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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Oct 11. 2022

내가 만든 음악으로 책을 만들 거야.

네번째 독립출판 에세이《조류》작업 기록 ①

벌써 세번째 독립출판물을 만들고 2년의 시간이 지났다. 

다음년에 나와요. 다음년에 나와요. 하다가 그렇게 됐는데, 뭐 꼭 1년에 한 권씩 내야 한다는 법* 같은 건 없고, 어차피 내고나서의 기쁨과 슬픔은 내 몫이니까 작업 기간은 크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첫 책은 2018년 째 책은 2019년 째 책은 2020년에 냈다.


무엇보다 나한테는 나름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바로 내가 작곡한 음악을 넣겠다는. 아니, 넣는 정도가 아니라 음악을 위한 책을 만들겠다는 게 더 맞는 말일 거 같다. 왜 그런 목표가 생겼냐 하면... 


1)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책과 음악은 나한테 공간을 만들어줬다. 난 그 공간에서 자주 쉬었고, 자주 필요로 했다.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을 때는 그 둘을 찾았다. 그래서 언젠가 내가 그 공간에서 쉬었듯, 누군가에게도 그런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지면이라는 무대 위에 음악을 올리면 좋겠다고. 그게 쉽지 않은 걸 알면서도 난 그걸 바랬다.


그래서 출판사 이름을 정할 때 애초에 딱 마음을 먹고 짓긴 했다. Pyoong이라고. 

출판사 등록 전에 명함 디자인부터 했다. 손에 잡히는 걸 만들고 나야 뭔가 확실해 질 것 같았다.

퓽하고 막 떠올라서 그런 것도 있고, 내가 그 말을 퓽퓽 막 써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일단 의성어라는 점에서 합격이었다. landing with the sound. 이 슬로건 처럼, 난 음악을 지면에 떨굴 거야. 그런 책을 만들거야. 그런 다짐이랄까. 


이러다가 또 다음 책에서는 음악 작업을 안 한다고 할까봐 걱정을 했지만... 일단 다섯 번째 책에서는 걱정할 일은 없을 거 같다. 지금 책에 넣을 마지막 곡을 작업하는 중인데 요즘 계속 '다음번에는 꼭 잔잔하고 트랙 수가 굉장히 미니멀하고 멜로디가 반복적인 어쿠스틱 전자음악(?)을 할 거야'라고 다짐하는 중이라서.



2) 창작은 나한테 정반합의 과정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첫책을 낼 때는 세상에 복수를 하고 싶었다(주의: 링크를 클릭하면 소개페이지로 이동한다. 궁금할까봐 올리는 거다. 이미 절판했다). 거센 복수를 한 건 좋았는데 뒷심이 부족해서 그 내용에 걸맞는 형식을 갖추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 되었다. 두번째 책을 낼 땐 형식 자체가 내용을 담을 수 있게 구성했다. 그러나 천추의 한을 풀고 싶어서 한 6개월만에 결과물을 손에 넣고 나니, 1년 이상 원고를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결과 내가 좋아하는 계절과 거리의 풍경을 담은 세 번째 책이 나왔다. 그때 난 전자음악을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책에 그 결과물을 넣고 싶었는데, 실패했다. 배운지 6개월만에 그러긴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 다짐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다음책은 무조건 음악을 넣어서 만들 거라고.



3) 내가 유리한 곳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책은 내가 남들보다 어느정도는 잘 아는 공간이다. 자신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취향이라는 것도 뚜렷한 편이고. 내 음악을 들려줘야 한다면 그래도 잘 아는 곳에서 하고 싶었다. 


내 얼굴이 아닌 표지로, 내 목소리가 아닌 서체로, 내 분위기가 아닌 여백으로 보여주는 것이 나한테 잘 맞을 것 같았다. 


난 음악을 잘 들려주고 싶었고, 그래서 계속 음악을 하고 싶었다. 죽이되든 밥이되든 누군가에게 닿아야 존재할 수 있을 거 같았고, 그렇게 존재하려고 노력할 것 같았다. 그래서 책에 음악을 담기로 했다.




한 3년 정도 음악을 배우고 만들었다.


그래서 혼자 울고 웃고 지랄 염병을 떨었다. 음악은 날 자주 미치게 만들었다. 아, 너무 좋아서 그럴 때도 있긴 했지만 대체로는 답답해서 미치고 팔짝 뛰는 일이 더 많았다. 난 왜 얘를 좋아해서. 난 왜 얘를 이렇게 원해서. 난 왜 이렇게 답도 없는 걸 파고 있을까. 난 왜. 난 왜. 그러다가도 또 '난 왜?'좀 하지 말라고. 왜긴 왜겠냐고. 좋은데 별 수 없는 거 아니냐고.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을 해봐야 뭘 어쩔 수 있겠냐며 그냥 가야한다고 밀어붙이고 그랬다. 뭐랄까 '주춤 주춤 챠챠챠 주춤 주춤 챠챠챠' 그렇게? (...내 음악의 장르는 자이브였나?)


그 시간 동안 선생님들의 수명은 많이 연장 되었을 것이며 내 수명도 많이 연장되었을 것이다. 나는 화성을 배웠고 잊어먹었으며, 재즈피아노를 배웠고 여전히 혼자 삽질을 하고있다. 그리고 미디쌤은 3년을 통틀어 세 분을 만났는데 한 분은 6개월간 찍는 법을 알려 주셨고, 한 분은 두달 간 곡을 많이 만들어주셨고(정말 곡을 만들어준다), 한 분은 1년 이상 나를 잘 갈궈주셨다*. 

*이 쌤한테는 내가 책에 넣을 곡 작업을 마무리 하면 다시 믹싱이랑 마스터링 레슨해 주시면 좋겠다고 했는데, 본인도 예상했겠지만 절대 돌아갈 생각은 없다. 책은 보내드리고 싶긴 한데... 음... 좋아...하실까?


그래서 자주 우울했는데, 또 그 마지막 쌤 덕분에 많은 알을 깼다. 아마 혼자서는 절대 그렇게 많이 못 깼을 것이다. 원래 그렇게 알을 깨는 건 힘든 일이라는 걸 알게 된 게 어쩌면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싶다. 뭐랄까... 곡이 마음에 안드는 이유는 될 때까지 날 안 밀어붙여서 라는 생각도 했고. 물론 그냥 생각의 전환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초심자는 대체로 알을 깨는 게 더 중요한 거 같기도 하다(천재가 아니라면...).



그렇게 곡을 중심으로 책을 쓰다보니

쏟아지는 애정을 주체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인간의 에세이가 되어버렸다.



곡에는 내 마음이 들어갈 수 밖에 없었고 나는 사랑...그 비슷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필연적으로 곡의 화자는 늘 바다의 한 가운데에서 꼴깍꼴깍 하고 있었다. 난 주변 사람들을 생각했다. 이 책이 나오면 엄마도 아빠도 보고 네명의 이모도 보고 내 친구들도 보고 아빠 친구 아저씨들도 보고 나랑 같이 일하는 분들도 보고... 와우. 


하지만 그래서 안 된다는 건 아니다. 그냥 각오를 다지는 거지. 세상에서 제일 나같은 작품을 만들어서, 작품을 만들어서, 작품이니까, 작품이 될 거니까, 하자고. 최근에도 '그렇게 에세이로 속 얘기를 하고 나면 가끔은 부끄럽지 않아요?'라는 질문을 들었는데, 부끄럽다. 근데 부끄러워도 좋다. 부끄러우니까, 그럴만큼 진심이니까, 그런 순간이 내게 머물렀고 나를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는 그 자체가 좋다. 그러니까 이젠 별 수 없는 것이다. 각오를 다지고 가는 수 밖에는.


그렇게 에세이 《조류》는 기획되었고 원고 작업과 곡 작업을 얼추(...) 끝냈다. 그런 시점이라 나는 또 이 기록을 남긴다. 이번엔 음악 작업에 독립출판을 묻혀* 남길 것이다. 

*독립출판을 중심으로 한 얘기는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작업기에서 많이 다뤘다.


그리고 이 기록은 언젠가 내가 만들어야 할 곡 작업 영상에 밑바탕이 되겠지. 난 항상 계획은 다 있다. 그걸 할만큼의 체력이 잘 안 받쳐줘서 그렇지. 그러니 체력이 되는 만큼 하겠다. 


그럼,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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