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글동글 미트볼 세상
최근 몇 번 글을 올리긴 했습니다만, 정식으로 제 두번째 책 출간에 대한 소식을 알리려 합니다.
첫번째 책(<트레블 인 유어 키친(2021, 브레인스토어>)에서 저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요리와 그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풀어내었습니다. 두번째 책을 구상하면서, 저는 이보다 좀 더 작은 범위의 요리가 세계적으로 어떤 형태로 풀어지는 데 몰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다만 '그 좀 더 작은 범위의 요리'를 결정하는 것이 조금 어려운 일이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집들이를 위한 손님 요리를 만들던 중, 제 머릿속에 '미트볼을 만들어보자'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 날, 저는 우연히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된 그리스와 멕시코의 미트볼 요리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손님들이 올 시간은 다가오고 테이블 세팅도 미처 끝내지 못했는데도, 저는 자꾸만 멍하니 딴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움직이다가도 가만히 서있기도 하고 말이죠. 손 안에서 맴도는 매끈매끈하고 동글동글하고, 토실토실한 미트볼 반죽의 감촉에 빠져버린 것이었습니다. 결국 손님들을 맞이하는 겸 차와 커피로 그들의 배를 채우는 일을 남편이 맡고, 저는 차분히, 또 열심히, 동글동글한 미트볼을 만드는 일에 열중했습니다. 손님들이 푸짐하게 준비한 미트볼을 깨끗하게 먹어치우는 것을 보며, 저는 저의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전세계의 미트볼을 만들어보자. 그걸로 책이 나오면 더 좋고.' 이 집들이가 바로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 뒤로 세계 각지의 120개가 넘는 미트볼을 만들었구요.
이 아이디어를 재밌게, 또 진지하게 여겨주신 고마운 분이 있어, 이렇게 예쁜 책이 나왔습니다. 제목은 <세계 미트볼 연구, 고기공(2022, 출판사 린틴틴)>입니다. 120개의 요리 중 흥미로운 요리를 50개 정도 추렸고, 요리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와 이를 만들며 제가 겪었던 일화와 느낌을 곁들여보았습니다. 미트볼에 대한 호감은 2년 전의 집들이에서 우연히 시작되었습니다만, 백 가지가 넘는 미트볼을 빚어가는 과정은 저에게 그 자체로 큰 공부의 기회였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이렇게, 또 저 나라에서는 저렇게 미트볼을 만들고, 넣는 재료는 이렇게 다르고 하는 것들을 몸소 배웠습니다. 요리를 맛본 뒤, 요리의 탄생 비화나 전파에 얽힌 사연을 찾아보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만들고 조사하는 이 모든 과정에서 제가 느낀 가장 강렬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미트볼에 대한 세계인의 애정이었습니다. 간단한 다른 요리들에 비해 만들기 다소 귀찮은(하나하나 손으로 빚어야 하는) 이 요리들이 수 세대를 걸쳐 승될 수 있었던 힘이지요.
책에 담은 제 서문을 붙이며 책 소개를 마칩니다. 이미 미트볼 덕후가 되어버린 이상, 저 말고도 미트볼을 사랑해주실 분들이 많이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조물조물 동글동글, 얼마나 만들기 재미있는데요!
<서문>
세계 고기공에 관한 가벼운 연구
미트볼에 관한 책을 쓴다고 하면 ‘미트볼?’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을 마주치곤 한다. 한때 내가 그랬듯, 대다수가 머릿속에 품고 있는 미트볼의 이미지는 아마도 ‘3분 미트볼’ 같은 인스턴트 요리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3분 미트볼’의 벽을 넘어서 인식을 확장해보면, 우리가 이미 일상에서 다양한 미트볼을 접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미트볼을 우리말로 하면 ‘고기공’이다. 고기공은 대체로 재료를 잘게 다지고, 그것을 다시 뭉쳐 만든다. 공 모양으로 만들기도 하고, 넓적하게도, 수제비처럼 대충 뗀 모양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것을 굽거나 튀기거나 육수에 삶거나 하고, 소스를 끼얹기도 한다. 식자재도 모양도 조리법도 이처럼 다양하다. 하지만 어쨌건 미트볼, 고기공이라는 음식은 ‘잘게 다져서 뭉친다'는 명제 아래 있다. 햄버거의 고기 패티는 사실상 넓적한 고기공이며, 명절마다 빠지지 않는 동그랑땡도 마찬가지다. 넓게 보면 어묵은 생선 살로 만든 고기공이고, 소시지 또한 고기공의 일종으로 분류할 수 있다. 고기공이 일상적이지 않은 우리나라만 해도 이럴진대, 넓은 세상에는 얼마나 다양한 고기공이 있을까. 인터넷은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 곳곳의 고기공을 알아가는 데 유용한 창구가 되었다. 이를 통해 알게 된 것은, 거의 모든 나라에 고기공 요리가 있으며 ‘하늘 아래 같은 고기공은 없다’는 점이다.
각양각색의 고기공을 직접 만들어가는 동안 떠올린 질문이 있었다. 왜 인간은 고기공을 만드는가? 그도 그럴 것이, 고기공은 수고스러운 요리다. 위에 언급했듯, 다양한 재료를 다진 뒤 다시 뭉치고, 여러 방법으로 익혀야 한다. 게다가 소스나 수프, 국물 만들기까지. 손이 참 많이 간다.
이토록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함에도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고기공이 만들어진 것은, 대체할 수 없는 장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첫째로, 고기공은 질이 좋지 않은 고기를 소모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였다. 아무리 상태가 좋지 않은 고기라도 이를 다져 향신료와 허브를 넣고, 걸쭉한 소스를 곁들이면 그럭저럭 먹을 만한 요리로 재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 둘째로, 고기공은 고기의 수급이 부족했던 시절에 고기 요리의 양을 늘릴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빵이나 쌀, 채소 등의 부재료가 잔뜩 들어가는 고기공들은 이러한 장점이 적극적으로 쓰인 예다.
‘인간은 왜 고기공을 만드는가’에 관한 질문은 ‘최초의 고기공은 과연 언제, 누가 만들었을까?’라는 질문과 이어지기도 한다. 고기공이 처음으로 만들어졌다고 추측되는 지역이 몇 군데 있다. 첫째는 페르시아다. 10세기 초에 작성된 페르시아의 가장 오래된 요리책에 양고기를 달걀과 반죽해 오렌지만 한 크기의 공 모양으로 만든 요리에 관한 기록이 있다. 두 번째는 로마제국이다. 4~5세기경 작성된 것으로 알려진 『데 레 코퀴나리아 De re Coquinaria』에 몇몇 고기공 조리법이 담겨 있다. 세 번째는 중국. 중국의 대표적인 고기공인 스쯔터우에 관한 전설이 있기 때문이다. 스쯔터우는 수나라의 마지막 황제, 수양제(604년에서 618년까지 재위)를 위해 처음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다시 ‘왜 고기공을 만드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와, 수십 가지 고기공 요리를 만들며 떠올린 의견을 하나 덧붙여본다. 위에서 다룬 고기공의 탄생 이유에는 고기공 만들기의 ‘재미’가 빠져 있다. 고기공 만들기는 고되지만, 나름의 즐거움이 있는데 말이다. 반죽을 빚을 때의 그 다양한 촉감. 동그란 공 모양으로 반죽을 굴리다 보면 찰흙을 갖고 놀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도 한다. 동글동글 고기공을 모아놓으면 나란히 줄 선 유치원생처럼 올망졸망 귀여워 보이기도 하고, 작품 하나를 완성한 듯 보람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듯 소소한 즐거움이 있어,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고기공과 이에 얽힌 이야기가 시간을 건너 이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책을 손에 든 여러분 또한 내가 느꼈던 재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액체 괴물과 플레이 도우가 유행했듯, 고기공 만들기 속에서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고기공이라는 한 가지 주제가 변형에 변형을 거듭하는 과정을 살펴보며 세계인의 창의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접하는 재미도 있다. 창의력은 지식에서 나온다고 하니, 이 책의 50여 가지 다양한 요리를 접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만의 고기공 조리법이 시상처럼 떠오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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