이 되게 해 달라고, 그들의 기도 소리에 살짝 나의 소박한 기도를 더해 보는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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