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12

승희에게, 몽골에서 보내는 마음

by 그웬


안녕 승희,



승희에게 편지를 쓰며 듣던 음악을 공유하고 싶어요. 이 음악을 들으며 편지를 읽어줄래요?

https://youtu.be/RyXZtk8mHsQ?si=o2iTITdWzH8PEGba



시작만을 생각하고 건넨 인사에 앞으로의 일까지 생각하는 승희가 참 좋아서 웃음이 났어요. 내가 생각했던 여정보다 어쩌면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깊이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사실 나는 참 많이 무너지는 사람인데, 그걸 들키는 것이 싫어서 오히려 숨기를 택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스스로 개척하고, 넘어져도 일어서고, 견뎌내야만 했던 자리에 있어와서 그런지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도 쉽사리 도움을 요청하지 못해요. 그게 어찌 보면 나를 강하고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기도 했겠지만, 나의 진짜 모습을 스스로 감추게 된 계기가 된 것 같기도 하고요.



무너지는 모습을 그대로 안전하고 또 편안하게 내보일 수 있는 사람이 다섯 손가락은 될까요?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리며 손가락을 접어보다 끝내 하나를 접지 못하고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승희가 염려한 툭-하고 무너져버린 시간이 와버린 것 같아요. 그것도 아주 폭삭 무너져버렸죠.



날것으로 다 드러내는 듯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아요. 어느 정도 괜찮은 힘듦만, 바닥을 찍고 반등하기 시작할 때에서야 밖으로 꺼내요. 진짜 힘들 땐 (으레 남자들이 그러하듯) 동굴로 들어가서 숨어버리는 사람이 나에요. 내밀어주는 손도 마다하고 그냥 고립을 선택해요. 이야기해봤자 달라지는 것도 없고, 해결이 되지도 않을뿐더러 괜시리 마음에 감정의 무게만 짊어지게 하는 것 같아서. 지독하게 외로우면서도 오히려 외로운 길을 선택하는 아이러니함을 마주한달까요? 요즘 그런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아요.



어쩌면 이토록 무너지는 이 마음을 털어놓고 싶어 승희에게 손을 내밀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겉으로는 우리의 삶과 고민을 기록해보고, 이 기록이 누군가에는 용기와 도전, 위로가 되면 좋겠다는 이타적인 이유를 내세웠지만 어쩌면 깊숙한 속마음은 그저 이 시간을 승희 곁에서 대화하며 버텨내고 싶어서, 손을 좀 잡아달라는 이기적인 말이 멋쩍어 애둘러 한 것 같아요.



승희가 들려준 이야기를 읽으며 나라는 사람은 참 무심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편지를 주고받지 않았으면 승희가 보여주는 삶 이면에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떤 시간들로 삶이 채워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을 테니. 나의 삶에 너무 바빠 승희의 안부를 더 자주 묻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함이 몰려와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우리가 천천히 서로의 안부를 묻고 생각을 나누는 이 시간이 너무 감사해요. 내가 아는 승희는 말하기보다 듣기를 더 많이 하는 사람이니, 이곳에서라도 승희가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더 많이 나누어주면 좋겠다, 내가 그걸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조심스레 해봐요.



지금 처한 환경에서 "하루하루 소비되는 느낌"이라는 표현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그 감정의 깊이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는 걸 솔직히 말하고 싶어요. 공감과 이해라는 단어를 쉬이 사용하지만 그 말의 무게를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요즘에서야 많이 해요. 때로는 우리의 감정을 딱 들어맞게 표현하는 말을 찾기 어렵잖아요? 그 감정의 무게를 정확히 짚어내기 힘들 때도 있고요. 그렇기에 지금 느끼는 나의 감정의 무게가 그러하듯 승희가 느끼는 감정의 무게 또한 존중하고 싶어요. 그 마음이 얼마나 힘들고 벅찰지 감히 나의 상황에서만 짐작해보며...



승희는 이미 단단한 사람이에요. 지금 처해있는 상황이 많이 어렵고 불안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 상황과 무관하게 자신의 내면 상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을 키우려 노력하고 있잖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겉으로 봐선 보석이 아니라 생각하고 지나칠 수도 있는 사소한 것을, 그리고 겉으로 보이는 너머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섬세한 안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만큼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궁금해요. 요즘 물류 센터에서 일하면서, 작지만 승희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던 순간이 있었나요? 무심코 지나칠 수 있지만 의미 있었던 순간이 있었다면 듣고 싶어요.



마음이 힘든 지금은 전처럼 쉽지 않지만, 저 또한 그런 상황 속에서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려고 해요. 어떤 상황에서도 그건 나의 시각과 나의 태도더라구요. 승희가 던진 질문은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켜요. 그냥 좀 쉽게 살도록 내버려두면 안 될까, 왜 굳이 이렇게 살아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들면서 이런 어려움을 겪는 우리의 삶에는 분명 이유와 목적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그래서 내면에만 가둬두지 않고 어떤 형태로든 서툴지만 그걸 꺼내서 흘려보내야겠다는 마음이 늘 존재하구요.



우르르쾅쾅 천둥번개와 함께 드디어 봄비가 내렸어요. 높은 건물이 없으니 하늘이 쩍 갈라지는 모습이 고스란히 보이더라구요. 소리만 크고 비는 많이 안 내린 것 같은데, 괜히 하늘이 허세부리는 것 같은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한동안 시간을 보냈어요. 그냥 무너지면 무너지는 대로 잠시 스스로를 내버려두자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이 무너짐이 그치면 그 틈을 다정하게 매워보자는 마음으로요.



쓰다 보니 벌써 자정이 넘었어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수다를 오늘은 이만 마무리할게요.




승희와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하길 참 잘했단 생각을 하며


몽골에서, 그웬이

25.05.13 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