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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ebangchon Oct 26. 2020

지금 태국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2020 태국 민주화 운동

*사진 출처: 방콕포스트(Bangkokpost)


1987년 6월의 한국, 2020년의 태국

멀리서 보면 따뜻하고 미소 짓고 예쁜 모습만 보인다. 특히 방콕, 치앙마이, 크라비, 푸켓. 이름만 들어도 쉬어가고 싶은 이미지의 행복한 나라인 태국은 더욱. 하지만 지금 태국 방콕 시내에선 10-20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반정부 시위가 8월부터 시작해 3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방콕 시내에서 좀 떨어진 외곽에 사는 이방인으로서 나는 실상 시위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SNS에서 태국인 친구의 포스트를 한 번씩 볼 때에도 남일 같이 느껴졌다. 주말에 시내에 시위대가 모이고, 정부가 이를 막기 위해 도로 통제를 할 테니 불편함겪지 않으려면 주말에 시내 번화가는 피하라는 친구의 메시지를 받았을 때도, 마치 도로 공사가 있어 교통체증이 예상된다는 메시지와 별반 다르지 않은 무게로 읽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짧은 연휴중심가를 피해 나들이 다니면서 마음 한편에 '이렇게 놀러나 다닐 땐가' 싶은 미안한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어쩌겠는가' 하는 야속한 마음이 정말 야속하게 들었다. 이런 매정하고 무지한 외국인인 나에게도 반정부 시위대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반정부 시위대가 국내외로 이런 움직임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면서부터다. 이들은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입장문을 SNS을 통해 배포했는데 그중엔 한국어 번역문도 있. 특히나 현 태국의 상황을 '1987년 6월 항쟁'으로 비유한 것은 이방인의 관심을 불러오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태국 반정부 시위대의 입장문_한글판


끝나지 않은 쿠데타의 역사

반정부 시위대는 저항의 상징으로 손가락 세 개를 펼치며 "아이 히아 뚜(사실상 욕설임)"를 외치며 현 총리인 쁘라윳 짠오차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세 손가락 경례는 영화 '헝거게임'에서 따왔다고 하며, 현재 그것은 태국 군부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다.


쁘라윳 총리는 2006년에 일어난 쿠데타로 전 총리인 탁신이 물러후에 친탁과 반탁의 대결장이 된 구도에서 떠오른 인물이다. 정치적 불안이 지속되는 가운데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자 그는 무력을 투입해 대규모 유혈 진압을 했다.


2014년에 당시 육군참모총장이던 쁘라윳이 또 한 차례의 쿠데타를 일으켰고, 당시 푸미폰 선왕이 이를 승인하면서 마무리된다. 쁘라윳은 총리 자리에 올라 정권을 잡고 빠른 민정이양을 약속했지만 미루고 미루었다. 마침내 2019년 3월 총선이 열렸지만, 상원 250석 전원을 군부가 지명할 수 있는 방식으로 상하원 협력에 의해 총리를 선출하였기에 군부의 지원을 받는 쁘라윳 총리는 집권을 이어가는 데 성공한다.

 

저런 선거가 있은 지 1년 후, 젊은 세대들의 저항이 터져 나오는 사건이 발생한다. 총선에 새롭게 등장해 총 500석 중 81석을 확보한 신당 '퓨처포워드당(미래전진당)'이 군부의 정치 개입을 불허하는 개헌을 추진하자 쁘라 총리가 이 당을 강제해산시킨 것이다. 당시 퓨처포워드당을 지지하던 젊은 세대들저항 시위를 열다. 하지만 코로나 19 확산세와 맞물리면서 금세 잠잠해질 수밖에 없었다.


반정부 시위대에 따르면, 쁘라윳 총리가 쿠데타로 집권한 후 정부에 반대 목소리 내는 자들에 대한 억압을 지속해 왔다고 한다. 장기집권을 위해 모든 정치적 모임을 금지했고, 정치활동을 한 사람들을 부당하게 기소했다. 그럴 때마다 군사정권은 '왕실 모독죄'를 명문화하고 있는 형법 112조나 '내란죄' 형법 116조 등을 악용해 반대 세력들을 억압해 왔다. 불법적 소환으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 정치적 망명을 시도하기도 했는데 망명 후 실종되는 사람들이 생겼고, 반정부 시위대는 이를 국가폭력에 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얽히고설킨 부패된 권력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

코로나 19 상황 아래에서 목소리를 잠재울 수밖에 없었던 젊은 세대들의 목소리는 아래에서 여전히 뜨거웠다. 레드불 창립자의 손자인 오라윳이 8년 전 뺑소니 사고를 일으켜 경찰관을 숨지게 했지만 약간의 보석금으로 쉽게 풀려났고 해외에서 호화로운 도피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래에서 뜨겁던 젊은 세대들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거리로 터져 나온 계기는 올해 7월에 있었다. 오라윳에 대해 마침내 검찰이 불기소 결정을 내린 것. 부패된 권력층의 만행,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결탁 등은 참고 있던 사람들의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에 대한 목소리를 터져 나오게 했다.


왕실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

젊은 시위대는 총리 퇴진, 부패 정권 타도 외 왕실 개혁까지 외치고 있다. 태국은 왕이 있는 나라이며, 왕과 왕실을 존경하고 따르는 문화가 전반적으로 깔려 있다. 특히 전왕 푸미폰 국왕은 '살아있는 부처'라고 불릴 만큼 태국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런 나라에서 왕실에 대한 다른 목소리는 '불경죄'로 처벌될 수 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도 젊은 세대들이 거리로 나와 있는 것.


<참고> 태국 입헌군주제, 왕실에 대한 사랑에 관 이전 글


시위대는 누구도 왕을 고발할 수 없도록 한 헌법 조항을 폐지하고 국회가 왕의 위법 행위를 조사할 수 있을 것, 군주제에 대한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게 할 것, 왕실재산법 폐지로 왕실 소관의 재산과 왕 개인의 재산을 분리할 것, 왕이 정치적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 권력을 행사하거나 쿠데타를 승인하지 않을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2016년 전왕 서거 후 왕위에 오른 마하 와치랄롱꼰 현왕은 국내외적으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데, 여성 편력, 기괴한 사생활, 사치로운 생활 등으로 비판이 끊이지 않다. 특히나 코로나로 락다운 및 해외입국 전면 금지 내부 경제가 장기적으로 힘들어지고 있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태국이 아닌 독일에서 장기 머무르며 호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왕실이 거의 40대에 달하는 항공기와 헬리콥터를 보유하유지하는 데에만 엄청난 돈을 쏟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금기되고 있는 왕실에 대한 비난을 더 이상 금기의 영역에 가둬둘 수 없게 된 것 같다.


낯익은 물대포 등장 및 강경 진압


이방인으로서 몸을 저 뒤로 빼고 슬쩍 들여다보고 있는 처지에, 얼굴 더 뜨거워질 뉴스를 접하고야 말았다. 태국 경찰이 최루액과 색소를 섞어(시위대를 발원하기 위해) 시위대를 향해 쏘는 물대포가, 2012년 한국으로부터 수입해 온 것이라는 뉴스다. 시위대 강제 해산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물대포와, 이를 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물대포로 사망한 백남기 농민을 떠올리게 하고 가슴 한편에 새겨진 트라우마를 건드린다.


쁘라윳 총리는 SNS로 능동적이고 빠르게 조직되시위대를 강경 진압하기 위해 10월 15일, 5인 이상 집회 금지, 국가 안보 질서해치는 정보의 온오프라인 유포 금지 등을 포함한 '긴급 조치'를 선포하며 사실상 모든 집회를 금지하고 나서기도 했다. 이 긴급 조치는 일주일 만에 철회되었는데 민주화 시위에 대한 마지못한 화답으로 해석된다.


아직까지 변한 건 하나도 없다. 젊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고, SNS로 급격하게 모였다 장소를 옮기는 게릴라 시위를 이어가고 있고, 경찰이를 막기 위해 도로를 급히 막거나 MRT, BTS 운행 중단 조치를 한다.


군부 퇴진과 왕실 개혁을 외치는 젊은 세대, 그리고 젊은 세대와 달리 '살아있는 부처'처럼 존경하던 전왕을 기억하며 군주제에 대한 문제제기를 받아들일 수 없는 그  세대는 충돌한다. 왕실을 상징하는 색인 '노란색' 옷을 입고 거리로 나와 시위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는 것. 광화문 광장에서 많이 봐 온 또 하나의 장면이, 태국 방콕 시내에서 펼쳐지고 있다.


이 글은 방콕 변두리에서 몸 사리며 조용히 있는 이방인으로서 보내는 나의 미안함이자 작은 목소리이자 응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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