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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Oct 18. 2022

글은 내 안에 흘러넘치고
음악은 내 마음을 대변한다

네번째 독립출판 에세이《조류》작업 기록 ②

음악을 넣은 책을 만들고 싶은데,
글과 곡을 함께 담아내려면 어디에 초점을 둬야할까?



첫번째 작업기록에 쓰긴 했지만, 누군가를 애정하는 마음을 담아 책을 만들고 있다. 처음부터 그랬냐 하면 그건 아니다. 한 2년 전부터 기획했는데, 그당시 나에겐 음악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뭘 만들 수 있을지 너무 막연했으므로 내가 뭘 주로 글로 쓰고 있는지, 내 안에 가장 많이 언급되는 카테고리부터 찾았다. 글을 중심으로 먼저 접근해본 거다.


고민 끝에 《휨》이라는 제목을 가진 에세이를 내려고 했다. 내 휘어진 성격과 일상을 가득 담겠다고. 일단 내가 보편적인 방식으로 일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재미있을 거 같았다. 나는 에디터, 디자이너, 인터뷰어, 출판편집자, 뉴스레터 발행인, 작가이며 3시가 되면 업무 시간이 끝났다며 음악작업을 하는 하는 프리랜서였으니까.


인스타그램 프로필 @anony.minju


굴곡진 일상을 《휨》으로 보여줘야지. 그게 내 시작이었다. 다양한 일을 했고 다양한 글을 썼고 다양한 인간들을 만났으며 다양한 곳에 머무를 수 있었으므로. 그만큼 내 심정도 아주 복합적이었고 내 눈앞에 펼쳐진 세상과, 내 내면 세계는 가끔 좀 총천연색 같았다. 어디로 갈지, 어떻게 될지 하나도 예측이 안 되지만 그래도 난 내가 그리는 라인이 좋았다.


그러나 그 책은 쓸 수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글은 쓸 수 있는데 곡을 못 쓰겠더라고. 난 머리로 음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뭘 많이 알지 못했고, 무엇보다 1년 전부터 내가 쓰던 곡의 9할이 '내'가 아니라 '나와 너'에 대한 것이었으므로, 내 마음의 위치를 따라 책의 내용과 제목과 컨셉이 바뀌어야만 했다.


essay가 e-jeong-say가 되어야 한다고. 준비가 되었냐고. 그걸 쓸 수 있겠냐고. 오히려 작곡을 하는 내가 작가인 나한테 물어봐야 했다. '와 진짜... 그 얘길 진짜 한다고?', '책 고백이야?', '미친거 아니야?', '날 수치사로 죽일 셈이야?' 그런 생각을 거쳤지만, 그러면서도 되게 재미있을 거 같았다. 일단 편집자인 나로서는 아이디어가 자꾸 생각나서 멈출 수 없었다. 그래서 '으아아아아아아' 하고 굴러떨어지듯이 하기로 했다. 아니, 이미 하고 있었다.




곡과 글 중 뭘 먼저 써야 할까 했는데,

마음에 비친 풍경이 먼저더라.




그래서 나름 컨셉을 명확하게 잡고 기획하면서(그걸 또 엄청 수정하면서) 작업했다. 원고가 먼저 나오기도 했고 곡이 먼저 나오기도 했다. 순전히 그건 내 마음이었던 거 같다. 마음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야, 음악이 나오는 거고, 말을 고르는 거니까. 그래도 대체로는 글을 먼저 쓰긴 했는데, 간단하게 한 두 줄만 어떤 내용 쓸지 적어놓고선 곡을 작업하기도 하고, 어떤 건 곡을 쓰고 나서 글을 많이 고치기도 했다. 곡 작업을 하고 싶었는데 하기 싫어져서 사장된 글도 있다.


조리예... 같은 편집예. 실제 원고 편집방향과는 요만큼도 관련 없음.

바로 이건데, 셰익스피어의 6단어 소설(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에서 따왔다. Stuffed는 박제된, 채워진이란 의미도 있고, stuffed animal은 애착인형이라는 뜻도 있어서.


저걸 쓸 때 나는 녹지않는 계절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가끔 어떤 계절은 오래도록 떠나지 않고 곁에 있기도 하니까. 마음이 아플만큼 누군가를 원하던 계절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세상이 봄이든 겨울이든 여름이든 내 계절은 고정되어 있는 그 기분을.


그건 상대와의 기억을 그만큼 늘어뜨리는 것이라 좋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현실과 괴리감에 괴롭고 곤란하기도 하다. 나만 여기있고 사람들은 잘 흘러가고. 나는 혼자 있지만, 사람들은 행복하게 지금의 계절 속에 있고.


그런 감정으로 글을 쓰고, 음악으로 담아서 책에 내 놓는 행위를 한다면 그건 바로 내가 머물던 계절을 누군가에게 전하는 행위가 아닐까. 그래서 아마도 이 글을 보고(궁금증이 들어서든 저 단어를 알아서든 이해 했다면), '에이, 오랫동안 들고 있었다던 계절? 그런 걸 누가 사? 왜 사?' 라고 하는 독자는, 이미 사서 보고 있는. 뭐 그런 짓을 하려고 했다. 그걸 곡의 가사로 풀어서 사람들한테 '사실 이미 너는 내 마음이 펴낸 계절을 샀다'고 티내고 싶었다.


"녹지 않는 계절이 왔어요.

아직 빛나는 계절이 왔어요.

눈물을 머금고 파는 거예요.

소중했던 계절 팝니다."


가사를 녹음하다가 떠올렸다. 내가 이걸 쓰던 봄에, 을지로 3가역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꽃이 핀 나무를 보면서 느꼈던 그 서글펐던 감정을. 그걸 기억하고 나니까 완전히 기분이 축- 늘어져 버려서 이렇게 하기 싫더라. 나는 그런 계절에 서있는 나를 말하고 싶은 거지, 독자에게 장난을 칠 기분이 아니었다(장난치는 걸 좋아는 하지만). 한 곡 정도는 좀 대책없이 밝고 싶었는데... 아무튼 그 꽃을 생각하면서 글을 다시 쓰고 음악을 다시 작업했다.


글로 음악을 얘기 하려니, 난 아니까 괜찮은데... 읽는 사람이 답답할까봐 그냥 가져왔다. 위의 가사는 1:59초에 나온다.




결국 마음대로 했단 소리다.




곡을 써야 해서 쓰는 게 아니고, 글을 써야해서 쓰는 게 아닌지라. 둘을 다 해야 되는 경우에는 정말 마음대로 안 할 수가 없더라. 근데 이 마음이 사람들한테도 의미가 있어야 하는데, 다행히 애정은 우리 모두의 제각각 경험한 감정이라. 그것에 관심이 없거나, 그것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돈을 내고 자신을 위해 에세이를 사서 본다? 그럴 확률은 매우 낮다고 생각한다. 에세이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자신을 아끼는 사람들이 찾는 장르라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나온 곡은 총 6곡이다. 그것들 각각이 무엇인지는 좀 더 작업기를 이어가다가 쓰도록 하겠다. 어차피 언젠가는 말해야 하고, 소개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좀 더 작업 그 자체에 대해 할 말이 많다.


그럼,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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