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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 Jeong Nov 24. 2020

회의 중 눈물이 쏟아졌다.

말을 제대로 못 하는 내가 짜증 나는데, 이유를 모르겠다

최근에 아침 회의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별 일이 있던 건 아니었다.

그 전 주, 팀멤버가 요청한 몇 가지 이야기가 있었다.

회사 차원에서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을 만한 내용이었고 안건으로 올린 것뿐이었다.

커가는 조직이라면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그런 것들이었다.

그리 크게 회사에 챌린지하는 내용도 아니었다.




문제는 나였다.

안건을 올리고 주어와 서술어 목적어 어떤 것부터 내뱉어야 할지 머릿속으로 오만 각을 재다가 결국 눈물이 터졌다. 눈물이 맺히면서 나도 왠지 몰라서 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아니 말이라도 좀 제대로 하던가!

안건에 대한 맥락도 제대로 설명 못한 채 눈물만 맺혀서 한 시간이 끝났다.

나와서도 쉽게 감정이 가라앉지 않았다.

매일이 이벤트고 시트콤인 회사 생활인데 왜 눈물이 났는지 나도 궁금했다.

한 일주일 즈음 지나니 객관화가 되는 것 같아 당시의 눈물 나는 상황을 짚어보기로 했다.




무엇 때문에 눈물이 났을까

말해서 해결될 여지인 것인가 판단이 서질 않아서

어떠한 조직에 회사의 고칠 점, 즉 피드백을 말한다는 것. 특히나 조직이 커질수록 내가 직접적으로 속한 팀이 아닌 전사 차원의 피드백을 주기 더더욱 어렵다.

예전 직장에선 눈치게임처럼 총대 메고 ‘내가 운 뗄게 너는 뭐 말할래’하는 작전을 쓰는 경우가 있기도 했다지.


작은 조직일수록 전사 차원의 문제를 공유했을 때 맥락 파악이 쉽다 보니 즉각적인 논의와 피드백이 가능하다.

그러나 일정 규모 이상이 되면, 회의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안건에 대한 답은 들어야 하니 서로 다른 이해도로 하나의 안건을 풀기 위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회의 시간에 더 입을 닫아버리는 한국인 특유의 ‘질문 공포증’이 시작된다.

아무리 쉽게 설명하려고, 비유법까지 들어가며 얘기해도 청자가 맥락을 모르면 질문충=불만충이 되어버리기 때문.

이 날도 안건에 대한 맥락을 차마 설명할 시간 없이 압축하고 비유해서 설명하다가 사고 회로에 렉이 걸려버린 경우.



2) (내가) 던진 일들을 주워 담지 못해서

던진 일은 수십 가지인데,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뭐 하나 잡히는 게 없었다.

죄다 시작은 했는데, 마무리가 지어지질 않았다. 긴 호흡으로 일하면 되는데 짧은 호흡에 익숙해진 나는 계속 물 밖으로 얼굴만 내밀고 뻐끔거리며 숨만 쉬고 있었다.


최근 더욱 큰 조직에 있었던 많은 분들이 우리 회사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이전 조직에서 괄목할 만한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분들이었고, 그만큼 우리 회사에서도 본인의 역량을 끌어내 필요 영역을 확고히 구축해나갔고.

새로운 조직원들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이게 회사에 '왜'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설득이 먼저였고, 일이 '되게'하기 위한 프로세스 구축을 공고히 했다.


나는 지금까지 일단 필요한 일부터 '쳐내자'였기에 새로운 조직원들의 일하는 방식이 초반엔 납득하기 어려웠다. 당장 주워 담기 급급한 일이 천지인데 언제 설득하고 프로세스 구축하냐고요.


그런데 이게 나를 갉아먹는 일이었던 거라.

앞만 보고 돌진하는 경주마가 되다 보니 이게 '왜 필요한지'에 대한 설득 전에 '내가 하고 말지'하는 마음으로 설명보단 결과물만 들고 이야기를 했다.

결국 모든 결과물은 나라는 사람을 갈아서 만든 결과치였고, 나를 복제하지 않는 이상 이 일이 가능하지 않게끔 만들어 버렸다.


시스템화, 프로세스 확립으로 상당량 일이 덜어지는 직무가 있는 반면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일은 대체로 사람 사이의 네트워킹과 감정의 하모니로 만들어 내는 결과치이기에, '나 아니면 못 줍지'라는 마음이 강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부분까지 개인 드리블로 치환하고 있었다.

으악 제길



회사 외 육아, 집안일로 신경 쓸 게 많아서.

워킹맘의 죽을 때까지 풀지 못할 숙제. 회사와 가정에 대한 밸런스를 한 번도 깨트린 적 없는 자, 나한테 돌을 던져라.

한창 일로 속도 내다가 애가 아파서 등등의 일로 브레이크가 밟히면 지금까지 이뤄놓은 것들을 깡그리 부정당하는 기분 나만 그래요?  

죽어라 내 만족을 위해 일해도 결국 아이가 '엄마가 일하면 내가 힘들어'라는 말 한마디에 무너져 버리는 게 또 엄마다.

백날천날 내 만족 위해 채찍질하면 뭐하나. 결국 아이 감정 갈고, 조부모 노동력 갈아 넣어서 나만 좋자고 하는 게 '일'인 걸로 스스로 후려치기 해버리게 된다.

상당량은 요 근래 아이와 일 사이에 어느 것도 잡힌 게 없어 불안한 내 심리상태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심지어 이 글도 갑자기 원인을 못 찾은 피부병으로 입원한 아이 옆 간이침대에 누워 마무리하고 있다.



조직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 하지만..

1)번 외 2)번과 3)번의 경우는 누가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다.

2)번의 경우는 조직에서 추가 인원 채용 등으로 해결해줄 수 있는 '여지'는 있겠다.

그러나 결국 일의 맺고 끊음, 거절과 수용을 하는 건 중간관리자가 오롯이 견뎌야 할 미움의 무게다.

근데 사실, 그 일 좀 거절하고 안한다고 누가 나를 저주인형까지 만들어가며 미워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이 일을 거절했을 때 상대방이 느낄 감정에 내가 '미리 치여버려서' 되지도 않는 바구니에 일을 꾸역꾸역 담고 있었던 거다. 내가 손 안 댄다고 모든 일이 망하는 것도 아니고 사실 더 잘되는 게 태반이다.


능력 이상의 것을 껴안기보단, 잘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각을 짜고 로직을 세우는 게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인데 최근 내 업무가 그 과도기를 심하게 겪었다. (아직도 겪고 있으니 ing인 걸로)

커리어 상의 사춘기 정도라고 치자.


3)번의 경우 또한 사회적 장치나 기업의 복지제도(사내 어린이집 등) 으로 얼기설기 굵은 안전망은 치겠지만, 결국 물처럼 새어 나가는 감정은 촘촘한 안전망으로도 어찌 막을 도리가 없다. 매번 회사에서 내 심리상담을 도맡아 해 줄 것도 아니고.

그저 회사에 내 마음 더 알아줄 워킹맘대디가 더 많아지길 희망할 뿐......





결국 좋은 조직은 좋은 사람의 총합

그렇게 눈물을 쏟아내고, 말도 안 되는 메일을 써버린 그날 밤, 회사 내 모든 파트너(=상사)들이 바로 1:1을 신청했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몰라 어깨랑 옆구리부터 찔러보는 파트너들 덕분에 일주일의 매일을 서로 다른 파트너들과 1:1로 시간을 보냈다.

서로 내리는 결론은 조금씩 달랐지만 같은 결의 이야기는 분명 있었다. 스스로를 잠식하면서까지 일하진 말자는 그런 사회 선배로서의 말이었다.

2)번과 3)번의 중간 즈음에서 건네 준 위로의 말들이 듣고 싶었나 보다.


외부 강연을 들어도, 워킹맘 괜찮다고 토닥이는 책을 읽어도 그 사람들이 내 일과 조직에 대한 이해를 하고 건네는 말은 아니기에.

마치 '타로점'처럼 잠깐 마음 한 번 치유하고 마는 그런 것은 원치 않았다.

결국 함께 회사를 이끌고 갈 사람들로부터 얻는 마음의 치유와 위로가 필요했던 것 같다.


서툴지만 진심으로 말해주는 동료들 덕분에 힘이 생긴다. (4번째 파트너와의 1:1까지 마치고 나니 눈물이 난 게 미안할 지경...제 마음 하나 보듬어주려고 이렇게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시다니요.....)


수십 명의 조직원 중 하나인 내게 이렇게까지 care personally 하며, 기꺼이 먼저 시간을 내주었던 상사와 조직원들이 있었기에 또 좀 더 해내 보자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일이든 삶이든 내일은 좀 더 낫겠지. 뭐라도 좀 나아진 게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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