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하던 일을 정리하고.
지난 몇 년간 해오던 사업을 정리하고, 새로운 일을 준비하면서 든 생각은 옷이든 가방이든 쥬얼리든 뭐가 됐든 그건 나에게 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옷과 가방을 만들고 파는 일을 그만두고 쥬얼리 브랜드를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가슴이 갑갑했다. 쥬얼리 브랜드를 하면 행복할까? 쥬얼리를 만들어 파는 일도 또 똑같이 하기 싫어지지 않을까? 나는 대체 뭘 어떻게 하고 싶은 인간인 걸까? 그냥 세상물정 모르는 변덕쟁이 철부지인 게 아닐까? 저주받은 재능으로 한량처럼 살아가면 어떡하지?
그럴 수도 있다. 그렇게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해보고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벌써 쥬얼리 만들겠다고 얼마나 떠들고 다녔는데.
일단 쥬얼리를 하고 싶다고 했으니 무라도 썰어보자고 생각하고 작업실 책상에 매일 앉았다. 만드는 일은 너무 즐겁다. 일단 만드는 걸 좋아하는 건 확실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어떤 걸 만들지 구상하고, 그걸 손으로 이렇게 저렇게 구현해 보는 과정은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면서도 좋아하는 일이었다.
내가 잘 못하는 건 파는 일이었다. 몇 년간 옷을 팔기 위해 페어나 팝업 매장에도 직접 나가고 하면서 많이 뻔뻔해지긴 했지만 항상 숨어버리고 싶었다. 실제 우리 옷을 사는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외국인 모델들에게 옷을 입혀 멋있게 사진을 찍고 광고를 돌리는 일도 왜 그렇게 민망하고 부끄러웠는지. 내가 하리라고 생각지도 못한 패션 브랜드 사업을 대학 동기와 갑작스럽게 하게 되면서 나는 '패션 브랜드는 이래야 한다', '매출을 만들려면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갇혀서 패션 브랜드의 공식을 따라 하기 급급했던 것 같다. 물론 정말 많은 걸 배우고 브랜드도 성장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하는 일이 마음속 깊이 즐거울 리 없었다.
그렇게 몇 년간 함께한 동업자와 서로가 원하는 목표가 다르다는 걸 깨닫고 일을 정리한 이후로 다시 또 원점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쥬얼리를 만드는 건 즐거운데, 그래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거지? 또 그저 그런 사업을 하고 싶진 않은데.
작업실 책상에 앉아 손은 열심히 움직이면서 머릿속으로는 열심히 생각을 했다. 그때 얼마 전 읽은 마스다 미리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 내 마음은 누가 결정해 줄 수 있는 게 아니야.
자신이 좋다고 생각한 것은 평생 죽을 때까지 자기만의 것이야.
설령 그것이 조금씩 모습이 바뀌어서
다른 사람 눈에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된 것처럼 보여도
내게는 같은 거야.
오하기 만드는 일을 그만두고 장갑을 뜨기 시작했다고 해도
내 안에서는 연결되는 거야.
이 감정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을까. "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언가를 창작하는 과정, 그리고 그 무언가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일만큼은 평생을 하고 싶었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걸 깨닫고 나니 오히려 새로운 브랜드를 준비하는 게 재미있어졌다. 하고 싶은 것들이 계속 떠올랐다.
내가 좋다고 생각한 것들, 그것들을 찬찬히 펼쳐나갈 나의 새로운 브랜드.
그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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