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기에 접어들 무렵, 본격적인 육아 용품 쇼핑에 나섰다. 우선 남편과 함께 코엑스에서 열리는 대규모 박람회를 방문했다. 뉴스에서는 연일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도하는데, 코엑스에서 내가 목격한 상황은 완전히 반대였다. 발 디딜틈도 없었다. 입구부터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원하는 아이템을 살펴보려면 많은 인파를 뚫고 해당 부스를 찾아가야만 했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잠시 서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그날 그 현장만 단편적으로 본다면 대한민국은 날로 심해지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해야 할 국가가 아닌, 차고 넘치는 아이들을 어떻게 지원하고 케어해야 할 지 고심해야 할 나라였다. 아무튼,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질 정도로 코엑스 박람회 현장은 수많은 예비 부모, 그리고 이제 두돌 쯤 되어 보이는 자녀들과 함께 온 부모들로 가득 찼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마치 사람들에 떠밀려 원치 않는 곳에 갈 것만 같은 복잡한 실내. 남편과 나는 서로의 손을 단단히 붙잡으며, 배 속의 아이를 위해 필요한 물건들을 차곡차곡 가방에 담아갔다. 엄마들 사이에서 국민 손수건으로 통하는 밤부베베의 손수건부터 모윰과 블랑의 아기세제 마더케이의 신생아 손톱깎이 세트까지. 이 외에도 담요부터 방수매트 등 많은 제품들을 품에 안았다.
박람회 방문 이후, 나는 본격적으로 유튜브와 인스타그램를 활용해 국민템 조사에 나섰다. 아기 침대는 어떤 제품이 좋은지, 하이체어는 어느 브랜드의 구매율이 가장 높은지, 기저귀 갈이대는 어떤 것이 제일 유명한지, 터미타임을 도와줄 장난감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샅샅이 뒤져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텅 비어 있어 누군가 말을 하면 울리기까지 했던 아이의 빈방은 온갖 국민템들로 가득차게 됐다. 심지어 신생아 시절에는 사용할 수 없는 국민템까지 일찍이 마련해 보관해뒀다.
남편은 점점 쌓여가는 국민템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신생아를 키우는 데 저렇게 많은 용품들이 필요하냐며 때로는 고개를 휘젓기도 했다. 하지만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목소리를 한껏 높여가며 ‘국민템 타령’을 하는 내게 끝끝내 항복을 선언하며 나의 든든한 언박싱 메이트가 되어줬다.
유아차, 카시트, 범보의자, 하이체어 등 굵직한 제품들이 들어오자 아이의 방은 빈 공간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포화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38주하고도 5일을 내내 품었던 아이가 세상에 나왔다.
신생아 육아는 전쟁 그 자체였다. 1시간 반마다 수유를 하고, 기저귀를 갈아줘야 했고, 허리 한 번 펼새 없이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해야 했다. 젖병 소독도 쉴 틈 없이 했고, 칭얼거리고 우는 탓에 화장실도 편히 갈 수 없었다. 이 과정에서 내가 미리 준비해뒀던 국민템의 도움을 많이 받긴 했다.
보르르 분유 포트가 없었더라면 아마 나는 분유 물의 온도를 번번이 맞추느라 주방에서 씨름을 했어야 할 것이다. 소베맘의 기저귀 갈이대를 사지 않았더라면 아이의 기저귀를 갈 때마다 끔찍한 허리 통증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다. 유팡의 젖병 소독기를 구비하지 않았더라면 젖병 소독 지옥에 빠졌을 것이고, 꿈비의 젖병 쉐이커가 없었더라면 잘 녹지 않는 분유를 녹이느라 지독한 손목 통증에 고통받았을 것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 언급한 제품들 외에는 사실 괜히 샀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많다. 수유 시기에 가장 많이 활용된다고 알려지며 국민템이자 필수템으로 알려진 베이비 브레짜는 대치동까지 가서 당근으로 양품을 구입했음에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세척이 번거로웠기 때문이다. 내가 지독한 기계치라 그런진 몰라도 세팅법도 꽤 어려웠다. 그리고 콤비의 물티슈 워머도 한 번 쓰곤 그대로 다시 넣어뒀다. 차가운 물티슈를 아이에게 바로 사용하면 놀란다고 해서 어떻게든 써보려고 했는데 막상 기저귀 갈 때 사용하려니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닥터 브라운의 배앓이 젖병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배앓이가 심해 사용하려고 했는데 , 유리라 무겁기도 하고 부품이 많아 세척하는 것도 까다로웠다. 결정적으로 아이가 계속 거부했고. (이건 물론 아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여튼 국민템이라는 타이틀을 믿고 무분별하게 구매했던 아이템들을 쭉 늘어놓고 보니 어찌나 후회가 되는지. 사실 조금 더 천천히 샀어도 되는 것들인데. 괜히 불필요한 돈을 섣불리 지출한 것 같아 마음이 쓰렸다. 이 글을 보면 분명 우리 남편은 ‘거 봐. 내 말이 맞았지? 국민템 그런거 다 꼭 필요한 거 아니잖아.’라고 말할 것이다. 남편의 말에 ‘이미 샀는데 뭐 어떡해?’라고 응수할 테지만, 부디 지금 아이를 품은, 그리고 아이를 낳을 계획이 있는 부모들이 있다면 국민템의 유혹에 속절없이 빠져 불필요한 지출에 허덕이지 않길 바란다.
꼭 필요한 제품들만 사놓을 것.
국민템의 유혹에 빠져 쓸데 없는 제품까지 구비하지 않을 것.
아내, 남편과 잘 상의해서 힘을 줄 아이템을 결정할 것.
모든 아이템에 많은 비용을 들일 수 없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