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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 Jeong Jan 02. 2019

7편:: 특별한 날을 만들어줘서 고마워

아기와 발리한달살기

캐시와 함께하는 마지막 날.




10시경 도착한 캐시와 함께 나갈 채비를 했다.
오늘은 레기안 비치에 앨리스 님과 그녀의 아기 키엘을 보러 가기로 한 날이었기에 부지런히 길을 나선다. 
(* 앨리스 님은 이년 전 발리에서 서핑 캠프를 했을 때 만났으며 현재 레기안 비치에서 이라완 남편과 발루세 서프를 운영하고 있다)

택시를 타고 20분 남짓 걸리는 레기안에 도착했다. 거리상으로는 더 가깝지만 스미냑에서 레기안으로 가는 방향은 언제나 새로운 길을 찾아 헤매야 한다. 조금 덜 막히는 길로, 조금 덜 사람들이 찾는 골목으로.


앨리스 님과 이야기하는 그 사이를 못 참고 찡- 하고 울어버린 아기


바다에서 만난 앨리스 님은 여전히 구릿빛 피부의 건강한 모습 그대로였다. 아기 키엘은 아쉽게도 오늘 함께하지 못해 다음 번 만남을 기약하기로 했다. 십 분 남짓 바다에 서 있었는데도 뜨거운 태양빛에 익어버릴 것 같았다. 아이는 캐시와 멀찍이 떨어져 바다 구경도 하고, 들개 구경도 하며 돌아다녔지만 웬일인지 오늘은 엄마와 조금만 떨어져도 징징거리며 울어댄다. 낮잠 잘 시간이 다가와서인가?



서핑을 배우는 캠퍼들을 보며 여러 마음이 교차한다. 아기가 없었더라면 나도 저기에서 함께 서핑을 하고 있었을까? 아니, 아기가 없었다면 발리가 아닌 또 다른 나라에서 머물고 있으려나.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회사에 처박혀 열심히 외거노비 생활을 하고 있었을까. 
만감이 교차했던 바닷가 나들이였다. 









마지막 날이 되도록 제대로 된 밥 한 끼 같이 못 먹은 게 못내 마음에 걸려 비치워크로 함께 향했다.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었는데 너무 더워 실내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난 왜 하필이면 이 땡볕의, 한낮에 이동을 해서 말이야. 머리가 나쁘니 내 몸에 아기, 캐시까지 고생이다. 어이구. 

    
비치워크는 여전히 화려했고, 최신식의 유행으로 가득했다.
캐시는 나에게 "여기는 eye shopping 하러 오는 곳이지, 누가 발리까지 와서 여기서 쇼핑을 할까?"라고 말했다.
차마 나는 '그게 바로 나야..'라고 말할 수 없었다.

2년 전 여기서 무려 아무 패턴 없는 슬리브리스를 산 나란 사람! 몇 발자국 걸어 나가 꾸다로 가면 몇 배는 더 저렴하게 샀을 법한, 그런 특색 없는 티셔츠를 h&m에서 산 멍청 비용을 지불한 사람 되시겠다.

캐시는 이 건물 3층에 전망이 좋은 푸드코트가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난 2년 전에 여기 푸드코트도 와 봤는데, 전망 좋은 공간이 있다는 건 또 왜 몰랐을까? 알면 알수록 지난 여행의 멍청함에 스스로 혀를 내둘러 버렸다.



전망 좋다던 그 3층 푸드코트와, 영혼 없는 쇼핑몰 푸드코트 음식.

캐시는 전적으로 나에게 모든 것을 맞춰주었다. 먹고 싶은 음식마저도, 본인의 의사는 없는 듯 내가 먹고 싶은 것으로만 두 메뉴로 고르게 했다.
본인은 무엇을 먹든 상관없다며. 그렇게 고른 두 메뉴는 바비굴링과 나시고랭.
메뉴를 주문하고 나니 아차 싶었다.
그녀에겐 너무 일상일 음식을 골라버린 거다. 메뉴를 받고 나니 더 아차 싶었다.
하다못해 우리 집 앞에 가면 더 진수성찬으로 먹을 수 있을 나시짬뿌르와, 미고랭과, 박소가 널려 있는데 더 비싼 돈으로 이런 허접한 음식을 대접하다니.
마지막 날이라고 나름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싶었던 내 계획도 실패, 하필 아기가 이 타이밍에 깨서 캐시가 편하게 밥을 먹지 못한 것도 실패.
전적으로 모든 게 실패로 돌아간 마지막 점심 대접이었다.


그녀와 밥을 먹으며 4일간의 페이를 함께 계산했다. 그녀는 본인의 보수인데도 계산하길 멋쩍어했다.
내 계산대로 계산기를 두드려 그녀에게 보여주었고, 그녀는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그게 맞겠지'라고만 한다.
아니 틀리면 어쩌려고 그래! 내가 나쁜 맘이라도 먹으면 어쩌려고.
그녀가 아기를 보듬고 달래는 사이, 나는 지폐를 몇 번이고 세어 봉투에 넣었다.

그녀는 내가 돈을 세는 모습을 보았지만 못 본 척하며 멀찍이에 서 있었다.





특별한 날을 만들어줘서 고마워요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짐을 꾸렸다.
함께 한 시간은 4일뿐이었지만, 폭풍 같던 지난 며칠간 우리 가족의 발리살이를 안정권에 들게 한 히로인 아닌가.
주섬주섬 짐을 꾸리는 그녀를 보며 엄마와 아빠, 나는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정말 고마웠다고 말했다.
그러자 캐시는 자신이 더 고맙다고 한다.

"캐시와 함께 해줘서 고마워요. 이제 집세도 낼 수 있고, 아이들 간식도 사줄 수 있게 됐어요."

그리고 덧붙였다.

"오늘은 나에게 정말 특별한 날이에요"


캐시는 고마워하는 우리에게 오히려 더 고맙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단순히 그녀의 작별 인사 방식이라고 받아들이기엔 무거운 말이었다.
이 공간에 담아낼 순 없지만, 며칠간 캐시와 함께 지내며 들었던 그녀의 지난 삶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내가 먼저 묻지 않았는데도 담담하게 자신의 지난날을 이야기하던 그 모습에 오히려 내가 더 당황해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던 그 순간들.
그러자 그녀는 괜찮다며, 이제 다 지난 일이고 캐시는 언제나 행복하다고 말했던 그 말들이 뇌리를 스친다.
내겐 별일 없었던 그런 하루가 누군가에겐 특별한 하루가 되었다고 한다.

앞으로도 그녀에게 매일이 특별한 날이길 바란다.
그리고 나도, 별것 없다고 생각한 하루를 특별함으로 채울 줄 아는 마음을 가지기로 한다.




캐시에게, 앞으로의 모든 날들이 항상 '스페셜 데이'이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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