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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 Jeong Dec 31. 2021

솔직히 올해는 살면서 가장 좋았던 해였다

2021년을 보내며 짤막하게 남겨보는 생각들

어떠한 결론이 있는 건 아니고, 매 순간 떠올려 왔던 것을 짤막하게 남겨보는 2021년의 마지막 날.


#1. 열흘을 내리 쉬면서 글 한 자 적지 못했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글을 쓰자고 생각하는데, 말처럼 되지 않는다. 창작의 고통은 정기성으로 해결될 수 없기 때문에 불규칙하게라도 글을 남겨야지. 남 얘기 말고 내 얘기. 올해도 발리 한달살이는 결국 끝내지 못했다 3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9편 남짓까지밖에 쓰질 못하다니. 부끄러운 줄 알아야겠다.


#2.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메모장에 적어둔다. 근데 적어두고 다시 꺼내보질 않는 게 나의 치명적인 문제점인데, 나중에는 '이걸 내가 왜 적었더라?'하고 상황 자체를 잊게 된다. 정리를 하려고 '노력'은 하는데 체계적으로 하지 못하는 나의 큰 단점. 예전에는 고쳐보려고, 어떻게든 구획을 만들어서 거기에 차근차근 넣어두려고 했는데 그 구획을 까먹어서 결국 다 섞여버린다. 어쩌겠어 이게 나인걸. 인정하고 적당히 할 수 있을 만큼만 정리하자. 스트레스받지 말자.


#3. 아무튼 올해 메모장에 적어뒀던 문장들은 대체로 이런 것들이다. 어디서 내가 홍보가 전문이라고 말할 수 있나, 부끄럽지 않게 할 수 있나? 앞선 길을 걸었던 선배들의 좋은 점은 물려받되, 나만의 에지는 만들긴 했나? 이미 남들이 다 아는 결과론적인 얘기를 또 내뱉은 건 아닌가? 차별화된, 하지만 대다수가 납득할 만한, 감정에만 호소하지 않고 설득까지 해낼 수 있는 결괏값까지 만들어낸 적이 있는가? 근데 이런 고민들이 결국 '남에게 인정받기 위함'에 대한 고민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표다.


#4. 위 고민들이 얽혀 처음으로 '학교에 다시 가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순전히 더 배우고 싶어서. 이래서 대학원에 가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논문 쓰는 건 고리타분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은 내가 좀 틀렸던 것 같다. 대학원 가고 싶다. 근데 뭘 전공하고 싶은지는 모르겠다. 나는 요즘 사람의 심리에 대해 궁금하다. '왜 저 집단은 저런 말을 할까?', '왜 사람들은 작은 것 하나에 매몰되서 전체를 잊게 되나?' 영화 돈 룩업을 보면서도 군중심리, 집단 심리에 대한 공부를 해보면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5. 좋은 사회 친구들을 만났다. 일로 만났지만 나는 또 일 얘기만 못하지... 그게 나야... 사회 친구들과 걷고 있는 길에 대해 답 없는 토론을 하면 그래도 서로의 연대 속에 위로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아무튼 올해도 배울 점 많고 속 깊은 사회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나만 '88 유니버스'라고 부르고 있는데, 대략 86~90 사이 친구들. 내가 아는 88 유니버스 친구들이 모두 모두 연결됐으면 좋겠다. 연대감 속에 새로운 무언가가 또 탄생할 것 같거든. 지루한 코로나 시국이 언제쯤 끝날지 모르겠지만, 내년엔 꼭 해볼 것이다.


#6. 이직을 했다. 위 고민들이 마음속에 뭉글거릴 때쯤이었고 내가 가는 길이 맞나, 내가 하고 있는 게 맞나 싶은 여름이었다. 결정을 했고, 내가 결정했으면서 나는 또 울었고, 마음이 정리될 때쯤엔 눈물이 나지 않았다. 고요해졌다. (대충 3n살까진 까까도 사주고 울면 눈물도 따까 주고 해야 한다) 이 시기쯤 누가 "한 10년 차쯤 되면 이제 부르는 데도 없고, 거기서 그렇게 쭈욱 가는 거야"라는 말을 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한다. 나는 틀린 쪽이 되어보고 싶었다. 밖에서 볼 때는 내가 선택한 길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이겠지만, 내 맘속에선 큰 결정이고 안 해본 것들을 결정해야 하는 책임감이 더 커졌다. 더 무겁게, 더 고민해서, 더 진지하게 하되 스스로가 잠식되지 않도록 해야지. 나라는 블록을 밑단부터 차곡차곡 잘 쌓아 나가야지.


#7. 뭔가 좋은 성과를 얻었을  '  대박  나가네?'하고 표현하고 싶을 때도 솔직히 가끔 있다. 근데 사람 인생이라는  항상 아우토반만 있는  아니니까... 언제  샛길로 길을 잘못 들지도 모르고, 장애물 앞에서 주춤거리거나 크게 사고가 날지도 모르는 거니까. 가끔  내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들다가도,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나가는  사람도 고민 하나쯤은 있겠지, 자책하는  사람도 잘하는  있는데  그럴까? 하지만  모든 생각 끝엔 #아그럴수도있겠당 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냥, 그럴 수도 있는 거다.  사람은 내가 아니니까.  기준대로 생각하면  된다.


#8. 우아한 단어를 사용하되 피상적이진 않게 말하기. 친구들과 함께하는 나는  우악스럽게 말하긴 한다. 어쩌라고 그게 난데... 하지만 일하는 나는 적어도 그런 표현은 피하려고 한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해야지. 남의 생각에서 내가 차용해서   있는 단어들과 표현들이 있는데 그런 부분을  많이 배워야겠다. 요즘 똑똑한 사람들이랑 일할 기회가 제법 많아졌는데, 나도   모른다. 모르는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아는 체해야  때도 필요하다. (대신 뒤에서 열심히 모르는  찾고 다음번 기회엔 진짜로 알고 있어야 .)


#9. 그래서 배우고 익히는 시간이 주어진 지금이 좋다. 어쨌든 지금 회사에서는 행복하게 일하는 방법에 대해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모두가 공통의 행동과 언어로 얘기하니까. 행복하게 일하는 방법에 대해 말하는데 말과 행동이 불일치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땐 좀 힘들었다.


#10. 한 논문에 따르면 연봉 7만 5천 불 (한국돈으론 한 8천만 원 좀 넘는) 이상에서는 행복과 소득의 관련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나 또한 일정 수준 이상의 연봉이 되면서부터 '연봉 계약이 인생의 전부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많이 받을수록 좋겠지만 많이 받는다고 내가 그 돈을 잘 관리하는 것도 아니고, 소비가 엄청나게 늘지도 않는다. 그냥 적당한 가격의 브랜드로 입고 싶은 거 사고, 먹고 싶은 거 먹고, 여행 가고 계속 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어차피 나는 플렉스 하면서 만족감을 얻는 스타일도 아니긴 해서.... 자잘한 소비는 많이 하긴 하지만. 아무튼 올 한 해는 돈에 대한 고민을 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일 안 할 때는 돈에 대한 고민과 알게 모르게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제법 컸거든... 그 생각할 시간을 더 건강한 곳에 쓸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11. 올해는 도합 한 달 정도를 쉬었다. 회사 옮기면서 2주, 그리고 지금 회사에서 2주. 공교롭게도 둘 다 오빠가 해외에 있어서, 한 달 동안 엄마와 지후와 여행을 많이 다녔다. 엄마가 조금이라도 더 건강할 때, 많은 곳을 같이 다니고 싶다. 그리고 엄마가 여행 가서 자꾸 먹는 데에 돈을 안 아꼈으면..... 돈이 없어서 아끼는 게 아니라 30여 년간 그렇게 아껴 쓰는 게 습관이 된 사람에게 '돈 팍팍 써'는 오히려 고역일 수 있으니 더 강요는 안 하겠지만, 엄마가 이제 여행 가서 더 좋은 것 먹고 좋은 거 보고 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로 내년에도 엄마랑 지후랑 여행 더 많이 다녀야지.


#12. 며칠 전 상은님과 밥을 먹다가 '나는 직관적인 사람이에요!'라고 갑자기 유레카를 외쳤다. 나는 계산을 통해 도출된 내용을 설명하는 데는 매우 소질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어떤 얘기를 들었을 때 머릿속에서 나도 모르는 전자두뇌가 발동해서 '엇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엇 그거 좋은데?'라는 결론을 바로 얘기한다. 사전에도 직관적은 '판단이나 추리 따위의 사유 작용을 거치지 아니하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이라고 나와있는데 아주, 매우 나를 표현하는 데 적합한 단어 같다. 나는 직관적인 사람이야. 나를 정의할 수 있도록 도와준 상은님께 감사를!


#13. 올해 혼자서 사부작 거리며 유튜브 영상을 몇 개 만들었다. 유튜버가 되고 싶어서라기보단 텍스트의 시대가 저물며 생각의 표현을 글로만 하는 걸로 고집 피우지 않으려고. 영상 편집 재밌다. 프리미어 프로는 못쓴다. 그래도 모바일로 할 수 있는 좋은 툴들이 많이 나와있다. 굳이 고퀄의 영상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글로 생각정리를 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처럼, 동적인 영상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법을 익히는 것. 하지만 마음을 먹었을 때 재밌지 '해야겠다'생각하면 또 재미없다.


#14. 골프를 배우고 있다. 남들 다 하는 골프, 어른들 비즈니스 하는 골프 도대체 왜 배우나 했는데 미쳤어 너무 재밌어.... 레슨 받을 때마다 공 잘 맞는 손맛을 느끼면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다. 나중에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운동이라고 하는데, 사실 가족과 시간을 더 보내기 위해 배우고 있다. 우리 가족이 다 같이 뭔가를 해본 적이 아마 초등학교 여름휴가 시기 말고는 없던 거 같아서. 내년에는 우리 가족들이 다 같이 운동도 할 수 있겠다. 신남.


#15. 매 해를 마무리할 때마다 '와 올해만큼 다이내믹한 해가 있었나'라는 생각을 한다. 대체로 좋은 의미라기보다는, 이것보다 나쁠 게 더 있을까의 의미로. 그런 의미에서 올 한 해는 34년 살면서 최고의 한 해였다. 그만큼 불안감도 컸다. 나는 가장 안정을 느끼는 시기에 불안함을 문득문득 느낀다. 최근에 영지가 그랬다. "땅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아득함을 느끼는 게 맞다,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면 높은 곳에서 잘 날고 있는 것이다"라고. 영지는 20살인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오늘도 한 수 배웁니다...



올 한 해 했던 잡다한 생각들을 다 텍스트로 털어버리고 나니 좀 후련한 마음이 든다. 아직 올해가 몇 시간 남았으니 그 사이에 또 생각나면 보태서 쓰는 걸로.

쓰고 싶은 말이 더 있었는데 까먹었다. 마무리해야겠다.


부산 몰운대. 거의 매일 구름이 몰려오는 언덕이라 몰운대라는데 이 날은 하늘이 깨끗했다. 왜냐면 너무 추웠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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