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y No to Plastic Bags
태국을 흔히들 ‘미소의 나라'라고 한다. 웃는 얼굴로 손을 가지런히 모아 합장하고 인사하는 태국의 인사법 ‘와이'나 늘 ‘마이 뺀 라이(‘괜찮다’는 뜻의 태국어)’를 즐겨 쓰는 낙천적인 태국 사람들을 만나면 그 이유를 단번에 알게 된다. 하지만 이들의 미소가 ‘마이 뺀 라이'하지 않게 다가올 때가 있는데, 웃으면서 일회용 비닐봉투, 플라스틱, 빨대 등을 아낌없이 나눠주고 쓰고 버릴 때다.
태국에선 아직까지 쓰레기 배출이 무료이고 분리배출도 하지 않는다. 마트나 편의점, 시장에서 비닐봉투는 무상으로 제공되며, 물건 종류별로 여러 장의 비닐에 나눠 담아줄 뿐만 아니라 조금 무겁게 느껴지면 비닐봉투를 몇 장 더 겹쳐준다. 식당에서 물, 음료 주문 시 빨대가 꼭 같이 나오고, 찬 음료를 테이크아웃하면 비닐 손잡이를 걸어주기도 한다.
저녁 시간 무렵이 되면 시장, 백화점, 버스 정류장 등 사람들이 밀집하는 자리에는 완전 조리된 음식을 파는 상점이나 리어카가 깔리는데, 이곳에서 우리는 비닐과 고무줄만 있으면 무엇이든 다 포장해 내는 포장의 달인들을 만나게 된다. 국수 한 그릇을 사면 비닐에 면, 국물, 양념, 향신료, 올릴 채소 등이 각각 다른 비닐에 쌓여 색색의 고무줄로 묶이고 그것을 더 큰 비닐에 한 데 담아 준다. 때론 음식을 산 것인지 비닐을 산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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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죽은 바다 고래의 위장에서 8킬로그램 무게에 달하는 80여 개의 비닐봉투가 나와 이슈가 됐다. 2019년에도 죽은 바다거북과 듀공의 뱃속에서 인간이 버린 쓰레기들이 다량 나오면서 사회적으로 플라스틱에 의한 해양 오염이 큰 이슈로 부상했다. 태국 기관 통계에 따르면 해양 쓰레기 중 비닐봉투가 가장 큰 비중이며 2위가 빨대, 3위가 병뚜껑이라고 한다. 이에 2018-2019년, 일부 유통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비닐봉투 사용 줄이기를 펼치기도 했지만, 실생활에서 ‘비닐 인심’은 여전히 후했다.
이런 비닐 인심 후한 태국에도 반가운 변화가 생겼다. 올해 1월부터 마트, 편의점, 백화점 등 전국 약 2만 5천 개의 소매 상점에서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나선 것. 계산대 옆마다 “Say No to Plastic Bags” 캠페인 배너가 걸리고, 비닐봉투는 사라졌으며, 재사용 봉투나 장바구니 사용이 권장되고 있다. 2018-2019의 플라스틱 규제 캠페인 1차 기간 동안 약 20억 장의 비닐봉투가 절약되었고 올해 비닐봉투 배포 전면 중단으로 연간 450억 장의 비닐봉투 사용이 줄 것으로 태국 환경부는 예측한다.
태국 수도인 방콕에는 서울 못지않게 핫플레이스가 많은데, 그중 ‘No Plastic’ 소비문화를 이끌어가는 곳들이 있다. 바로 ‘리필 샵(refill shop)'이다. 담아갈 용기를 소비자들이 직접 챙겨 와 포장되지 않은 상품들을 필요한 만큼만 담은 다음 무게를 측정하여 계산을 한다. 쌀, 파스타면, 견과류, 시리얼, 식용기름, 말린 과일, 제빵 및 제면 가루, 향신료를 비롯한 식료품과 샴푸, 린스, 클렌저, 디퓨저, 세탁세제, 비누 등의 생활용품을 판다. 계산 후 영수증은 이메일로 받는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마다 아낌없이 여러 장 내미는 비닐봉지 앞에서 손을 흔들며 ‘괜찮다(필요 없다)'는 표현을 해도 미소의 나라 점원들은 ‘마이 뺀 라이(괜찮아요, 여기 더 있어요)’하며 더 빵끗 웃어 곤란하곤 했다. 후한 미소는 좋지만 후한 비닐 인심은 이제 모두가 거부할 때이며, 그런 움직임은 이미 시작되었다. 세계 최대 플라스틱 소비국 중의 하나인 태국의 이러한 플라스틱 규제 움직임이 해양 쓰레기에 의해 죽임 당하는 해양 생물들에도 미소를 줄 수 있게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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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아세안문화원 뉴스레터 <월간 아세안문화원> 2020년 11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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