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의 레시피, 팟타이
태국을 여행해본 사람 중 팟타이를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팟타이는 똠얌꿍, 커리와 더불어 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때문에 팟타이가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요리일 것이라는 추측을 하기 쉽다. 이러한 추측과는 반대로, 팟타이는 1930년대에 만들어진 현대의 요리이다. 팟타이를 발명한 사람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유명해지기까지의 과정이 소상히 알려져 있기까지 하다. 팟타이의 발명가는 태국의 수상이었던 피분송크람으로, 팟타이는 태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및 홍보 아래 탑다운으로 전파된 ‘관제 요리’였다.
피분송크람은 태국의 근현대사에서 빠질 수 없는 입지에 있는 인물이다. 두 번의 군부 쿠데타를 성공시켜 30년에 달하는 독재 권력을 누렸기 때문이다. 그가 첫 번째 쿠데타를 일으켰던 1930년대는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 위기와 민족주의의 돌풍이 공존하던 시기였다. 그는 ‘시암혁명’이라고 이름 붙인 쿠데타를 통해 절대왕정제를 폐지하고 입헌군주제를 도입하였다. ‘싸얌(Siam)'이던 국호를 ’타이(Thai)'로 바꾼 것이 바로 이 시기였다. 이는 태국 내 화교 및 소수민족의 활동을 억압하고 ‘타이족’을 중심으로 태국인의 정체성을 통일하자는 민족주의 의식의 발로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팟타이는 타이족의 문화적 우위를 고양하는 작업에 정치적으로 활용되었다. 본래 타이족의 주식은 쌀이었으며, 볶음 쌀국수(꾸에이띠여우 팟)를 위시한 볶음 요리는 중국에서 전래한 요리로 보는 인식이 보편적이었다고 한다. 다수의 중국계 상인들이 볶음 쌀국수를 판매하는 일에 종사하며 수익을 얻고 있었다. 피분의 정부는 중국계 상인들의 우위를 누르고 타이족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볶음면에 타마린드와 라임, 고추, 팜슈가와 같은 태국적인 재료를 곁들인 레시피를 개발하였다. 또한 이것에 ‘팟타이(태국의 볶음 요리)’라는 이름이 붙는 과정을 공공연하게 지원했다.
피분 정부의 팟타이 홍보는 조직적이었다. 팟타이의 레시피를 가가호호 전달했고, 상인들에게는 팟타이를 판매할 수 있는 가판대를 제공했다. “타이 것을 사자”는 캠페인을 펼쳐 중국계 상인들이 팟타이 외의 음식을 판매하는 것을 제한하는 한편 “점심은 국수로”라는 슬로건을 전파해 팟타이의 섭취를 늘리기도 했다. 팟타이의 조직적인 홍보 이후, 몇 년 사이에 거리는 팟타이를 판매하는 상인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인기를 바탕으로, 가파르게 성장하는 관광산업에 힘입어 팟타이는 태국을 상징하는 요리로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타마린드와 라임의 새콤함과 팜슈가의 달콤함, 고추의 매콤함이 조화를 이루면서도 크게 거부감이 들지 않는 무난한 맛 덕에 팟타이는 관광객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길을 걷다가 고개를 돌리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접근성 또한 이러한 인기의 밑받침이 되었다.
30년에 가까운 독재를 누린 피분송크람은 1958년 또 다른 독재자에게 수상의 자리를 빼앗기고 국외로 추방되었다. 망명한 이후 태국 땅을 밟지 못한 채 1964년 일본에서 사망했지만, 피분의 적극적 지원 아래 성장한 팟타이는 세계적인 요리로서의 입지를 공고하게 유지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는 인물이지만, 팟타이의 맛과 성공은 그 무엇보다도 강렬한 유산으로 남아있음을 부정하기가 어렵다.
*『트레블 인 유어 키친』(브레인스토어, 2021)에서 위 요리의 레시피와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