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 독립출판 에세이《조류》작업 기록 ①
다음년에 나와요. 다음년에 나와요. 하다가 그렇게 됐는데, 뭐 꼭 1년에 한 권씩 내야 한다는 법* 같은 건 없고, 어차피 내고나서의 기쁨과 슬픔은 내 몫이니까 작업 기간은 크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첫 책은 2018년 두 번째 책은 2019년 세 번째 책은 2020년에 냈다.
무엇보다 나한테는 나름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바로 내가 작곡한 음악을 넣겠다는. 아니, 넣는 정도가 아니라 음악을 위한 책을 만들겠다는 게 더 맞는 말일 거 같다. 왜 그런 목표가 생겼냐 하면...
책과 음악은 나한테 공간을 만들어줬다. 난 그 공간에서 자주 쉬었고, 자주 필요로 했다.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을 때는 그 둘을 찾았다. 그래서 언젠가 내가 그 공간에서 쉬었듯, 누군가에게도 그런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지면이라는 무대 위에 음악을 올리면 좋겠다고. 그게 쉽지 않은 걸 알면서도 난 그걸 바랬다.
그래서 출판사 이름을 정할 때 애초에 딱 마음을 먹고 짓긴 했다. Pyoong이라고.
퓽하고 막 떠올라서 그런 것도 있고, 내가 그 말을 퓽퓽 막 써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일단 의성어라는 점에서 합격이었다. landing with the sound. 이 슬로건 처럼, 난 음악을 지면에 떨굴 거야. 그런 책을 만들거야. 그런 다짐이랄까.
이러다가 또 다음 책에서는 음악 작업을 안 한다고 할까봐 걱정을 했지만... 일단 다섯 번째 책에서는 걱정할 일은 없을 거 같다. 지금 책에 넣을 마지막 곡을 작업하는 중인데 요즘 계속 '다음번에는 꼭 잔잔하고 트랙 수가 굉장히 미니멀하고 멜로디가 반복적인 어쿠스틱 전자음악(?)을 할 거야'라고 다짐하는 중이라서.
첫책을 낼 때는 세상에 복수를 하고 싶었다(주의: 링크를 클릭하면 소개페이지로 이동한다. 궁금할까봐 올리는 거다. 이미 절판했다). 거센 복수를 한 건 좋았는데 뒷심이 부족해서 그 내용에 걸맞는 형식을 갖추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 되었다. 두번째 책을 낼 땐 형식 자체가 내용을 담을 수 있게 구성했다. 그러나 천추의 한을 풀고 싶어서 한 6개월만에 결과물을 손에 넣고 나니, 1년 이상 원고를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결과 내가 좋아하는 계절과 거리의 풍경을 담은 세 번째 책이 나왔다. 그때 난 전자음악을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책에 그 결과물을 넣고 싶었는데, 실패했다. 배운지 6개월만에 그러긴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 다짐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다음책은 무조건 음악을 넣어서 만들 거라고.
책은 내가 남들보다 어느정도는 잘 아는 공간이다. 자신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취향이라는 것도 뚜렷한 편이고. 내 음악을 들려줘야 한다면 그래도 잘 아는 곳에서 하고 싶었다.
내 얼굴이 아닌 표지로, 내 목소리가 아닌 서체로, 내 분위기가 아닌 여백으로 보여주는 것이 나한테 잘 맞을 것 같았다.
난 음악을 잘 들려주고 싶었고, 그래서 계속 음악을 하고 싶었다. 죽이되든 밥이되든 누군가에게 닿아야 존재할 수 있을 거 같았고, 그렇게 존재하려고 노력할 것 같았다. 그래서 책에 음악을 담기로 했다.
그래서 혼자 울고 웃고 지랄 염병을 떨었다. 음악은 날 자주 미치게 만들었다. 아, 너무 좋아서 그럴 때도 있긴 했지만 대체로는 답답해서 미치고 팔짝 뛰는 일이 더 많았다. 난 왜 얘를 좋아해서. 난 왜 얘를 이렇게 원해서. 난 왜 이렇게 답도 없는 걸 파고 있을까. 난 왜. 난 왜. 그러다가도 또 '난 왜?'좀 하지 말라고. 왜긴 왜겠냐고. 좋은데 별 수 없는 거 아니냐고.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을 해봐야 뭘 어쩔 수 있겠냐며 그냥 가야한다고 밀어붙이고 그랬다. 뭐랄까 '주춤 주춤 챠챠챠 주춤 주춤 챠챠챠' 그렇게? (...내 음악의 장르는 자이브였나?)
그 시간 동안 선생님들의 수명은 많이 연장 되었을 것이며 내 수명도 많이 연장되었을 것이다. 나는 화성을 배웠고 잊어먹었으며, 재즈피아노를 배웠고 여전히 혼자 삽질을 하고있다. 그리고 미디쌤은 3년을 통틀어 세 분을 만났는데 한 분은 6개월간 찍는 법을 알려 주셨고, 한 분은 두달 간 곡을 많이 만들어주셨고(정말 곡을 만들어준다), 한 분은 1년 이상 나를 잘 갈궈주셨다*.
*이 쌤한테는 내가 책에 넣을 곡 작업을 마무리 하면 다시 믹싱이랑 마스터링 레슨해 주시면 좋겠다고 했는데, 본인도 예상했겠지만 절대 돌아갈 생각은 없다. 책은 보내드리고 싶긴 한데... 음... 좋아...하실까?
그래서 자주 우울했는데, 또 그 마지막 쌤 덕분에 많은 알을 깼다. 아마 혼자서는 절대 그렇게 많이 못 깼을 것이다. 원래 그렇게 알을 깨는 건 힘든 일이라는 걸 알게 된 게 어쩌면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싶다. 뭐랄까... 곡이 마음에 안드는 이유는 될 때까지 날 안 밀어붙여서 라는 생각도 했고. 물론 그냥 생각의 전환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초심자는 대체로 알을 깨는 게 더 중요한 거 같기도 하다(천재가 아니라면...).
곡에는 내 마음이 들어갈 수 밖에 없었고 나는 사랑...그 비슷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필연적으로 곡의 화자는 늘 바다의 한 가운데에서 꼴깍꼴깍 하고 있었다. 난 주변 사람들을 생각했다. 이 책이 나오면 엄마도 아빠도 보고 네명의 이모도 보고 내 친구들도 보고 아빠 친구 아저씨들도 보고 나랑 같이 일하는 분들도 보고... 와우.
하지만 그래서 안 된다는 건 아니다. 그냥 각오를 다지는 거지. 세상에서 제일 나같은 작품을 만들어서, 작품을 만들어서, 작품이니까, 작품이 될 거니까, 하자고. 최근에도 '그렇게 에세이로 속 얘기를 하고 나면 가끔은 부끄럽지 않아요?'라는 질문을 들었는데, 부끄럽다. 근데 부끄러워도 좋다. 부끄러우니까, 그럴만큼 진심이니까, 그런 순간이 내게 머물렀고 나를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는 그 자체가 좋다. 그러니까 이젠 별 수 없는 것이다. 각오를 다지고 가는 수 밖에는.
그렇게 에세이 《조류》는 기획되었고 원고 작업과 곡 작업을 얼추(...) 끝냈다. 그런 시점이라 나는 또 이 기록을 남긴다. 이번엔 음악 작업에 독립출판을 묻혀* 남길 것이다.
*독립출판을 중심으로 한 얘기는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작업기에서 많이 다뤘다.
그리고 이 기록은 언젠가 내가 만들어야 할 곡 작업 영상에 밑바탕이 되겠지. 난 항상 계획은 다 있다. 그걸 할만큼의 체력이 잘 안 받쳐줘서 그렇지. 그러니 체력이 되는 만큼 하겠다.
그럼,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