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이제 50일이 다 되어가는 우리 아이의 수면 패턴도 그중 하나다. 밤낮이 완전히 바뀌고야 말았다. 한낮에도 잠에 빠져 도통 일어날 생각을 않는 아이. 아무리 흔들어도, 큰 소리로 이름을 수차례 불러도 미동도 하지 않는다. 수면 교육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하던데…완전 실패하고 말았다. 아이의 페이스에 휘말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답답하다.
그래도 장점은 있다.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아이에게 구속되지 않고 온전히 자유로운 내가 되어 나를 위한 일들을 할 수 있다. 만약 아이가 잠들지 않았더라면 스스로를 가꾸고 돌보는 일은 아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 밤낮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아이에게 고맙다고 해야하는 걸까…아니다. 고맙다고 하면 내가 너무 나쁘고 이기적인 엄마일까….
아무튼 아이가 잠들고 나면 난 곧바로 필사를 시작한다. 예전엔 읽던 책에서 좋은 문장을 뽑아내서 필사를 했는데 요즘은 아예 필사책을 활용한다. 유명한 책들에 실린 좋은 문장이 엄선되어 있어 보기에도 좋고 또 바로 옆 여백에 필사를 할 수 있어 편리하기까지 한다. 만년필로 온 정신을 집중해 필사를 끝마치면, 오랜 시간 함께 한 메이트에게 필사본을 보내 인증을 마친다.
이 작업을 마치면 아이에게로 다가가 기저귀를 확인한다. 기저귀 겉면의 라인이 노란색에서 푸른색으로 바뀌어 있으면 재빠른 손놀림으로 갈아준다. 단, 이 땐 아이가 깊은 잠에서 깨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뽀송뽀송한 기저귀로 교체해준 후엔 감정 일기를 쓴다. 하루의 내 감정을 돌아보는 유일한 시간.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다. 기분이 어떤지, 마음이 어떠한지,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있는지, 괴로운 것은 없는지. 육아에 지친 나를 돌보는 시간. 한 치의 거짓도 과장도 없이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그걸 글로 적어내리는 시간. 텅 비었던 페이지는 나의 감정과 생각들로 가득 메워진다. 이 과정을 통해 온갖 상념을 머리, 그리고 가슴속에서 빼내고 평온함을 찾는다. 아마 이 시간이 없었더라면 육아 스트레스로 인해 금세 폭발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혹은 깊은 우울함에 빠져들어 가라앉았거나….
마음 돌보기 시간이 끝나면 블로그와 브런치에 올릴 글을 쓴다. 거창한 글을 쓰고 싶지만, 그럴 여력은 없다. 대신 육아나 결혼에 대한 내 생각과 지금의 상황을 가감없이 담는다. 다른 사람의 시선은 고려하지 않고 오직 내 상황에만 집중해서 글을 쓰니, 이 순간이 더없이 즐겁게 느껴진다. 때로는 짜릿하기도 하고.
오늘은 참 감사하게도 밤 10시가 다 되어 가는 상황에도 아이가 이불 위에 누워 단잠에 빠져있다. 짧고 통통한 두 팔을 올려 ‘만세’ 자세로 자고 있는 아이. 수시로 꿈틀거리며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리는 아이. 그런 아이를 힐끔힐끔 바라보며 이 글을 쓴다. 부디 오늘은 우리 아이가 흘러가는 밤에도 깨지 않고 푹 자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