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만난 8년 동안, 우린 단 한 번도 같은 지역에 붙어있었던 적이 없었다. 직무 특성상, 1년에 최소 한 번 이상 발령이 나는 남편 덕택에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곳이 없는 것 같다. 연애를 고민하던 시기엔 그는 부산에 나는 경주에 있었고, 본격적으로 사랑이 시작됐을 땐 그는 거제도에 난 세종시에 살았었다. 그리고 결혼을 결심하고 양가에 허락을 구하던 시점엔 내가 서울에 그는 포항에서 일했었다.
워낙 멀리 떨어져 있던 터라, 결혼을 하게 되면 상대가 거주하는 곳으로 한 사람이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온전히 경제적인 부분만 놓고 봤을 때, 남편이 나보다 훨씬 더 연봉이 높았으니 내가 이동하는 것이 훨씬 나았다. 그렇게 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남편이 있는 포항 혹은 인근에 위치한 내 고향, 경주로 이동하기로 결심했다.
다니던 회사에도 미리 상황을 고지하고 차근차근 준비를 해나가던 중, 놀라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바로 남편의 발령 소식. 세상에나, 남편이 포항에서 천안으로 발령이 난다는 것이 아닌가.
경상도 권역에 한정되어 있던 발령지가 갑자기 충청도로 이동하니 남편은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아니 사실 울고 싶었던 것 같다. 갑자기 난데없이 천안이라니, 아무런 연고도 없는 천안이라니! 그런데 난 쾌재를 불렀다. 천안은 조금만 내가 고생한다면 서울에서 출퇴근까지 가능한 지역이니까! SRT나 KTX를 이용하면 40분 안팎으로 서울에 도착할 수 있으니, 충분히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천안 발령 소식을 전하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남편을 향해 난 "잘됐다. 진짜 잘됐어. 축하해"라고 소리질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내가 너무 날뛰면서 좋아하니 남편은 발령 소식보다 내 반응이 더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이 여자 뭐지...?' 이런 마음 아니었겠는가.
그렇게 우린 정확하게 상견례 날, 남편이 포항에서 천안으로 짐을 옮기면서 천안 라이프를 시작하게 됐다. 사실 결혼 준비 기간 동안엔 서울에 동생과 함께 살던 원룸이 있었던 터라 거의 서울에서 지냈었다. 그리곤 2023년 11월 5일, 대망의 결혼식을 치르고 나서 신혼여행 일정까지 마친 후에 천안에 있는 신혼집에 본격적으로 함께 살게 됐다.
그렇게 두 달이나 흘렀을까. 우리 부부에게 아이가 생겼다. 계획한 임신이 아니라 놀랐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축복이 찾아왔다고 생각하고 남편과 함께 손을 맞잡고 앞으로 더 잘 살아보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난관은 출퇴근이었다. 아이를 품은 몸으로 천안에서 서울까지 매일 출퇴근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 판단했고, 출산 휴가에 들어가기 전까진 주말부부로 지내기로 합의했다.
새신랑임에도 신혼집에서 혼자 생활해야 했던 우리 남편. 그땐 힘들어했던 것 같은데, 지금 돌이켜보면 사실 속으로 엄청 좋아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좁은 원룸에서 살다가 넓은 아파트에서 그것도 '혼자' 사니까 얼마나 행복했을까.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고, 가전도 새로 다 해 넣었으니 삶의 질도 훨씬 더 높아졌을 테고. 내겐 힘들다, 보고 싶다 말했었지만 사실 무척 편하고 행복했을 거다.
아무튼 2024년 8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난 출산휴가를 썼고 서울에 있던 짐들을 모두 정리해서 천안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2024년 9월 말, 예정보다 좀 더 일찍 아이가 태어났고 1년간의 육아휴직을 마친 후 2025년 8월 19일 자로 서울에 있는 나의 회사로 복직하게 됐다.
복직까진 고민이 많았다.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가 있는 상황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천안에서 서울까지, 다시 서울에서 천안까지 장거리 출퇴근을 할 수 있을까...?하고. 하지만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아니, 느낄 것이다. 맞벌이를 하지 않는 이상, 아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아니 내가 해주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줄 수 없다는 것을.
사람에 따라 느끼고 판단하는 것이 다르겠지만, 나는 능력 없는 엄마로 남고 싶지 않았다. 또한 무능한 아내가 되고 싶지 않았다. 사회에서 온전히 내 몫을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스스로에게도 당당할 수 있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집에서만 있는 삶이 너무 갑갑하고 힘들었다. 고립되고, 외롭기도 했다. 탈출이 필요했다.
그렇게...나의 천안에서 서울 출근, 서울에서 천안으로 퇴근하는 삶이 시작됐다.
천안에서 서울 장거리 출퇴근을 시작한 지, 2달이 흐른 지금...나는 잘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