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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이별하는 날

by Ray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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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려서 서예 배웠던 거 알아?"

"그래? 얼마나?"

"한...... 8년? 고등학교 진학 전까지 배웠으니 꽤 오래 배웠지."


우리는 거실에 앉아 이삿짐을 싸는 중이었다. 그가 테이프를 붙여 박스를 만들면 나는 뽁뽁이에 감은 그릇을 담았다. 두 달 전 집을 팔고 매일 밤 이렇게 천천히, 우리는 생애 첫 집, 결혼 생활의 전부였던 집과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내일이면 이 공간도 안녕이다.


"그렇게 재밌었어? 오래 배울 만큼?"

"아니. 먹물이 좋아서 다녔어."


아빠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자를 배우라고 보냈던 서예 학원에서 나는 '하늘천 따지 검을현 누루황'의 카테고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 채 허송세월을 보냈다. 빠듯한 가정 형편에 동네 아이들이 다니던 피아노와 컴퓨터 학원을 발만 디뎠다 나왔어도, 서예 학원만큼은 주에 한두 번씩, 가늘고 길게 참 오래도 다녔더랬다. 붓글씨를 시작하기 전, 벼루에 물을 살짝 담아 동그란 원을 그리며 먹을 갈던 그 시간. 단단한 질량의 먹이 서걱서걱 걸리며 벼루 속 물이 걸쭉해지는 걸 지켜보던 그 시간이, 나는 참 좋았다. 그런데 이삿짐을 싸다 느닷없이 그 생각이 왜 나는 것일까.


- 왜 멋있는 거 하나 써서 저기다 장식이라도 하지 그랬어.


그는 자신의 그림이 걸린 거실 벽 한편을 가리켰다. 호랑이와 그를 닮은 매서운 여자가 묘하게 겹쳐있는 그림. 신혼집에 이게 무슨 엄한 기운이냐며 실랑이를 벌였던 기억이 난다. 생각난 김에 그림을 떼어내니 때 묻지 않은 액자 뒤 벽면이 부끄러워 하얗게 질린 모습을 드러냈다. 꽤 오래도 숨어 지냈으니 이제 그만 볕도 보여줘야지 싶다.


- 먹물만 갈다 끝났어. 한자도 못 외우고 글씨도 멋있게 못써.


서예 학원에서 보낸 8년은 정말 허송세월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희미하게 남아있는 먹을 잡는 감각이라던지, 그 냄새라던지 하는 것들 외엔 내게 남은 것이 없으니 말이다. 큰 배움도, 변화도 없이 유독 천천히 흐르던 시간. 그 속에서 꼬꼬마였던 내가 사춘기 소녀가 된 것이 신기할 지경이다.


그러고 보니 이 집에서도 꼬박 8년을 살았다. 예산을 맞추느라 취향은 고려하지 않았던 동네였지만 살다 보니 숨은 매력이 많았다. 트레인이 코 앞에 있어 밴쿠버까지 출퇴근이 편리했고, 웬만한 것은 걸어서 해결할 수 있으니 나 같은 만년 초보운전자에겐 딱이었다. 녹지 조성에 진심인 시청 덕에 걸음걸음이 즐거웠고, 나이가 백 년을 훌쩍 넘는 헤리티지 하우스들도 동네에 색다른 맛을 더했다. 아기가 태어나면 작은 방을 쓰다가 학교를 보낼 즈음에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려는 계획도 있었다. 업타운으로 넘어가는 길에 보이는 작은 마당을 낀 집들을 보며 아이와 소꿉놀이를 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의 시간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바라고 기다려도 찾아오지 않은 아이를 마음에서 놓아주고, 강릉의 어느 길가에 처참하게 버려졌던 강아지를 캐나다까지 데려왔다. 그 사이 코비드가 터졌고, 작은 방은 아이 방 대신 재택근무를 하게 된 신랑의 오피스가 되었다. '뼈가 드러나도록 마름'이 유일한 특징이었던 입양 공고와 달리, 어느새 노견이 되어가는 소다는 불어난 체중 덕에 힘겨운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우리 셋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더우나 추우나 상관없이 산책에 나서며 동네 골목길의 소소함을 눈에 새겼다. 집 앞 공원을 걷고, 파머스 마켓에서 과일을 사고, 돌아오는 길에 커피와 펍컵을 챙기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큼직한 이벤트랄 것 없는,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이렇게 계속 이어질 것만 같은 그 시간이, 나는 참 좋았다.


- 우리 여기서 허송세월만 보낸 건 아니겠지?


어느새 사십 대 중후반을 달리고 있는 우리 두 사람. 문득 서너 문장으로 요약될 만큼 고요하고 단순했던 지난 8년이 나만 좋았던 건 아닌지 불안해졌다. 한자 한 줄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나를 보고 아빠가 말했듯, 어쩌면 이곳에서의 삶이 그에겐 허송세월로 비치는 것은 아닐지.


- 난 행복했는데. 너는?

- 나도.

- 그럼 됐지.


그는 무심한 듯 대답하며 새로운 박스를 꺼냈다. 우리가 행복하면 됐지,라고 말하는 그에게 확신이 필요하듯 그렇지?라고 되물었다.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도 세상이 정해놓은 잣대에 맞춰봐야 하는 나란 인간, 참 밉다. 괜스레 입술을 씰룩이며 미운 인간은 쓰레기 봉지를 단단히 졸라맸다. 불경한 마음 따위 썩 꺼져라.


마지막 박스를 채우고 나니 거실엔 이삿짐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집의 입장에서도 지난 몇 달은 꽤나 피곤했을 것이다. 주인은 느닷없이 대청소를 한다고 난리를 피우고 주말마다 낯선 사람들이 찾아와 이곳저곳을 들쑤셨으니 말이다. 숨기고 싶은 치부일수록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게 그들의 특징이었다. 이가 나간 아일랜드 모서리라든가, 페인트 칠이 벗겨진 벽면, 욕조 바닥의 실금 같은 것. 공간은 사람을 닮는다고 했는데 부끄럼 많은 집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미안한 마음을 들었다. 어디 그뿐인가. 부동산 신이 철저하게 등져버린 주인을 만난 탓에 집은 제 몸값도 고꾸라지는 수모를 겪었다. 8년 전, 매일 최고가를 경신하던 시장 덕에 오픈하우스는 찾아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고, 집은 20대의 청춘같이 빛나던 제 모습을 맘껏 뽐냈다. 개중에는 돈이 넘치는 사람들도 있었을 텐데 하필이면 우리 같은 영끌족에게 얻어걸린 게 집의 슬픈 운명이었다. 시나브로 우리와 함께 나이를 먹고 슬슬 여기저기 수리를 해야 할 때가 된 집. 늙는 것도 서러운데 반대로 매일 최저가를 경신하는 지금의 시장에 집을 팔겠다는 주인이라니. 기대치에 한참 못 미치는 값이라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난 걸 감사해야 하나, 하고 집의 기분도 씁쓸했을 터였다. 참 미안하다, 우리의 끝이 이리되어서.


이사를 한다는 건 오랜 인연과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함께한 과거는 추억이란 미명하에 더 아름답게 기억될 것이고, 한동안 집과 함께한 버릇은 나를 따라다닐 것이다. 어쩌면 새집과 그를 비교하며 싱크대는 예전이 훨씬 낫네, 따위의 멘트를 날릴지도 모른다. 어쩔 땐 내 결정에 후회도 하고 미련을 보일지도. 하지만 선명했던 기억과 감정들은 결국 희미해질 것이다. 새로운 장소와 오늘이라는 시간을 사는 우리의 모습으로 대신하겠지. 그때가 되면 이 집도 우리 셋의 행복했던 한 때라는 뭉글한 표현으로 남을 것이고.


우리는 내일 새집에 둥지를 튼다. 서로가 벼루와 먹이 되어 매일 셀 수 없이 많은 원을 그리며 그와 나는 또 다른 8년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함께 먹물을 만들며 살아갈 것이다. 이삿짐을 싣고 나면 마지막 아침 산책을 나서야겠다. 집과 동네에 안녕을 고하며.



잘 살게. 너도 잘 살아.

집과 함께한 마지막 9월






** Cover image by Dina Badamshin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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