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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ebangchon Nov 25. 2021

1년이 지나 풀어보는 선물

기억에 남는 선물에 대하여

2021년 10월 23일, 세계 여기저기로 흩어진 우리는 다 같이 화상으로 다시 만났다.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다 같이 태국 방콕에서 이웃하고 살았던 친구들. 서로 시간을 맞춰 대한민국, 미국 서부, 미국 동부, 멕시코, 태국, 중국에서 화면으로 눈을 맞췄다. 


우리가 마이카(Micah)의 출생 선물로 1년 전 만들어 줬던 선물을 다 같이 풀어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모임의 호스트는 함께 하는 선물을 제안했던 샤스타(Shasta)였고, 모임의 주인공은 아기 마이카와 마이카의 엄마 아빠인 클라우디아(Claudia)와 조쉬(Josh)였다. 


Quilt Reveal을 위해 화상으로 만난 친구들


약 1년 전이었던 2020년 10월 31일, 우리는 클라우디아와 조쉬 모르게 샤스타의 집에 모였었다. 샤스타는 취미로 '퀼팅'을 즐겨하였는데, 퀼팅 조각을 만들고 그것을 이어 붙인 퀼팅 이불을 완성해 마이카에게 선물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친구의 임신과 출산을 축하하기 위해 우리는 흰 봉투에 5만 원 넣어야 할까, 10만 원 넣어야 할까 고민하지 않았다. 베이비샤워를 하기 위해 호텔방을 빌리거나 풍선을 사서 붙이거나, 꽃장식을 하고 드레스를 빌리지도 않았다. 대신 샤스타의 집에 각자의 아이디어만 가지고 모였다. 


주제는 '클라우디아와 조쉬'였다. 우리는 클라우디아와 조쉬에 대해 생각했다. 클라우디아는 밴드 교사여서 악기 연주에 능했고, 유니콘, 무지개 색을 좋아했다. 조쉬는 클라이밍을 즐겨했고 늘 스쿠터를 타고 다녔다. 그리고 내겐 늘 조쉬와의 재밌었던 첫 만남의 기억이 있었다. 


우리는 그날 모여 샤스타에게 하는 방법을 듣고 각자 받아 든 백지에 밑그림을 그리고, 다양한 천 조각을 그림에 맡게 잘라 붙였다. 그게 다 되면 한 면에 풀이 붙은 종이를 덧대 다리미질을 했다. 그리고 그 종이를 떼어내면 색색의 조각보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 조각보를 모아 샤스타는 미싱으로 보들을 이어 퀼팅 이불을 완성했다. 


각자가 만든 조각보를 바닥에 이렇게 늘어놓았었다.
'책'을 주제로 만들었던 Boyd&Katelyn, 그들의 아기인 Ellie를 위해 만들었던 퀼팅 조각


그리고 우리가 태국을 떠나기 전, 샤스타는 그것을 마이카 네에 주고 왔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다시 모였다. 'Quilt Reveal(퀼트 열어보기!)' 

화면 너머 마이카는 우리가 만들어주고 온 퀼트 이불 위를 기어 다니고 있었다. 조쉬가 퀼팅 이불을 펼치자 모두가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그리고 각자가 만든 조각보에 대해 한 명씩 돌아가며 소개를 했다. 어떤 의미로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내가 만든 조각보엔 음악을 상징하는 오선과 음자리표, 그리고 거기에 걸린 들소(버팔로)가 있었다. 음악은 클라우디아를 생각하면 늘 떠오르는 것이었고, 버팔로는 내게 곧 조쉬였다. 


음악과 버팔로, 이것은 내게 클라우디아와 조쉬


3년 전 우리는 국제학교(남편의 직장) 환영 파티에서 만났다. 음식을 먹고 마시며 자유로운 분위기의 파티였는데, 처음 보는 조쉬라는 사람이 웃긴 이야기를 하는지 둘러선 사람들이 웃고 있었다. 즐거워 보여서 나도 조쉬 옆에 슬그머니 끼었는데 그는 "버팔로 버팔로 버팔로 버팔로 버팔로....." 버팔로를 8번씩 말하며 엄청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었다. 영어가 서툰 나는 '도대체 이게 뭔가' 싶었다. 나는 그냥 물었다. "이게 다 뭔 소리요?!" 


"Buffalo buffalo Buffalo buffalo buffalo buffalo Buffalo buffalo."는 온전한 문장이라고 했다. 이것은 영어 '버팔로'가 가지는 세 가지 의미를 가지고 만든 하나의 문장이었다. (버팔로는 지역명, '들소'라는 일반명사, '괴롭히다'의 동사) 그들은 영어의 오류, 영어라는 언어의 재미있는 포인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던 중이었다. 


파티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검색해보니 저 문장은 "버팔로 들소를 괴롭히는 다른 버팔로 들소를 괴롭히는 것 또한 버팔로 들소를 괴롭히는 것이다"라는 뜻이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내게 조쉬는 이것을 설명하느라 버팔로x8을 무한 반복해야 했다. 설명을 하면 할수록 파티장에 버팔로라는 단어만 날아다녔다. 나는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너무 웃어서 얼굴 근육이 당길 정도였다. 그게 내가 조쉬와 부족한 영어로도 단번에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이유이자 해프닝이다. 


별 것 아닌 이야기이지만 마이카가 동물을 인지하게 되면, 이불보의 버팔로(들소)를 보고 이게 뭐냐 묻게 될 것이다. 그럼 물론 조쉬는 버팔로x8번을 말해 마이카를 웃길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자라서 마이카가 이야기를 사랑하는 나이가 되면, 조쉬는 음표와 함께 있는 버팔로가 무슨 의미이며 마이카가 태어났을 때 같은 동네 살았던 이웃인 내가 왜 이런 조각을 만들었는지 이야기해 줄 것이다. 그럼 마이카는 내 가슴팍에서 잠들었던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자기 부모와 그들의 친구에 대해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다. 


마이카가 우리 집에 오면 내 가슴팍에서 잠들곤 했다. 마이카는 이건 기억 못하겠지만...


한 퀼트 이불을 이룬 조각보의 수마다 그런 이야기가 들어 있다. 마이카는 조각보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부모인 조쉬와 클라우디아에 대해, 그들을 생각한 친구들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나눈 시간들과 추억, 우정에 대해 듣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마이카를 위해 이 이불을 한 땀 한 땀 만들어 주었다는 것도. 


완성된 퀼팅 이불(앞면)
완성된 퀼팅 이불(뒷면)


선물하기가 너무 쉬워진 세상이다. 기프티콘으로 언제든지 지인에게 선물할 수 있고 우리는 그 기프티콘으로 카페에 가서 쉽게 커피를 바꿔먹고, 선물 배송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쉽게 잊는다. 어느 누가 언제 왜 이 선물을 내게 주었는지. 준 사람도 마찬가지다. 내가 그 사람에게 선물을 보내었던가? 내가 혹 받기만 하고 돌려보내지 않았던 건 아닐까? 그럴 때 우리가 해볼 수 있는 것은, 기프티콘 선물 내역을 확인해 보는 것일 뿐. 선물하기 쉬워진 세상에 선물은 잘 잊힌다.  


한 명씩 돌아가며 퀼팅 조각보에 들어있는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이 훌쩍 간다. 그 사이 미국 동부의 친구는 이불을 덮고 잠이 들고, 중국의 친구는 맥모닝을 주문하여 한입 베어 문다. 


그리고 마이카가 그 이불 위를 열심히 기어 다닌다. 우리는 궁금하다. 마이카가 어느 조각보를 가장 좋아할까? 우리는 또 아이디어를 낸다. 이불을 펴고 조각보마다 마이카가 좋아하는 과자를 놓자! 무엇을 먼저 주워 먹는지!!!! 


깔깔거리다 아쉬움에 화상 모임을 종료한 우리. 마이카네를 위해 주고 온 선물이지만 이것은 서로의 시간과 생각을 공유하며 모두가 가지게 된 선물이기도 했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에게도 특별한,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선물. 그것을 주고받은 이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또 특별한 선물 같은 시간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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