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영 May 16. 2017

수프볼같이 큰 커피잔에 따뜻한 라떼 한잔

시카고 첫번째_퇴사했어! 내가 퇴사를 해냈어!

cafe intelligentsia at chicago / photo by rosy


수프볼같이 큰 커피잔에 따뜻한 라떼 한잔을 기울이며(?) 다시 펜, 아니 블루투스 키보드를 잡았다.



여기는 시카고다.

회사에 척! 하고 사표를 내고, 당연하게 붙잡혔지만 단호하게 잡혀주지 않고, 마지막 근무날 -물론 풀라면야 풀 수 있는 썰들도 매일같이 만들어냈지만- 아름답게 퇴사하는 모든 직장인의 로망을 내가 해냈다! 6개월 단기 인턴 시절에는 절대 느끼지 못했던 그 기분을 지난주 수요일 오후 3시, 회사 건물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보며 처음 느꼈다. "퇴사했어! 나 퇴사를 해냈어!"


맞다. 지난주 수요일이다. 아직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 나는 지금 미국 일리노이주의 도시, 시카고에 있다. 수요일 퇴사 이후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도 역시, 2013년 유럽 일주여행을 위해 처음 장만 이후 아직도 튼튼한 21인치 아메리칸투어리스터 파랭이캐리어와 함께하는 중이다. 애칭은 따로 없지만, 항상 든든하게 내 짐들을 챙겨주는 고마운 캐리어다. 첫 번째 유럽여행을 비롯해 2번의 제주도, 3박 5일간의 마카오, 혼자 처음 떠난 오키나와, 동생들과 함께 떠난 영국&파리 그리고 오사카, 최근에는 올 초 도쿄여행까지 줄곧 함께해왔기 때문. 이 캐리어는 수화물 픽업 컨베이어벨트에서 그 진가가 드러난다. Black color 일색의 화물 캐리어에서 돋보이는 파란색 컬러! 네임택이 따로 필요없는 완소템이라고 할 수 있다.


시차때문에 목요일 오후 8시 20분에 비행기를 탔지만, 같은 날 오후 7시 20분에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 도착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이런 느낌일까. 나는 이륙할때와 착륙할 때의 bgm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날 인천에서 출발할 때는 '어반자카파-그냥 조금', 시카고에 도착할 때는 '뉴이스트-love paint'였다. (랜덤으로 돌리기 때문에 어떤 노래가 나오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일종의 오늘의 운세같은 느낌으로 즐기는 편) 두 노래 모두 나에게 의미있는 노래이고, 그 조합마저 설렜기 때문에 오늘은 이 이야기를 풀어볼까


andy's jazz bar at chicago / photo by rosy


그냥 조금, Love Paint

어반자카파의 '그냥 조금'은 드라마덕후인 내가 정말 좋아하는 '나인'의 ost이자, 음알못인 내가 아는 몇 안되는, 그리고 직접 라이브로 들어본 적이 있는 인디그룹 '어반자카파'의 노래다. 이 노래는 첫 해외 여행지였던 유럽에서 돌아오는 비행기가 인천국제공항에 착륙하려는 그 때, 랜덤으로 돌아가던 플레이리스트가 우연히 틀어주면서 내게 특별한 의미가 됐다. 취준4학년을 앞두고 여행을 다녀왔던 내게 큰 위로와 감동을 줬고, 많은 것들에 지쳐있던 나에게 큰 힐링이 되어주었던 유럽 곳곳의 감성들이 한꺼번에 물밀듯이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한 달 간의 여행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이여서 그랬나, 더 슬프면서도 위로가 됐던 그런 노래. 이 노래를 퇴사 다음날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다시 듣게 될 줄이야. 처음 들은지 약 4년이 지났지만 부르는 그들의 감성도, 듣는 사람의 감성도 그대로였다. 누군지 모를 그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진짜 핸드폰 안에서 내 일상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누군가가 사나보다.


뉴이스트의 'Love Paint'는 사실 출국하는 날 공항에 가면서 친구 두 명(하이듀오 싸라해!)이 출근길에 들었다며 추천해줘 다운받은 노래이다. 노래는 그냥 널 사랑한다는 내용이다. 나는 노래를 들을 때 가사보다는 멜로디에 집중하는 편인데, 신나는 노래를 좋아한다면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추천한다. 현재 방송되고 있는 프로듀스101 시즌2에서 뉴이스트 멤버들이 연습생으로 출연중인 것도 참고 바란다. (참고만 해줘라. 나는 재환이 메인보컬길만 걷게해주고 싶다) 이 노래는 시카고 착륙 bgm인데, 지금 막 퇴사한 회사의 동기들이 여행길을 앞두고 추천해준 노래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아본다. 하이듀오는 동기 중 막내인 하리하나씨와, 나와 동갑내기인 그린프로그씨를 일컽는다. 이번 여행은 지난 회사 생활에서 놓친 나를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나를 그려나갈지 고민하는 여행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노래처럼 사랑도 함께 그려볼 수 있는 여행이 된다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


Architecture tour at chicago / photo by rosy


내일이면 나는 시카고를 떠난다.

시카고에서의 여정은, 퇴사 직후 숨 돌릴 새 떠나온 나를 쉬게 하면서 오랜만에 친한 친구를 만나는 여정이였다. 즉, 본격적인 여행은 이제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낯선 환경에서 내 집마냥 꿀잠을 자고, 아직 한국인 것 마냥 동네친구를 만나는 것은 4년 여행 인생에서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장르였다. 내가 항상 추구하는 주제인 '여행의 일상 에세이'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 도시에서 혼자만의 여행을 시작할 수 있어 기쁘다. 언젠가 다시 볼 날 이 있기를, 아듀 시카고!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그날, 에든버러에서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