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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Dec 26. 2023

어느 신혼 부부의 평범한 크리스마스

지난 7년간 함께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 가기도 하고, 외곽의 조용한 카페에 들러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영화를 보거나, 맥주를 마시며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취하기도 했다. 


그런데 결혼 이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엔 하필 남편이 출근을 해야만 했다. 스케줄 근무를 하는 직업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쉬웠지만, 별 수 없었다. 대신 서울에서 신혼집이 있는 천안까지 내려온 여동생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둘 다 좋아하는 떡볶이와 튀김 종류들을 잔뜩 주문해 배를 채우고, 디저트 카페에 가서 각종 타르트를 섭렵하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냈다. 


남편은 저녁 6시가 되어서야 간신히 퇴근했다. 연말이라 업무가 몰리는 상황. 야근할 가능성이 농후했지만, 남편은 자신을 기다릴 나를 떠올리며 겨우겨우 퇴근 시간을 사수했다고 했다. 바쁜 와중에 기다릴 나를 생각해 재빨리 퇴근한 남편 그리고 여동생과 함께 영화 '노량'을 보러 갔다. 


크리스마스라 그런지, 영화관은 꽤나 붐볐다. 많은 인파를 뚫고 팝콘을 구매하고, 잠시 시간이 남아 바로 옆에 있는 오락실로 향했다. 남편이 고른 게임은 보글보글. 얼마나 능수능란한지 500원을 넣고 장장 30분 가까이 게임을 즐겼다. 주어지는 퀘스트마다 척척 뚫는 남편이 어찌나 즐거워 보이던지. 나이를 잊고 아이처럼 게임을 즐기는 남편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허나, 영화 시간이 임박해 오는 상황. 결국 남편을 재촉하여 빠르게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노량'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명작이었다. '명량'과 '한산'을 2~3번씩 본 나는 '노량'이 개봉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늘 기대하면 실망이 큰 법이었는데, 이번 작품은 달랐다. 김윤석 배우는 이순신 장군 그 자체였다. 눈빛부터, 행동 하나하나까지. 그의 연기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화에 몰입했다. 많은 사람을 뚫고 애써 구입한 카라멜 팝콘을 먹는 것도 잊은 채로, 난 김윤석 배우가 연기한 이순신 장군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었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 남편과 그리고 동생과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뭔가 거창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싶었지만, 다음날 출근도 해야 하고 피로감이 상당한 터라 점심때 먹고 남은 떡볶이를 데우고 사리곰탕면을 끓였다. 후추까지 잔뜩 뿌려 완성한 사리곰탕면은 꽤나 맛있었다. 남편도, 동생도, 나도 유명 설렁탕집보다 이게 더 맛있다며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다. 순식간에 사리곰탕면 3개가 사라졌다. 우리의 위장 속으로. 


부른 배를 쥐어잡고, 남편에게 기대 TV를 봤다. 이런 시간이 참 좋다. 남편에게 기대어 나른한 몸으로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이 시간. 다음날의 출근 걱정도 잊고 그저 현재를 즐기는 순간. 이 순간 때문에 결혼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좋다. 남편의 어깨에 살포시 고개를 묻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잠시 무슨 꿈을 꾼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나질 않는다. 슬슬 한기가 밀려올 무렵, 남편이 나를 깨웠다. 따뜻한 안방에 들어가서 자라고. 그의 다정한 말을 들으며 안방 침대에 올라가 베개에 뺨을 묻었다. 그렇게 특별하진 않았지만, 다정함과 따뜻함이 감돌았던 결혼 후 첫 크리스마스가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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