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질식의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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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화창한 날이었다. 하루 종일 내리쬔 햇살 덕분인지 아이들도 유독 즐거워 보였다. 샌드캐슬을 만들고, 자전거를 타고, 블록을 쌓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선생님이 도시락과 물병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자, 손을 씻은 아이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고 앉았다.
- 와! 오늘 점심은 피자!
- 난 스파게티랑 요거트!
- 나는 사과 가져왔는데 너는?
-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블루베리!
오늘 점심은 무엇인지, 친구와 내가 같은 음식을 싸왔는지, 요거트는 무슨 맛인지. 세 살짜리 아이들에겐 이 모든 것들이 하루 중 놓칠 수 없는 중대사이자 진지한 대화의 서막이다. 알든은 아빠가 직접 만든 피자라며 어떤 토핑이 들어있는지 설명하기 시작했고, 로건은 가게에서 산 음식을 도시락으로 가져왔다고 말했다. 아빠표 피자를 가져온 알든에 질세라, 이 스파게티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레스토랑 요리사'가 만든 거야,라고 응답하는 로건의 재치에 선생님의 입에선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 이건 내가 딴 블루베리야. 우리 집에 많이 있으니까 너도 줄게.
오웬이 블루베리 픽업 경험을 얘기하자 아이들의 대화는 주말에 무엇을 했는지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음식 투정을 부리지 않고 얌전히 앉아서 먹고 있다니, 밝은 여름 날씨만큼이나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선생님은 그 틈을 타 비어있는 물병을 채우려 돌아섰다. 테이블을 돌아 바로 옆 냉장고 문을 열기까지. 그 순간이 몇 초나 되었을까. 찰나의 순간, 교실 안에 이상하리만치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그저 평화로운 순간이 아니라는 걸, 선생님은 설명되지 않는 직감으로 느꼈다.
- 오웬!
급하게 돌아선 눈길 끝에 마주한 건 새하얗게 질린 오웬의 얼굴이었다. 아이는 반쯤 벌어진 입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숨을 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무언가가 오웬의 기도를 막은 모양이었다. 선생님은 침착함을 유지하며 응급처치 교육시간에 배운 내용들을 떠올렸다.
- 오웬, 말을 할 수 있겠니? 아니면 기침이라도 해볼까?
오웬은 선생님의 지시를 따라 힘겹게 기침을 시작했다. 숨을 쉴 수 있다는 좋은 징후였다. 선생님은 만약을 대비해 다른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오웬이 계속 기침을 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여차하면 다른 응급처치를 시작하고 911에 연락하기 위한 대비였다. 긴장감 속 반복된 기침 끝에 아이의 입에서 작은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어른의 눈에는 그다지 크지 않은, 알맞게 영근 동그란 블루베리 한 알. 그와 비슷한 푸른빛이 감돌던 오웬의 입술색도 예의 붉은빛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누가 시키기라도 한 듯 숨죽이고 있던 아이들은 다시 점심을 먹으며 오웬을 살폈다. 긴장감이 풀린 아이는 앙, 하고 울음을 터뜨리더니 선생님의 가슴팍에 안겼다. 3분. 평화로웠던 점심시간에 끔찍한 소용돌이가 일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3분이었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길 망정이지 아이가 끝끝내 블루베리를 뱉어내지 못했다면 어찌 됐을지, 선생님은 생각만으로 아찔했다. 일상에서 갑자기 찾아올 수 있는 질식의 위험. 그렇다면 우리가 알아야 할 올바른 예방법과 대처법은 무엇일까.
"3세 이하 어린이에게 적합하지 않음"
"작은 부품이 있어 질식 위험이 있음"
Choking hazard. 어린이 제품, 특히 장난감 패키지의 주의 문구로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이다. 호기심 천국에 오감 발달이 한창인 아이들은 손에 잡히는 물건들을 쉽게 입에 넣기도 한다. '물건'이라 함은 말 그대로 '아무 물건'을 말한다. 작은 블록이나, 자동차 바퀴, 단추나 미니 피겨 같은 장난감은 물론이고 동전, 병뚜껑이나 이어폰과 같은 생활용품도 이에 해당된다.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와 한국 KC 인증에서는 지름 3.17cm(1.25인치), 길이 5.71cm(2.25인치) 이하인 물체를 유아 질식 위험으로 간주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작은 물체들은 쉽게 어른들의 시선에 잡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유치원에서는 물론이고, 집에서도 아이들의 연령대에 맞는 장난감과 교구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바닥에 작은 물건이 떨어지진 않았는지, 미술 재료로 쓰이는 털방울이 너무 작진 않은지, 아이들의 손이 닿는 곳에 있어선 안 되는 물건은 없는지. 확인, 또 확인하는 습관이 어린이 질식 위험의 가장 확실한 예방법이다.
기도가 좁은 3세 미만의 아이들에겐 음식물의 크기도 이에 맞춰 주어야 한다. 블루베리, 포도, 팝콘이나 젤리 같은 작은 음식은 세로로 4 등분하는 것이 안전하며, 당근처럼 단단한 채소는 익혀서 주는 것도 하나의 예방법이다. 그 외에도 모든 음식물들은 얇게 자르거나 잘게 썰어 준비하고, 아이가 앉아서 음식을 섭취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아무리 주의해도 예상치 못한 사고는 불시에 찾아오기 마련이다. 만약 아이가 삼킨 물질이 기도를 막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 이하 정보는 Canadian Red Cross에서 안내하는 Choking Hazard First Aid에 따랐다. 한국과 캐나다 모두 국제 CPR/First Aid 지침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나, 한국에 맞는 보다 구체적인 정보는 '사단법인 대한심폐소생협회' 및 '질병관리청'에서 찾아볼 수 있다. **
1. 아이의 상태 확인 먼저!
아이가 의식을 잃은 상태라면 지체 없이 119(캐나다에서는 911을 사용한다) 신고와 심폐소생술(CPR)을 시작한다. 만약 아이가 기침이나 울음소리를 낼 수 있다면 스스로 기도를 확보 중이란 뜻이다. 억지로 손가락을 넣어 이물질을 꺼내려하지 말고 기침을 통해 뱉어낼 수 있도록 유도하자. 숨소리가 안 나거나 기침도 못 하는 경우라면, 기도가 폐쇄된 것으로 간주하고 바로 119 신고와 CPR을 시작해야 한다.
2. 의식 있는 아이의 연령에 따른 대처법
영아 (0-12개월)
기침이나 울음을 통해 이물질이 나오지 않는다면, 기도가 뚫리거나 아이가 반응이 없을 때까지 '5번의 등 두드리기(Back blows)'와 '5번의 흉부압박(Chest thrusts)' 과정을 반복한다. 우선 아이를 엎드리게 하여 팔에 올리고 머리는 몸보다 낮게 유지한 채, 손바닥 밑부분으로 양쪽 견갑골 사이를 5회 강하게 두드린다. 이후 아이를 뒤집어 천장을 보게 한 뒤, 두 손가락으로 양쪽 젖꼭지 라인 아래 흉골 가운데를 5번 눌러준다. 반복된 과정 후에도 아이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119 신고와 CPR을 시작해야 한다.
유아 (1세 이상)
기침이나 숨쉬기가 불가능하다면 하임리히 법(Heimlich maneuver)을 시작한다. 우선 아이 뒤에 서서 팔로 허리를 안은 뒤, 주먹 쥔 손의 엄지 쪽을 배꼽 위와 명치 아래에 댄다. 이후 다른 손으로 주먹을 감싼 상태에서 빠르고 강하게 위로 밀친다. 이 동작을 이물질이 나올 때까지 반복하며, 아이가 의식을 잃는다면 119 신고와 CPR을 시작한다.
이쯤에서 응급처치 훈련을 받지 않은 이들은 고민에 빠질 것이다. CPR은 어떻게 하는 거지? 의학 드라마에서나 보던 행위를 내가 해도 될까? 오히려 일을 그르치면 어떡하지?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만큼 상황을 악화시키는 일은 없다. 심정지 상태에서는 몇 분 안에 뇌손상이 시작되므로, 비전문가의 CPR 시도 만으로도 생존율이 크게 올라간다. 대신, 비전문가는 인공호흡을 생략하고 가슴압박(Chest compressions)만 하는 CPR을 시행하면 된다.
3. CPR은 어떻게 할까?
아이를 단단한 바닥에 눕히고 그 옆에 무릎 꿇고 앉는다. 영아의 경우 손 전체를 사용하면 무리를 줄 수 있기 때문에, 검지와 중지만 이용해 젖꼭지 선 바로 아래 흉골 중앙에 댄다. 상대가 유아라면, 양손을 포갠 상태에서 손바닥 뿌리에 힘을 주도록 한다. 이 상태를 유지한 채 가슴 두께의 약 1/3 깊이, 분당 100-120회 속도로 강하게, 빠르게, 깊게 가슴 압박을 지속한다. (전문가는 30회 압박 후 2회 인공호흡을 실시한다.)
4. 자동심장충격기(AED) 사용법은?
AED는 전원을 켜면 음성 안내가 나오기 때문에 비훈련자도 사용 가능하다. 또한 119 신고 시 전화 지도로 사용법을 안내해 주므로, 사용자는 지시에 따라 패드를 붙이고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 영유아의 경우, 가슴 중앙과 등에 각각 소아용 패드를 부착하면 AED가 자동으로 심장 리듬을 분석한다. "분석 중, 환자에게서 떨어지세요"라는 안내 후 "쇼크 버튼을 누르세요" 음성 지시가 나오면 버튼을 눌러 AED를 시행시키고, 즉시 CPR를 재개한다. 이 과정은 119가 도착할 때까지 반복돼야 한다.
내가 속한 유치원 단체에서는 아이들에게 팝콘과 마시멜로처럼 질식 위험이 있는 음식물을 제공하지 않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 집에서 가져온 도시락도 미리 확인 후 음식물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주며, 학부모들에게 협조 안내문을 보내기도 한다. 캐나다 BC 주에서는 유치원 내 First Aid와 CPR 자격증을 지닌 선생님이 상주해야 하며, 자격증은 매 3년마다 만료된다. 나는 올해 다시 수업을 들으며 자격증을 다섯 번째 갱신했지만, 여전히 위와 같은 상황이 현실로 닥치면 가슴이 철렁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어른들의 방심과 현장에서의 망설임은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기에, 질식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고 사고가 날 시 침착함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의 세상엔 재미있고 신기한 일들이 가득하다. 매일매일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이를 통해 배움을 얻는 시기. 하지만 그 경험이 '이 단추를 먹어보면 어떨까?'로 시작해 '숨을 쉴 수 없다'는 배움으로 끝을 맺는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세상을 탐구하고 스스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 그리고 그런 환경과 자유는 책임감 있는 어른들이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안돼, 하지 마,라는 부정적인 말에 앞서 아이들을 위한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고 마음껏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아이들이 위험에 빠진 순간 가까이에서 손 내밀어 주는 것. 그것이 어른인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아닐까.
캐나다 BC주에서 Early Childhood Education과 Child Care Licensing Regulation을 공부하고, 유치원 아이들과 함께 보석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 Cover image by Libby Penner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