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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웬 Dec 15. 2022

안녕 께레따로(Querétaro), 나 다시 왔어!

Vol.1 다시 멕시코 | #3. this is happiness

멕시코시티에서 버스를 3시간 정도 타고 밤 10시쯤 께레따로(Querétaro)에 도착했다. 버스터미널에서 손쉽게 택시를 탈 수도 우버를 부를 수도 있지만 기꺼이 터미널을 빠져나가 버스정류장으로 간 뒤 11페소(한화 약 750원)를 내고 버스를 탄다.


시간이 흘렀어도 찾아보지 않아도 이 도시를 내가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지 테스트해보고 싶은 일종의 고집이랄까.


버스 번호와 주요 목적지는 앞 유리창에, 승객들이 주의해야 할 사항(뒷문으로 내리시오)은 버스 내부에 페인트 마카로 슥슥 써져있다


버스 안에서 옆자리에 꼬마 손님이 앉았다.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엄마에게 “está China? 중국인이야?”라고 묻는다. 나는 웃으며 “no, soy Coreana. 아니, 나 한국인이야.” 하고 답한다.

그랬더니 꼬마는 눈이 쭉 찢어진 게 중국 사람 같다며 여전히 나를 빤히 바라본다. 똘망똘망 귀여운 친구다. 중국인이냐는 오해도 전혀 기분 나쁘지 않다. 우리도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을 만났을 때 멕시칸인지, 코스타리카 사람인지, 페루 사람이지, 콜롬비아 사람인지 처음엔 구분하기 어려우니까.


세상에, 하나도 안 변했다. 아니 곳곳의 상점들이 바뀌기도 했지만, 구글맵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길을 찾을 수 있을 만큼 익숙하다. 그래서 오히려 기분이 이상하다. 타지에 있다가 고향에 돌아온 느낌.


J의 반려견이자 이 집을 지키는 프리따(Frita),  2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나를 기억하고 알아보는 건 감동이었다. 정말로 집에 온 느낌.


께레따로에서는 J(생일파티의 주인공)가 운영하는 에어비앤비에서 지낸다. 내가 멕시코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곳. 오래된 2층 벽돌집을 개조한 멋진 곳. 작은 수영장도 만들고 하루 종일 있어도 지겹지 않은 테라스도 있는, 곳곳에 사랑스러운 핑크색(쨍한 핑크는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이런 burnt pink 같은 느낌은 좋다) 포인트가 있는 매력 있는 집. 전에 있을 때 보다 식물도 더 다채로워지고 많이 자랐다.


사실 멕시코시티에 있는 3일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었는데, 여기서 꿀잠 잤다. 새벽 2시쯤 잠들어서 아침 9시 반에 느지막이 일어났다. 이미 테라스에는 J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미국, 뉴질랜드, 네덜란드, 스위스, 칠레, 영국, 자메이카 등에서 모인 친구들이 10명 정도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떨고 있다.


눈을 비비며 일어나 테라스로 나온 내게 J는 “quieres un cafecito? 커피 마실래?” 하고 묻는다.


“sí, por favor. 응, 부탁해.”


그리웠다.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이 뷰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눈을 감는다. 혀끝에서 느껴지는 산미가 너무 좋다. 역시… J는 맛을 아는 친구다. 그가 추천하는 음식은 무조건 믿고 가는 편. 예전에 자주 가던 과일 야채 가게에 걸어가서 먹을 것을 좀 사고 베이커리에서 빵을 산 뒤 테라스에서 브런치를 먹으려고 집을 나선다.



길을 걷는 동안 너무 행복하다.


이곳을 걷고 있는 한 걸음 한 걸음이 감동적인 순간이다. 이 형형색색의 컬러와 다채로움이, 건물 옆에 딱 붙어 세월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무성하게 자란 식물들이 그리웠다. 눈이 지루할 틈이 없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전에 있던 가게들이 그대로 있는지, 새로 생긴 곳은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러다 예전에 자주 가던 과일 야채 가게에 도착했는데, 세상에. 여기 있어야 할 것이 없다! 추억의 장소 하나가 낯선 레스토랑으로 변해있는 걸 발견하는 순간이 슬펐다. 에휴, 코로나 기간 동안 많이 힘들었나 보다. 버티기 어려웠나 보다.


자주 가던 과일 야채 가게가 있던 코너 자리엔 이제 레스토랑이 자리 잡고 있다.


그곳을 잠시 바라보다 혹시라도 다른 곳에서 과일을 살 수 있을까 하고 골목을 여기저기 서성이던 나는 또 다른 과일과 야채를 파는 작은 슈퍼를 발견했다. 그곳에서 이틀 정도 먹을 과일을 산다.

아보카도, 투나(참치가 아니라 선인장 열매를 그렇게 부른다!), 멜론, 사과, 오이, 그리고 오이에 뿌려먹을 라임!



좌) 이렇게 다 사도 55페소(약 3,700원) | 우) 잘 있었어 빵들아?


내가 가장 사랑한 베이커리는 그 자리 그대로다. 안도의 한숨에 이어 고소한 버터향 가득한 빵 굽는 냄새를 힘껏 들이마시며 미소 짓는다. 눈으로 빠르게 빵을 스캔한 뒤 두 개(애플 시나몬 페스트리와 귤 페스트리)를 골라 룰루랄라 집으로 돌아와 과일을 잘라 접시에 담고 커피를 한잔 더 내린 뒤 테라스로 올라왔다. 예쁘게 차린 브런치를 먹으며 노트북을 켜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진짜… 다른 그 어떤 단어도 필요하지 않은 순간이다. 행복하다. pure happiness. 커피를 다 마신 뒤 화이트 와인을 잔에 따라서 다시 테라스로 왔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앉아서 멍하니 바라만 봐도 너무 좋다.


바람은 시원하고 햇빛은 따사로운, 딱 내가 사랑하는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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