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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성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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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명 Feb 16. 2022

성장일기 <7>

시련을 통해 삶에 의미를 더하다.

오늘은 제가 읽은 글을 그대로 옮겨와봤습니다.

‘빅터크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라는 책입니다.

부분적으로 발췌했습니다.




시련은 운명과 죽음처럼 우리 삶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사람이 자기 운명과 그에 따르는 시련을 받아들이는 과정, 다시말해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아가는 과정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삶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폭넓은 기회 - 심지어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 를 제공한다.

(…)

언젠가 병에 걸린 한 젊은이로부터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편지에서 젊은이는 친구에게 방금 자기가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고 했다.수술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러면서 젊은이는 언젠가 자기가 본 영화 이야기를 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 아주 용감하고 품위 있게 죽음을 기다리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린 영화였는데, 그 영화를 보면서 죽음을 그렇게 의연하게 맞는 것이 인간으로서 참 위대한 성취였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썼다. 이제 운명이 자기에게 그와 똑같은 기회를 주었다고.

(…)

강제수용소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 인생의 진정한 기회가 자기들에게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곳에도 기회가 있고 도전이 있었다. 삶의 지침을 돌려놓았던 그런 경험의 승리를 정신적인 승리로 만들 수도 있었고, 그와는 반대로 도전을 무시하고, 다른 대부분의 수감자처럼 무의미하게 보낼 수도 있었다.




의미를 해치기 싫어 조금만 덧붙이겠습니다.

글에서 말하는 ‘시련’의 개념에 대해 나름대로 해석하자면, 우리는 각자 자기만의 정신적 세계를 만들어놓습니다.

그것이 좁든 넓든 관계없이 말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정신적 세계는 현실 세계와 만나며 도전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곧 ‘시련’이자 ‘삶에 의미를 부여할 기회’가 됩니다.

가장 큰 도전은 아마 글의 사례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해야 하는 선택이 아닐까 싶지만,

우리 모두 일상에서 크고 작은 시련을 만납니다. 긍정적인 삶을 살자 라는 생각을 하고 나왔지만,

심각한 교통체증을 만나 짜증이 솟구친다면 도전을 받는 것이죠.

사실 나에게 있어 큰 도전인지 아닌지, 큰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는 절대적인 기준이 없습니다. 스스로가 느끼는 것이 기준입니다.

짜증이 참을 수 없게 솟구친다면 나에게 있어 엄청난 도전이 되는것입니다.   


우리가 삶의 목표를 가진다는 것은, 자신이 당면한, 그리고 앞으로 마주하게 될 현실로부터 도전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고,

삶에 의미를 부여할 기회를 가지게 됐음을 뜻합니다.


한 때, 목표는 집착을 일으켜 스스로를 고통에 빠트린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제가 부끄러워집니다. 태양을 손바닥으로 가릴 수 있다 생각했던 것 같아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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