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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Oct 25. 2022

잔향을 그리고 음악으로 표현하다

네번째 독립출판 에세이《조류》작업 기록 ③


책에 음악을 넣으려면 배경음악이어야 하는 게 아닐까?




나는 16살 때부터 경기도 광주에 살았기에 길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 편이다. 대학교에 갈 땐 최소 1시간 30분이 걸렸으므로 버스는 나한테 움직이는 공부방이나 다름 없었다. 벼락치기로 버스에서 시험 공부를 한 적도 꽤 많았는데, 종종 옆사람의 귀에 꽂혀 있던 이어폰에서 소리가 새어 나오면 저 사람의 핸드폰을 빼앗아서 밖에다 던지고픈 충동을 느꼈고, 기사님이 듣고 있는 라디오에서 DJ가 자꾸 맛이 나는 진행으로 내 귀를 잡아끌어서 속으로 욕했던 적도 있다. 누굴? 미리 공부 안 하고 이제야 괴로운 마음으로 집중하게 만든 나를. 분명 초면은 아닐 텐데 초면 같은 글자들을 머릿속에 넣어야 하는 이 상황을 만든 나를.


그걸 모르지 않기에 책에 내 음악을 넣겠다고 다짐하고선 고민을 꽤 많이 했다. 내 음악은 처음일 테고, 내 글도 처음일 텐데, 독자들이 과연 그걸 잘 받을 수 있을까. 자기만의 감상에 빠질 여유가 있을까. 글도 말을 걸고, 음악도 가사를 통해 말을 건다면 중첩되는 그 언어의 파도를 독자가 타고 즐길 수 있을까.


나름대로 문제를 해결할 가장 쉬운 방법은, 글자들이 뛰어놀 수 있도록 음악은 가사 없이 분위기만 조성하며 BGM으로 깔리는 거다. 하지만 그걸로 내가 만족스러울 거 같지 않았다. 내 마음을 다 만족하면서 최대한 사람들도 좋아하게 책을 들려줄 방법은 없을지 고민했다.




어떻게 책을 읽으면서

노래를 찾아 듣게 만들지?




1. 글을 읽고 곡이 궁금하게 만든다


《조류》중 '∞' 의 일부


소리를 묘사하는 글, 소리의 감각과 감정을 묘사하는 글을 쓴다면 그 소리를 들려줬을 때 가장 시너지가 클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생각하고 쓴 건 아니고, 그냥 내 마음에 가득찬 애정으로 잔향이 넘치는 중이라서 그런 음악을 만들고 싶은데 그거랑 잘 맞는 글의 형태를 생각해서 계속 고쳐나갔다. 그래서 '무수한 잔향', '세상에 가득찬 소리', '웅웅거리는 소리', '알 수 없는 공간감'. 이런 것들에 대한 물음표를 글로 심어두고, 음악으로 풀었다. 모두가 글과 음악을 보진 않겠지만, 적어도 둘을 취한 사람들은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뭘 어떻게 표현한 건가 음악이 궁금하면 4:00 부터 보면 됨.




2. 글자를 적게 넣고 여백을 많이 넣는다
3. 가사를 넣되 애초에 알아들을 필요가 없게 만든다


이건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여백은 지면에 넣을 수도 있고, 여백이 넉넉한 서체를 쓸 수도 있겠지. 정작 이래 놓고선 내가 만든 곡 6개 중에 1개 빼고는 다 원고의 길이가 짧진 않다. 여기서 짧다의 기준은 5줄이다. 약 한 4문장에서 5문장 정도로. 그러니까 문장이 적어서 여백을 주는 건 지금 상황에서는 어렵고, 문장을 나누거나 문단을 나누거나 서체 양식을 잘 지정해서 흐름을 조절하려고 한다.


가사를 넣되 알아들을 필요가 없게 만드는 건, 내가 원래 좀 보컬을 악기처럼 쓰는 곡들을 좋아해서 가능했다. 사람의 취향에 따라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래도 뭐, 그런 게 다 내 색이지. 애초에 내가 만든 곡들은 대중적인가 대중적이지 않은가라는 기준이 무색하다. 내 세계관적인가 아닌가 가 더 중요하다.


4. 새로운 경험이 될 거라는 걸 미리 알리고 기꺼이 뛰어들게 한다


음악이 들어갔기 때문에 특별하진 않을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 이런 책이 세상에 없던 것도 아니다. 음악이 들어간 에세이도 봤고, 그중에는 프로듀서가 만든 것도 있다. 물론 그 수가 그렇게 많진 않지만. 그래서 더 생소하고 익숙하지 않아서 독자들은 호기심과 함께 피로감도 느낄 수 있다.


이런 특징은 어떻게 보면 양날의 검이기에, 이걸 음악 에세이라고 알리는 게 중요하다. '다르게 기대해줘. 다른 양식이고, 다른 리듬이고, 다른 구성이야. 평소에 읽던 책과 다른 기분으로 감상할 수 있을 거야. 음악이 들어갔다는 그 자체가 독특한 게 아니고, 글과 음악이 너에게 함께 어떻게 말을 거는지, 너가 어떻게 얘들과 마주하게 될지를 기대해줘.' 그렇게.


사실 그게 이 작업기를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다 보면 텀블벅에 올릴 때 해야 할 말들도 좀 더 뚜렷해지겠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사람들한테 알릴 수 있으니까. 미리 기대하게 할 수 있으니까. 책을 열자마자 인사를 건넬 굿즈에도 그 사실을 알릴 수 있는 형태로 작업하는 게 좋을 거 같다. 음악이 들어갔고, 그래서 당신은 또 다른 조화를 감상해 볼 수 있다고.




진리: 좋으면 읽고 좋으면 듣는다




사실 그렇다. 배경음악이든 배경음악이 아니든 느낌이 좋으면 취할 것이다. 그러나 취향은 제각각이라고 그놈의 '좋음'이란 정의하기가 참 까다롭다. 모든 사람들의 독서 패턴을 고려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무엇에 어떻게 꽂히는지는 심지어 자기 스스로도 모를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독자를 어느 정도는 고려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내가 가지고 있는 글과 음악과 콘셉트를 두고 충분한 조화를 일으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느낌은 조화의 디테일에서 결정되는 거 같다는 주관적인 생각도 있고.


그래서 이번 책은 유달리 독자를 별로 안 고려한 책이다. 내가 위에 독자를 언급한 건, 이미 내가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다 해놓고 그걸 최대한 보여주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취하는 게 좋을까 고민해서 쓰는 내용일 뿐. 저질러 버릴 것이다. 나는 저질러 버릴 거야. 그런 마음으로 하고 있다, 사실은.


그럼 다음 주에 또 스포와 약간의 팁을 흩뿌리도록 하겠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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