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18년 제작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영화 '소공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영화에서 주인공 미소는 자기 인생에서 담배, 위스키, 남자 친구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 세 가지가 사회적 조건의 변화로 그녀가 향유하기 어려운 것이 되어 버린다. 먼저, 2500원이던 담배가 4500원이 되자 그녀는 생활에 큰 부담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집세도 50000원이 올라 하루 수입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기에 이른다. 결국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집을 포기하기로 결정하고, 대학 시절 밴드부 활동을 같이 했던 친구들의 집을 돌아가며 머물기 시작한다.
미소는 경제적 합리성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가치에는 부합하지 않는 가치관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스스럼없이 친구들에게 숙박을 부탁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진심으로 기꺼이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넨다. 제대로 된 연락도 없이 불쑥 계란을 들고 찾아와 재워 달라는 그녀의 모습이 친구들에겐, 아니 어쩌면 당신에게도 낯설고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사람들에게 마치 깨끗한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생명을 불어넣는 모습은 그녀의 그런 행동이 오히려 자기중심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를 비우는 사고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마치 물아래에서 끊임없이 발을 젓는 오리처럼, 현대인들은 ‘생존’, 즉 ‘자기 보존’을 위해 쉬지 않고 삶을 살아나간다.현상 유지를 위해 점점 더 많은 헌신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어떤 이들은 가족을 위해, 어떤 이들은 그저 자신의 사회적 인격을 위해 자기를 희생한다, 미소는 영화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지 않아도 행복한 사람인 것 같다. 자신을위한 것은 오로지 술, 담배, 남자 친구뿐. 그 외의 자리는 늘 답답하고 우울하고 슬픈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다.
자신보다는 타인에게 내어줄 것들이 많아 보이는 그녀는 내가 지금 가진 것, 개인성을 유지하기 위해 온 힘(노동)을 쏟아야 하는 근대적 인간(주체)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각자의 성격이나 처한 상황에 관계없이 똑같이 온전한 사랑을 보여주는 미소의 행위는 생존을 위해 인간성마저 희생하며 각개전투하는 동시대 사회에서 꼭 필요한 '노동'이 아닐까?
역설적이게도 우리에게 사랑과 돌봄의 가치를 보여주는 소위 돌봄 노동은 언제나 가리어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돌봄 노동은 이름 없는 마음, 환대, 사랑이자, 너무나도 쉽게 평가절하되는 노동이다.
탈구조주의 사회학자들은 사회적으로 인식조차 되지 않아 주체도, 객체도 될 수 없는 존재들을 비체라고 한다. 우리는 비체들의 도움을 얻어 다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동안 어느덧 그들에 대해 잊곤 한다. 이 집 저 집 떠도는 미소를 가끔 멀찍이서 바라만 보다가 미소가 사라져 버린 것을 깨닫는 것처럼, 모두가 미소를 회상하지만 정작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물론 미소는 지금도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비체들은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