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에 일어나 경제책을 읽고 일주일간 해야 할 일 리스트를 정한다. 점점 하루에 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고. 두 달 전쯤엔 5-6가지였던 게 지금은 10개 정도로 늘었다. 그래도 두 달 전보다 더 착실하게 하루에 많은 것을 하고 있다. 습관이 되었다고 할까. 오늘은 지구의 날이라서 명상에서 지구에 대한이야기를 했다. 우주비행사 들은 우주에서 창백한 점인 우리 지구를 바라보면 인식이 전환된다고 한다. 상상을 해보려고 했지만 잘 안 됐다.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놀라운 일이겠지.
- 아무리 척박한 환경이라도 식물은 그 환경에 맞게 몸집을 조절하며 자라난다. 출근을 하며 돌 사이, 벤치 사이사이에 핀 꽃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 무례한 사람을 상대하고 상처를 얻을 때마다, 면역력을 얻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저럭 견딜 만하다.
- 아침버스에 앉아있으면 햇살이 여러 방향으로 내 얼굴과 책 페이지를 비춘다.
- 예전에는 내 삶을 받치고 있는 것들이 분리된다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이것들이 분리되지 않고 점점 경계가 희미해지고 합쳐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 몸처럼 느껴져서 자연스러워진다.
- 글로 써버리면 오히려 놓아줄 수 있다.
- 날짜를 06.27로 잘 못썼다가 지웠다. 그러다 6월 27일의 날씨를 상상했다. 초여름. 곧 다가올 더운 한여름의 날씨를 긴장하며 바라보고 있을 때겠지. 아마 날씨는 거의여름과 같은 것이고 아마 매미가 울지도 모른다.
- 먹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먹는 것이 어떻게 소화되고 어떤 영양소가 어떻게 작용하는지가 더 중요한 것처럼 우리의 일상에서도 무엇을 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무엇을 어떻게 소화시키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기도하다. 소화기능이 없는 사람이 계속해서 먹기만 하는 것은 고문과 다름없고 입 밖으로 다 튕겨져 나갈 따름이다.
- <일하는 시간을 줄여드립니다>에서 '마음과 의지도 근육'이라는 개념이 정말 좋았다. 어렴풋이 자제를 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처음엔 힘들지만 나중엔 괜찮아진다는 개념을 알고 있었지만 그걸 ‘근육’이라고 표현하니, 실제 근육이 붙는 원리가 떠오르고 좀 더 습관이 굳어지는 게 시각적으로 보이니 명확하게 이해가 갔다. 그 이후로 내가 어떤 습관을 기르려고 하면 이 근육이 붙는 원리를 생각하면 꽤 견디기 수월하다.
- 글은 놓아두고 가는 것. 이렇게 적어두고 뒤돌아보지 않고 나는 다시 길을 나선다.
- 글을 쓴다는 건 나그네가 머리 위로 짐을 잔뜩 이고 가다가 그 자리에 하나씩 놔두고 가는 것 같다. 짐을 놔두고 가벼워진 손으로 새로운 짐을 들 수 있다.
- 비가 오는 날은 뭐든 2배는 힘들어진다. 단지 비가 오는 것뿐인데 그냥 걷는 것과 우산을 쓰고 걷는 건 달라지고, 짐을 한 손에 드는 것도 두 배는 힘들어진다.
러닝머신을 약 20분간 뛰었다. 강도를 8 정도로 하고 검정치마의 노래를 들으며 뛰었다. 부담스럽지 않은 속도로 오래 뛰니 땀이 천천히 배어 나왔고 서서히 몸이 달아올랐다. 기분이 좋았다. 헬스장 창으로 비치는 포니테일은 동일한 궤적을 그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꿈속에서 '두 발로 뛰는 코끼리'가 나왔다. 참 기괴했다.
-지금은 10시 10분 방에 불을 끄고 전등을 켰다. 그리거 누워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내 일상을 구성하는 것 중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안 중요할까? 애초에 그런 구분이라는 게 있을까. 무언가를 사랑하는 건 중요하고, 무언가를 미워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이분법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디자인을 한다. 어떤 걸 더 나아지게 하기 위해서 일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 이게 더 나은건지 아닌지 모를 때도 많고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기도 한다.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현재 무엇을 하고 어떤 감각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다.
내가 작년에 얻은 가장 큰 교훈은 나의 기분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어떤 옷을 입을지 고르는 것처럼 오늘 어떤 기분을 할지 고를 수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큰 깨달음을 줬다.
빗소리가 크게 내방을 울렸고 나는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얕은 수면 속을 헤매며 수면과 현실의 경계를 오가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