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 다시 멕시코 #1. on my way
“나 올해 생일 파티 크게 할 거야. 얼마나 많이 오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여행하며 만난 친구들을 다 초대해보려고. 알지, 당연히 너도 초대된 거? 너를 다시 멕시코에서 만난다면 정말 amazing 할 거야! 8월 말에서 9월 초, 날짜 미리 저장해둬. 께레따로(Querétaro)에서 생일 파티를 한 뒤, 버스를 타고 함께 와하카(Oaxaca State)에 있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해변으로 로드 트립을 갈 거거든!”
멕시코에 사는 J로부터 연락을 받은 건 지난 3월 초였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 가장 많은 나라(100+개국)를 여행한 사람. 고래를 좋아해서 철마다 고래를 보러 수영하러 가고, 연락할 때마다 (대부분) 다른 장소에 있는 사람. 모국어인 스페인어를 포함해 영어, 불어, 포르투갈어로 능숙하게 소통이 가능한 사람. 어쩌면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이미 사는 사람. 한다면 하는 사람.
2월부터 시작된 슬럼프가 비교적 크고 작은 업다운과 함께 장기간 이어져 4월까지 이어졌다. 미소도 의욕도 잃고, 눈물과 식욕만 많았던 그리 달콤하지만은 않았던 시간. 그래서 더 그랬을까? J로부터의 초대는 빛을 잃어버린 내 눈동자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멕시코에 있는 친구들(Mexicans)이 멕시코에 언제 다시 올 거냐고 물어볼 때마다 “가야지, 나도 너무 가고 싶어. 근데…”라고 얼렁뚱땅 넘겨버리기 일쑤였다.
어쩌면 그때 내 상황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훌쩍 떠나기가 무서웠는지도 모른다.
친구의 생일 파티에 초대되었는데!
지난번에 멕시코 있을 때 너무 가보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던 와하카(Oaxaca)로 간다잖아?
그것도 잘 알려지지 않은 해변에서 비치 파티를 한다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심장이 간질거리도록 기분 좋게 맛있는 타코 맛이 그리웠다.
나를 멈출 이유는 하나도 찾을 수 없었고, 그것이 내 심장의 방아쇠를 당겨 일찍이 4월 8일에 멕시코행 티켓을 예약했다.
8월 22일, 인천 ICN → 멕시코시티 MEX
편도로 티켓팅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한국에서 벌여놓은 프로젝트들도 있고, 내가 하기로 한 것들 무책임하게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기에 한 달 반 정도의 아쉬운 일정에 기꺼이 타협했다.
그리웠던 멕시코, 신나게 흠뻑 즐기고 와야지! 그 당시 내 마음이었다.
티켓팅을 하고 난 이후 멕시코에 있는 친구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Me voy a México en este agosto! 나 이번 8월에 멕시코 간다! “
그랬더니 다들 하나같이 하는 말,
“Mi casa es tu casa. 우리 집이 곧 너의 집이야" (읔, 한국어로 바꾸니 왜 이렇게 오글거리는지 모르겠다. 네 집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머무르라는 정도의 뉘앙스.)
‘고맙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마음보다도 더 많이 고마운 친구들이다. 지구 반대편에도 내가 집이라고 부르며 마음을 붙일 수 있는 곳을 흔쾌에 내어주는 나의 친구들. 여행하면서 느낀 것은 세상엔 정말 좋은 사람들이 많고, 나는 그 좋은 사람들과 아주 많이 연결되는 느낌이다. 어딜 가든지 예외 없이 그랬다. 이런 경험 때문에 지금도 내가 어디에 있든 내가 할 수 있고 도울 수 있는 것들이 있으면 계산기 두드리기보다는 여력이 되는 만큼 돕고 베풀려 하는 것 같다.
내가 받은 것들이 너무 많고 감사해서.
여행하며 만난 친구들이 세계 곳곳에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 여행지를 선택할 때 특별히 내가 정말 가고 싶은 나라라든지 친구와 함께하는 여행이 아닌 (혼자 여행하는) 경우 보통 친구들을 만나러 떠났다. 대만 타이중에 있는 R, 독일 쾰른에 있는 D와 포츠담에 있는 S,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의 M, 남아공 이스트본에 사는 C 등등.
그중 몇몇은 반대로 내가 한국에 있을 때 놀러 오기도 했다. 다시 만나고 싶지만 아직 만나지 못한 친구들이 많다.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벗어나 이국적인 풍경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멋진 순간들은 카메라에 담고 기록하는 것은 너무나 멋진 일이다. 하지만 나는 사람을 만나고, 문화를 이해하고, 그들의 생활방식에 기꺼이 젖어드는 순간을 더 선호한다.
그래서 이번에 멕시코에 가면 그리웠던 친구들을 보러 가려고. 생일 파티를 여는 J가 있는 께레따로는 물론, 로드트립으로 가는 와하카 지역을 제외하고는 멕시코 시티(CDMX - Ciudid de México), 몬테레이(Monterrey), 팅귄딩(Tingüindín)에 가려한다.
사실은 따듯한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햇볕을 즐기다 낮잠을 자고, 책을 읽다 조금 더워지면 다시 바다에 몸을 담그고 싶은 마음이 크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멕시코에 간다고 했을 때 타코 다음으로 든 생각이기도 했고. 하고 싶은 게 워낙 많다 보니 ‘뭐하지?’보다는 ‘이번에 뭘 안 해야 하지?’에 대해 고민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시간은 제한적이고 모든 것을 한 번에 다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나에게 더 중요하고,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은 아쉬움이 더 많이 드는 것을 선택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나는 카리브해의 유혹을 물리치고 친구들과의 재회를 선택했다.
가방은 보통 여행 가는 전날 새벽에 밤을 새워가며 싼다. 미리미리 준비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 마지막 순간에 필요한 것인데 없다면 현지에서 조달하는 편이다. 이미 작정하고 현지에서 구매해야지 하는 것들도 있다. 예를 들면 샴푸와 컨디셔너 같은 것들. 지난번 여행에서 쓰고 남은 US달러, 유로, 멕시칸 페소가 어딘가에 있었던 것 같은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심지어 찾아봐야지 생각만 하고 체크리스트에 기록해두지 못해서 깜빡했다. 글을 쓰는 지금 갑자기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아차, 이번에 비상금으로 현금(US달러)을 한 푼도 안 챙겼다. 공항에 도착해서 ATM으로 출금하지 뭐. 아 맞다, 전에 쓰던 SIM 카드도…
(문득 불안해서 여권 제대로 챙겼는지 바로 가방 속을 확인했다. 휴, 여권은 있네! 그거면 됐어)
정말 오랜만에 배낭을 등에 짊어진다. 지난번 내 아프리카와 멕시코+중남미 여행을 함께 했던 45L 배낭. 미리 꺼내 볼걸. 어제 짐을 싸려고 가방을 꺼냈는데 상당히 때가 많이 묻어있어서 급한 대로 물티슈로 쓱쓱 닦아내 본다.
가져갈 것들을 침대 위에 널어놓으니 짐이 많아 보였는데, 막상 돌돌 말아 가방에 넣고 보니 친구들에게 줄 선물까지 포함했는데도 45L 배낭이 넉넉했다. 물론 기'내에 들고 탈 노트북, 압박스타킹, 수분 미스트, 책 한 권, 등은 따로 보부상(=저요)을 위한 가방에 담았지만.
여행 중 마주친 다른 여행자들의 가방엔 각자의 취향과 문화가 담긴 흥미로운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시는 프랑스인 친구 C의 모카포트, 그날의 기분을 노래로 표현하길 좋아하는 미국인 친구 W의 우쿨렐레, 마떼의 나라 아르헨티나에서 온 J의 그라운드 티컵(실제로 내가 만났던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에서 온 친구 중 열에 아홉은 이 티컵과 마테차를 가지고 다니면서 마신다!) 등등.
그리고 나 또한 짐을 쌀 때 꼭 챙겨가는 3가지가 있다.
비키니 - 나의 여행 계획(애초에 계획이라는 걸 잘 짜지 않기도 하지만)에 수영장과 해변이 포함되어있지 않더라도 무조건 챙기는 아이템. 현지에서 만나 친해진 친구의 풀파티에 초대된다거나, 갑자기 만난 호수에서 수영하게 된다거나, 계획에 없던 루트로 가던 중 해변을 만나 뛰어들고 싶다거나 하는 예상치 못한 순간들이 있다. 이건 못 참지, 물이 내 몸을 부를 땐 뛰어드는 것이 예의다.
원피스 - 친구들과 함께 휴양을 위해서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면, 특히나 배낭여행 중이라면 ‘쉬운 세탁, 빠른 건조’가 되는 소재의 옷이 매우 유용하다. 간밤에 조물조물 빨아서 휘익 널어두면 다음 날 아침에 말라 있을 수 있는. 물론 실용성에 최적화된 이런 아이들은 대부분 예쁘지 않다는 것이 단점이다. 그런데 종종 고급진 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먹고, 파티에 초대되기도 하고, 예쁘게 입고 싶은 날들이 있다. 그럴 때 꺼내 입을 수 있는 내가 좋아하는 옷 한 벌. 하지만 없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쇼핑할 수 있는 장소나 시간만 충분하다면 로컬에서 사서 입으면 그만이니까. 그렇게 산 옷이 몇 벌인지는 묻지 않기!
인센스 스틱 - 나는 향기를 매우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장소나 사람을 향으로 기억하기도 하고 은은하게 좋은 향기가 나는 사람에게 큰 매력을 느낀다(다만, 내 코가 들숨을 쉬기도 전에 콧속을 깊숙이 찌르는 독한 향수는 미간을 찌푸리게 하고 코끝에 자꾸만 손을 가져가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인센스는 낯선 장소와 조금 더 빨리 친해질 수 있는 장치가 되기도 하고, 조용하게 늦은 밤 혼자 눈을 감고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며 생각에 잠기게도 해주며, 하루 중 언제라도 아무 이유 없이 기분 좋아지게 만들어 준다.
창원중앙역에서 서울역으로 가는 KTX 안에서, 서울역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공항 철도에서, 비행기를 타기 전 탑승동에서 틈틈이 이 글을 쓰고 있다. 아직도 멕시코에 간다는 사실이 현실과 동떨어진 듯해서 아무런 감흥이 없다.
인천에서 17시 45분에 비행기를 타면 밴쿠버를 경유해 멕시코시티에 도착하는 시간은 여전히 8월 22일 22시 45분(한국 시각 23일 08시 45분). 친구가 공항에 마중 나오기로 했는데 알아보기 쉽게 주황색 마스크를 끼고 입국장에 들어서겠다고 했다. 그러니까 자기는 fake KF94를 끼고 오겠단다. 참고로 그 친구의 선물은 본인의 요청에 의한 real KF94 마스크.
공항을 빠져나오면 곧바로 타코부터 먹으러 갈 거다. 고수를 듬뿍 올리고 + 라임즙을 뿌린 웰컴 타코를 3개 정도 씹어 삼키고 나면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아, 나 지금 멕시코에 있구나!’하고 실감이 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